[살며 사랑하며] 친구의 편지



친구로부터 새 편지를 받았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병역의무를 마친 후 먼저 이민 간 가족을 찾아 미국으로 떠났다. 우리는 그렇게 헤어지게 됐다. 둘 다 가난한 시골 출신인 우리는 늘 학우들 사이에서 주류에 끼지 못하고 주변을 맴도는 처지였다. 그래서 서로 의지하며 힘든 대학생활을 보냈던 것 같다. 그가 떠난 뒤 가끔씩 편지를 주고받았다. 얼마 후 미군에 입대했다며 제복 차림의 사진 한 장을 보내 왔다. 서울이 그리워 미치겠다고 했는데 한국 근무를 명받았다며 불쑥 나타났다. 용산에서 4년을 보내고 다시 캘리포니아, 텍사스, 그러다가 독일 근무 후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군생활을 하는 동안 결혼해 두 아들을 키웠고 미군 육군 상사로 정년을 맞았다.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그는 연금만 축내고 살 나이가 아니라며 작은 사업체를 꾸려가면서 열심히 일해 이제는 중견 기업인이 됐다. 그는 편지에서 한국의 위상이 세계적으로 높아져 어떤 나라도 가볍게 생각하지 못하게 됐다고 했다. “방탄소년단의 LA 공연을 보러 갔지. 수만 명의 관객이 열광하고 있었지만 나는 온몸으로 전율을 느끼면서 뜨거운 눈물이 왜 그렇게 흐르는지.” 우리 젊은이들이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편지에서 나이가 들고 보니 고향이 더 그립다며 언제인가 친구의 시골집 옆에 작은 집을 짓고 함께 노년을 보내고 싶다고 썼다. 나도 그렇게 하자고 했지만 아직 선뜻 행동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그의 마지막 편지 구절이 오래도록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요즘처럼 우한 전염병으로 집 안에 갇혀 지내다 보니 더욱 고향의 푸른 산천이 그립고 생각은 자꾸만 자네 곁으로 다가가고 있다네. 부디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게.” 태평양 너머 그가 사는 나라를 부러워만 했는데 그쪽에서는 우리보다 더한 고통 속에 지내는 것 같다. 고맙고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오병훈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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