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는 2차 치료에만 건보 적용
1차 치료부터 ‘건보 면역항암제’ 절실
보험 적용 기다리다 세상 떠나기도
정부·제약사 비용 놓고 줄다리기
간곡한 호소 불구 첫 관문도 못넘어
A씨(68)는 지난해 10월 오른쪽 가슴통증으로 찾은 병원 검사에서 말기 폐암 진단을 받았다. 5년 전 찍은 흉부CT에선 별 이상이 없다고 들었는데 청천벽력이었다. 폐를 싸고 있는 막과 뼈까지 암이 다 퍼진 상태였다. 주치의는 “완치 보다는 생명 연장을 위한 항암치료가 전부”라고 말했다. 하지만 병원에선 조직검사에서 면역수치(PD-L1) 발현율이 50% 이상으로 나와 첫(1차) 치료부터 최신 면역 항암제를 쓰면 일반 화학항암제 보다 우수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건강보험이 되지 않아 비용이 걱정됐지만 가족과 상의해 면역 항암제 치료를 받기로 했다. 실제 ‘키트루다’라는 제품을 3주마다 1번씩 9차례 투여한 결과 암 크기가 40% 줄었다. 부작용은 심하지 않아 치료 받기도 수월했다.
문제는 비싼 약값이었다. 한 번 투여할 때마다 약 500만원이 들어 5000만원의 빚까지 내야 했다. 고생하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중단하고 싶지만 약을 끊으면 암이 급격히 진행될 수 있어 난감한 상황에 처해 있다.
얼마 전 뇌까지 퍼진 말기 폐암 진단을 받은 B씨(70)도 암 조직에서 면역수치 발현율이 높아 면역 항암제 사용이 최선의 치료였다. 하지만 치료비 때문에 고민하다 결국 일반 항암치료를 택했다. 항암치료를 받을 때마다 계속 토하면서 식사도 못하고 머리가 다 빠지는 고초를 겪었다. B씨는 면역 항암제가 건보에 적용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역시 지난해 말기 폐암 판정을 받은 C씨(63)는 면역 항암제가 곧 보험이 될 것이란 희망을 갖고 일반 항암치료 받기를 주저하다 2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주치의는 뇌와 뼈 간 등으로 암이 퍼져 일반 항암치료라도 빨리 시작해야 한다고 했으나 어렵사리 구한 개구충제를 복용하며 버텼다. 그러다 간으로 전이된 암이 급속히 악화돼 제대로 치료 한번 받지 못하고 결국 숨졌다.
빚더미에 오르거나 치료 못 받거나
앞선 세 명의 폐암 환자는 모두 진단 후 1차 치료부터 사용 가능한 면역 항암제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신체적, 경제적 고통을 겪은 사례들이다. 말기 폐암 환자와 가족들은 2017년 9월부터 면역항암제의 급여 확대를 촉구해 왔지만 3년째 감감무소식이다. 건보 적용을 놓고 정부와 제약사 간 지루한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급여화 논의의 1차 관문인 ‘중증 암질환심의위원회(이하 암질심)’의 벽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환자들은 1년에 1억원에 달하는 면역 항암제 값을 감당하다 빚더미에 앉게 됐다. 또 면역 항암제 급여 확대를 애타게 기다리다 써 보지도 못하고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이들도 적지 않다.
한국폐암환우회와 환자단체연합회 등은 8일로 예정된 올해 암질심 5차 회의를 앞두고 “연내 급여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번 논의에서도 성과가 없으면 이후 급여 적정성 평가, 약가 협상,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심의, 약가 고시 등에 걸리는 시간을 감안할 때 올해 안 건보 적용은 사실상 물 건너 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면역 항암제는 환자 자신의 면역체계를 활성화해 몸속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돕는다. 기존 항암제의 전신 부작용이나 내성 등 한계점을 낮추고 반응을 보이는 환자들에게는 그 효과가 오래 지속되게 해 생존기간을 늘려준다. 수술이 불가능하거나 진행(전이)·재발해 치료 옵션이 많지 않은 3기말~4기 암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6일 현재 국내 허가된 면역 항암제는 키트루다와 옵디보, 티센트릭, 임핀지, 여보이, 바벤시오 등 6개 제품이 있다. 폐암, 두경부암, 호지킨림프종(혈액암), 방광암, 흑색종(피부암), 신세포암(신장암), 자궁내막암, 위암, 식도암, 유방암 등에 사용 가능하며 적용 암종의 범위를 점차 넓히고 있다. 제품마다 국내 허가 사항(사용 가능 차수, 단독 혹은 병용)은 조금씩 다르다.
면역 항암제 영역 넓혀가지만
남은 과제는 조속한 보험 등재와 확대로 환자 접근성을 높이는 일이다. 현재 면역 항암제의 건보 적용은 비소세포폐암, 피부 흑색종, 방광암, 연부조직암 등 일부에 그치고 있다. 그간 급여화 요구가 컸던 위암과 신장암의 경우 지난 4월 열린 암질심에서 재정부담 등을 이유로 급여 대상에서 탈락됐다. 이에 한 위암 환자는 최근 청와대 홈페이지에 “면역 항암제 치료 기회를 달라”는 청원을 올리기도 했다. 신장암환우회도 “건보 재정과 제약사 수익도 고려돼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환자의 생명”이라며 급여화 속도를 내달라고 촉구했다.
더 속이 타는 이들은 말기 폐암 환자들이다. 폐암 치료에 국내 승인된 면역항암제(총 4개)는 현재 전체 폐암의 80%를 차지하는 ‘비소세폐암’ 환자들의 2차 치료에만 보험 혜택이 주어진다. 일반 화학항암제를 먼저 써보고 안듣는 경우에 국한되는 것이다.
한국폐암환우회 이건주 회장은 “일반 항암제에 실패한 경우 환자 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 이 때문에 면역 항암제를 써 보지도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는 “면역 항암제를 2차 약제로 처방받으려면 20~30년도 더 된 백금계 화학항암제 치료에 실패한 사람만 가능한데, 그 치료를 받는 사이 1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난 상태에서 면역 항암제를 2차 약제로 투여한들 이미 골든타임이 지나버려 너무 늦다”고도 했다. 면역 항암제를 2차 치료제로 사용하게 하는 것은 현실성 없고 적용 가능한 사람도 매우 드물다는 것이다.
실제 가장 많이 쓰이는 키트루다의 경우 글로벌임상시험을 통해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에서 일반 항암제 보다 훨씬 더 좋은 효과가 입증됐다. 면역 수치 발현율 50% 이상인 비소세포폐암 환자 대상 1차 치료에서 키트루다 단독요법은 일반 항암제 투여군보다 전체 생존 기간 연장과 삶의 질이 개선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최근 연구에선 면역수치 발현율과 상관없이 키트루다와 일반 항암제를 같이 쓸 경우, 일반 항암제만 쓴 대조군과 비교해 전체 생존 기간(22개월 VS 10.6개월), 객관적 반응률(48.3% VS 19.9%)이 배 이상 높게 나왔다.
키트루다는 2017년 9월에 1차 치료제(단독 치료)로 건강보험을 신청했지만 불발됐고 지난해 단독 및 병용 치료에 재신청했다. 그러나 1년이 다 되도록 논의는 답보 상태다.
키트루다는 3주마다 1회(1사이클) 주사 비용이 약 500만~600만원으로 1년(48주 16사이클) 투여 시 약 9600만원이 든다. 건보가 적용되면 암 환자 본인부담률(5%)이 적용돼 연간 480만원(1사이클 약 30만원) 가량으로 확 줄어든다.
8일 논의 안되면 올해 사실상 물 건너가
더구나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암질심 회의가 2차례 연기됐다. 암질심은 신약의 임상적 유용성과 비용 효과성을 따지는 기구로 신약 급여화 진행의 첫 번째 관문이다. 이곳을 통과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지난달 초 암질심 회의에 급여 확대 안건이 상정됐으나 보류됐고 최근 열린 소위원회에서도 제약사의 재정 분담 방안 보완을 요구하며 결론을 내지 못했다. 면역 항암제의 급여 확대(2차 약제→1차 약제)로 떠안을 재정부담이 큰 정부로선 제약사의 더 큰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
제약사 측은 기존에 시행중인 재정분담 정책에 더해 정부의 재정 불확실성을 해소할 2가지 방안을 추가로 제출한 상태다. 8일 열리는 암질심 회의에서 긍정적으로 논의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부산대병원 호흡기내과 김미현 교수는 “말기 폐암의 1차 치료에서 면역 항암제는 전세계적으로 표준 치료로 사용될 정도로 임상적 유용성을 입증받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75%(36개국 중 27개국)에서 건보를 적용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3년간 급여 과정의 첫 단추도 꿰지 못하고 있다”면서 “폐암은 국내 사망률 1위 암인 만큼 급여 논의가 지연될 때마다 많은 환자들이 표준 치료를 받지 못하고 숨지는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면역 항암제의 폐암 1차 치료에 건보 적용이 이뤄질 경우 약 5000~1만명이 혜택을 받을 것으로 추산된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