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 다발성 용종·젊은 암환자 NGS 검사 통해 유전 여부 확인
가족중 최연소 암환자 나이보다 10년 빨리 검사 받는게 바람직 고대 병원등 암클리닉 잇단 개설
최근 ‘유전성 암’에 대한 관심이 높다. 수십, 수백 개의 암 관련 유전자를 한 번에 찾아낼 수 있는 ‘NGS유전자 패널검사(차세대염기서열분석법)’가 도입되고 2017년 3월부터 건강보험(본인부담 50%)이 적용됐다. 고려대 안암병원 등 상급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유전성 암(상담)클리닉이 잇따라 개설되고 있는 추세다.
3일 의료계에 따르면 유전성 암은 대부분 태어날 때 부모로부터 소인을 물려받는 경우를 말하지만 물려받지 않아도 특정 유전자가 손상돼 발생하는 암을 의미하기도 한다. 유전자가 손상된 상태에서 흡연, 음주, 식습관(육류 위주·태운 음식 섭취 등), 운동부족 등 위험요인에 지속 노출되면 암 발생을 조기에 빠른 속도로 촉진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가족은 생활습관을 공유하기 때문에 유전자 이상이 아니더라도 같은 암이 발생할 수 있다. 담배 피우는 아버지와 간접흡연하게 되는 가족에게서 폐암 발생 가능성이 높은 것은 그 때문이다.
유전자 변이 있으면 2~3년 만에 암 진행
고대 안암병원 유전성암클리닉 이수현(종양내과) 교수는 “유전성 암의 경우 진행 속도가 매우 빨라서 젊은 나이에도 생길 수 있다. 통상 대장 용종(폴립)이 암으로 진행하는데 10~15년이 걸리지만 특정 유전자 변이를 갖고 있을 경우 2~3년 만에도 양성 용종이 악성 종양으로 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변이 유전자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 위험성을 유전자 내에 지니고 태어나기 때문에 치료와 예방이 다른 암환자들과 다르게 이뤄져야 한다. 어느 유전자가 돌연변이인지 찾아내 암종별로 그에 맞는 맞춤형 치료가 필요하다.
NGS검사는 한국인 10대 암을 기본으로 성별에 따라 특이적으로 나타나는 암을 추가해 그 암을 일으킬 위험이 있는 변이 유전자를 갖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남녀 공통의 갑상샘암 대장암 방광암 식도암 간암 위암 췌장암 폐암을 비롯해 남성은 고환암 전립선암 신장암, 여성은 난소암 유방암 자궁경부암 자궁내막암이 해당된다.
대표적인 유전성 암 유전자는 ‘브라카(BRCA1, BRCA2)’다. 미국 배우 앤젤리나 졸리가 검사를 통해 BRCA1 유전자 변이를 발견하고 암에 걸리지 않았는데도 유방과 난소 절제수술을 받아 화제가 됐다. 졸리는 가까운 친인척 3명을 유방암과 난소암으로 잃었다. BRCA1, 2 유전자의 특정 위치에 변이가 생기면 유방암 걸릴 확률이 65%, 난소암 위험은 75%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술 후 졸리의 유방암 확률은 5% 미만으로 줄었다. 최근엔 이들 유전자가 췌장암과 전립선암 발병에도 관련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장암도 가족 단위 발생이 많은 암이다. 유전성 대장암과 연관성이 입증된 질환은 ‘가족성 용종증(FAP)’과 ‘린치 증후군’이다. 이 교수는 “예를 들어 APC(암억제 유전자) 변이는 가족성 용종증(내시경 검사에서 용종이 100개 이상 발견)을 유발하는데, 이 경우 평생 대장암 걸릴 확률은 최대 90%에 육박한다. APC 변이가 확인되면 매년 대장 내시경 검사를 통해 장내 변화를 관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MLH1, MSH2, MSH6, PMS2 유전자 변이는 린치 증후군(10~100개의 용종 발견)과 관련 있으며 대장암 위험을 30~70% 높인다. 이들 유전자 변이는 자궁내막암 유방암 난소암 위암 방광암 췌장암 발병에도 관여하는 걸로 최근 연구에서 밝혀졌다. NGS검사에서 이들 유전자가 나왔으면 대장암 뿐 아니라 다른 암 관련해서도 정기적인 검진이 필요하다. 지금은 아무 증상 없더라도 ‘예방 검진’으로 생각하면 된다. 아울러 금주, 금연, 운동 등 암 위험을 높이는 생활습관 개선에도 힘써야 한다.
젊은 나이 암 진단 시 의심
평균 발병 연령보다 일찍, 즉 젊은 나이에 암 진단을 받을 경우 특히 주의가 필요하다. 유방암이 40세 이하, 대장암이 50세 이하에 발생했다면 유전성 암을 의심해야 한다. 한 사람에게서 여러 암이 생기거나 가족 내에 같은 종류의 암 환자가 많거나 내시경 검사에서 다발성 용종증(린치 증후군, 가족성 용종증)이 발견됐거나 직계 가족, 형제 자매에서 유전성 암이 확인됐다면 유전성암클리닉을 찾아 상담 받아볼 필요가 있으며 전문의 판단에 따라 NGS검사가 권고된다. 변이 유전자가 나올 경우 그 자녀에게도 있을 확률이 50%에 달해 가족 단위 추가 검사가 필요하다.
이 교수는 “검사는 가족 중 가장 어린 나이에 암을 진단받은 환자보다 10년 빨리 하는 것이 좋다. 암 진행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스크리닝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유전성암클리닉은 암 발생 고위험군 프로그램을 통해 최적화된 진단과 치료법 등을 상담해 준다.
유전성 암과 NGS검사가 아직 많이 알려져 있지 않고 환자들이 정확한 정보를 얻기도 쉽지 않다. 또 자신이 유전성 암 위험군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가족력으로 암을 의심해도 유전자 검사가 아닌, 정기 건강검진만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전성 암은 변이 유전자에 따라 암의 진행 속도와 유형이 다르고 진료와 치료 과정도 다르기 때문에 유전성 암 전문의의 판단 아래 각 환자들에게 맞는 진단과 치료가 중요하다.
이 교수는 아울러 출산 전 유전자 검사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행법상 산전 유전자 검사는 희귀질환과 유전성 암 중 ‘가족성 용종증’에만 가능한데, 유전성 암 관련 유전자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는 상황에서 암이 되물림되는 상황을 막으려면 관련 법령 개정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