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베이루트항에서 핵폭탄이 터진 것 같은 대규모 폭발로 40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폭발 원인과 배후는 오리무중이다. 이번 대폭발이 사고인지 테러인지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로이터통신 등은 베이루트 폭발 참사의 사상자가 사망자 100여명과 실종자 등 4000여명에 이른다고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베이루트 당국은 이번 참사로 30만명이 갈 곳을 잃었으며 피해액이 최대 50억 달러(약 5조94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외신들은 폭발 당시 흰 구름이 순식간에 부풀어 올라 버섯 모양으로 하늘로 치솟아 마치 원자폭탄이 터진 것 같았다고 전했다. 미국 CNN방송은 “폭발은 10㎞ 떨어진 지역의 건물 유리창도 부서질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베이루트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인도, 영국, 한국 등의 대사관이 밀집해 있는 지역과 가깝다. 베이루트항은 물론 수도 베이루트시내가 초토화됐고, 인접 국가인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까지 연기가 퍼졌다.
대폭발이 일어난 원인으로는 화약 등 무기제조의 기본원료인 질산암모늄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산 디아브 레바논 총리는 “베이루트항 창고에 약 2750t의 질산암모늄이 안전 조치 없이 6년간 보관돼 있었다”면서 “책임자를 찾아 최고 형벌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알자지라 방송은 “레바논의 고위 관료들은 베이루트항 창고에 질산암모늄이 저장돼 있다는 사실과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다”며 부패 사건일 가능성을 지적했다.
관건은 질산암모늄 폭발을 촉발한 ‘도화선’이 무엇이냐는 점이다. 질산암모늄은 평소 안정 상태를 유지하지만 보관장소가 고온이거나 인화물과 닿은 경우 쉽게 폭발한다. 로이터통신은 한 소식통을 인용해 “당시 베이루트항 창고에서 진행 중이던 용접작업이 대규모 폭발로 이어졌다”고 전하기도 했다.
토니 메이 전 미 주류담배폭발물관리국(ATF) 폭발물 조사관은 “질산암모늄 폭발은 노란 연기 구름을 동반하지만 폭발 당시 화면에는 붉은 구름이 보인다”면서 “큰 폭발 전에 흰 섬광들이 보인다. 질산암모늄 외에 폭발을 일으킨 다른 원인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로버트 베어 전 미 중앙정보부(CIA) 중동담당요원 역시 CNN에 “폭발 당시의 영상 초반부에 질산암모늄이 타는 모습이 보이고, 이후 더 큰 폭발이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황색 연기 구름은 분명 군수품이 폭발한 것”이라면서 “누군가의 공격이라는 증거는 없지만 폭발을 일으킨 곳은 군수용품과 압축가스가 있는 무기고였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폭발 현장이 헤즈볼라의 무기고라고 주장했다. 헤즈볼라와 적대관계에 있는 이스라엘의 공습이 폭발로 이어졌다는 주장도 나왔다.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은 이번 폭발과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레바논의 이슬람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연관 여부도 주목된다. 유엔 특별재판소가 7일 라피크 하리리 전 레바논 총리 암살 사건에 대한 판결을 내놓을 예정인 가운데 그 배후로 의심받고 있는 헤즈볼라가 관심을 돌리기 위해 혼란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란 메흐르통신은 “미 해군 정찰기 4대가 베이루트항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한 직후 정찰 활동을 벌였다”며 미국의 개입 가능성을 주장했다.
질산암모늄 폭발이 아닌 다른 종류의 사고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공장 폭발과 같은 형태의 사고가 아닌 끔찍한 공격으로 보인다. 일종의 폭탄이었다”며 테러 가능성을 거론했다.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은 이날 베이루트에 2주간의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레바논 최고안보위원회는 대통령에게 전담 조사반을 구성해 향후 5일 이내 사고 원인을 발표할 것을 권고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