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영성 작가 바실레아 슐링크(1904∼2001·사진)는 평생 ‘예’와 ‘아멘’으로 응답한 순종의 사람이다. 타협 없는 회개와 예수님을 향한 첫사랑 회복 그리고 고난을 대하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그의 메시지는 잠들어 있는 영성을 깨운다. 그가 평생 저술한 100여권의 책은 현재 약 60개 언어로 번역됐다. 지금 한국교회는 사순절(2.17~4.3)을 보내고 있다. 회개의 사람, 순종의 사람, 겸손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바실레아 슐링크를 통해 우리에게 붙여진 ‘그리스도인이란 이름표’를 점검해 보면 좋겠다.
“예”와 “아멘”의 사람
바실레아 슐링크는 저서들을 통해 철저한 회개를 촉구하고 천국의 소망을 선포한다. 특히 올바른 회개를 통해 예수님에 대한 첫사랑을 회복하라고 강권한다. 그는 ‘주님을 사랑하는 자’에서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한다면 이해하려고 애쓰기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고 순종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영적 삶의 기본 진리란 것이다. “처음 사랑으로 돌아가는 길은 알기 쉽다. 그 길에 세워진 표지판에는 ‘나뉜 마음이라는 장애물을 치울 때만 전진할 수 있음’이란 글이 적혀 있다.”(‘주님을 사랑하는 자’ 중) 즉 ‘누가 우리 사랑의 첫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주님을 위해 일생을 헌신한 그의 인생 모토는 “예”와 “아멘”이었다. 인생의 모토는 주님이 자신에게 두 번 말씀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누구든지 사랑하게 되면 순종하듯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길 원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때마다 응답해주셨다.
“당신의 목숨과 당신의 삶을 가치가 있게 만드는 그 어떤 것도 포기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십시오. 베어내는 아픔과 손실의 고통만 있는 것처럼 보여도 기꺼이 그렇게 하십시오. 진실로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결국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예’와 ‘아멘’이기 때문입니다.”(‘금보다 더 귀한 것’ 중)
바실레아 슐링크는 독일의 국가적인 죄, 특히 유대인 학살에 대한 민족적 죄악을 회개하기 위해 1947년 에리카 마다우스와 함께 개신교 여성 독신 수도회 기독교마리아자매회(Evangelical Sisterhood of Mary)를 설립했다. 죄에 대한 철저한 회개를 통해 용서받아야 새로운 생명이 태어날 수 있다는 확신 가운데 시작된 믿음의 공동체였다.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면 먼저 회개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의 ‘회개의 영성’은 전후 독일 국민과 사회에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회개는 십자가로의 돌이킴, 바로 터닝(Turning)이다.
그는 18세에 구원의 체험을 한 후 신학 철학 심리학을 공부했다. 1939년 함부르크대학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독일기독학생회의 여성부 회장으로서 독일 전역을 순회하는 학생 사역을 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 게슈타포에 두 번이나 불려가는 위기를 겪기도 했다.
1, 2차 세계대전의 풍랑 속에 그는 하나님은 죽음과 폐허의 무덤에서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깊이 체험했다. 전투기 폭격으로 두려움이 엄습할 때마다 도움이 된 짧은 기도가 있다. “예수님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제가 수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이 사역을 하는 이유는 바로 당신을 위해서입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나에게 그리고 나의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일도 일어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할 때 주님은 공포의 순환고리를 끊어주셨다.
고난이 준 선물
그는 고난을 통해 주님이 주신 선물을 발견하라고 말한다. 그는 고난에 처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피할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획과 승리하심을 믿으며 나아갈 때 그것은 ‘선물’이 된다고 말한다. “예수님은 당신을 모든 죄로부터 구원하실 능력이 있으십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서 당신이 반드시 해야 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분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오직 그러할 때 도움이 찾아옵니다.”(‘금보다 더 귀한 것’ 중)
특히 질병에 걸리면 몸만이 아니라 영혼도 고통을 받는다.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치유를 베풀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에 대해 그는 온전히 순종하며 질병을 견디는 과정을 통해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고 말한다. 질병의 시간을 이생의 삶을 떠날 준비의 시간으로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최후의 영적 준비를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치명적인 질병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몇 달 혹은 몇 년 또는 몇 주간 병을 앓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 기간은 깊은 내적 준비의 기간이었습니다. 질병 가운데 진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이생에서도 한 조각의 천국을 맛보며, 다가올 영원한 영광이 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고난이 내게 준 선물’ 중)
또 그는 약함을 자랑하는 겸손한 사람이었다. 부족함을 기뻐하고 자랑하라고 권면한다. ‘지혜롭고 총명한 사람들보다 나같이 재능이 부족한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더 큰 영광을 받으실 거야’라고 감사한다면 열등감이 사라지고 더 불행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능력과 부족함이 당신에게 장점이 된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무력함 때문에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더욱 깊이 의지하게 만들고 혼자 힘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하나님과 가까운 관계를 맺도록 이끌어 줍니다.”(‘고난이 내게 준 선물’ 중)
바실레아 슐링크는 ‘예수님과 멀어지게 된 45가지 이유’에서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 하나님을 대적하는 교만, 쏟아져 나오는 분노, 하나님의 능력을 멸시하는 불신앙, 소리 없는 불신, 자신만을 아는 이기심, 내 것에 집착하는 인색함, 남의 시선에 연연하는 자만과 허영, 영적 게으름 등이 예수님과 멀어지게 하는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이런 걸림돌을 하나둘 들어내 생명과 기쁨으로 가는 디딤돌로 만들어야 한다. 삶의 이정표가 되도록.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내 안에 그분이 거하는 것이다. 그가 ‘위로하시는 하나님’에서 소개하는 하나님은 ‘결코 한 영혼도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축복하길 원하시는 하나님’ ‘성도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시려 징벌과 채찍을 사용하시지만, 그로 인해 더욱 고통스러워 하시는 하나님’이다. 이런 하나님이 우리를 오늘도 위로해 주신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기가 너무 힘들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이미 그분의 사랑을 증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사랑 때문에 독생자를 죄인들의 손에 넘겨줘야 하는 고통을 견디셨습니다. 예수님이 심한 고문과 학대를 받고 죽임을 당하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과 함께 고난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언제나 사랑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행하심을 이해할 수 없을 때에도 말입니다.”(‘위로하시는 하나님’ 중)
이지현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