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린 시절의 크고 작은 상처를 받으며 성인이 됩니다. 상처 입은 ‘내면 아이’를 품은 채 성장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몸은 어른이 됐지만, 정서적 학대나 결핍으로 내면엔 성장하지 못한 ‘성인 아이’가 존재하게 됩니다. 이 성인 아이는 아직도 어린 시절의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대부분 이들은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정서적으로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로버트 풀검의 시 ‘가장 받고 싶은 선물’ 중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나는 지나간 나의 어린 시절을 되돌려 받고 싶다.… 이미 오래전에 떠나가 버린 지난 어린 시절의 아이, 그 아이가 지금도 당신과 내 안에 살고 있다. 그 아이는 당신과 나의 마음의 문 뒤에 서서 혹시라도 자신에게 무슨 멋진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고 오랫동안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이 시를 읽고 떠오른 이미지가 있었나요.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에서 가정폭력으로 자녀들이 목숨을 잃는 비극적인 사건이 끊이지 않아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 가해 부모들은 대부분 “어렸을 때 맞고 자랐다”고 말합니다. 체벌로 제재하는 것이 최선의 훈육이라고 생각할 만큼 왜곡된 자녀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폭력 아버지를 둔 아이들은 또 폭력 아버지가 되기도 합니다. 왜 폭력은 대물림되는 것일까요.
신체적 정서적 폭력들은 어린아이에게 너무나 끔찍한 것이어서 학대받는 동안 아이들은 자신의 원래 모습으로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이 고통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자신을 가해자와 동일시해버립니다. 내게 해를 가하는 사람을 증오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을 닮아간다는 것이지요.
심리학자 존 브래드쇼는 저서 ‘상처받은 내면 아이 치유’에서 한 여성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나치 포로수용소에서 소름 끼치도록 학대당했던 어머니가 자신이 당했던 방식대로 세 살도 안 된 자식을 ‘유대인 돼지’라고 부르며 마구 때렸다는 내용입니다. 한때 무기력하게 학대당한 아이가 자라서 가해자가 되고 그 속엔 상처받은 내면 아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폭력적인 환경에 자주 노출되면 상대를 배려할 줄 모르고 폭력적인 어른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부부싸움이 자녀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줍니다. 2∼7세에 부부싸움을 목격한 자녀는 심하게 맞은 것 이상의 고통과 불안을 느낀다고 합니다. 아이에겐 부모의 무서운 눈빛, 표정도 폭력일 수 있습니다. 엄마의 반복되는 무표정한 얼굴도 폭력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우선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합니다. 만약 ‘내면 아이’가 아직도 상처받은 상태로 있다면, 겁에 질려 상처받고 이기적인 자신의 ‘내면 아이’도 함께 돌봐야 합니다. 부모세대를 탓할 수만은 없습니다. 그들 역시 과거에 부모로부터 상처받은 ‘성인 아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부모도 완벽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 안의 상처받은 아이로 인해 자녀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지요.
지시와 책망의 말보다 격려와 지지의 말을 더 많이 해야 합니다. 자녀에게 “숙제는 했니”라고 묻기 전에 눈을 맞추고 따뜻한 미소로 바라보세요. 마치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바라보는 것처럼.
2013년 여름,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광고판에 이런 문구 하나가 올라왔습니다.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에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이 시구는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 ‘질문의 책’ 44의 1연입니다. ‘질문의 책’에는 1부터 74까지의 숫자 제목이 붙은, 질문으로 이루어진 시들이 실려 있습니다.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내가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 그는 알까/ 그리고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 왜 우리는 헤어지기 위해 자라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을 썼을까?/ 내 어린 시절이 죽었을 때/ 왜 우리는 둘 다 죽지 않았을까?/ 만일 내 영혼이 떨어져 나간다면/ 왜 내 해골은 나를 쫓는 거지?”(‘질문의 책’ 44)
이 시를 읽고 어떤 감정을 느끼셨는지요. 혹 어린 시절, 어떤 감정을 떠올렸나요? 그 시절의 나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 자신의 내면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 주세요.
“나는 너를 정말로 사랑한다. 네가 있어 기쁘다. 기꺼이 너의 성장을 도와줄 것이다. 무슨 일이 생겨도 너를 떠나지 않겠다.”
이런 생각들을 담아 내면 아이에게 편지를 써 보십시오.
이지현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