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작가 최인선(57) 홍익대 미대 회화과 교수는 2018년 비영리재단 운영이란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재단 이름은 ‘인카네이션(성육신) 문화예술재단’이다. 올해 3년차를 맞은 재단은 매해 실력은 있으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작가 대학생 대학원생을 선정해 예술상 격려금 장학금을 주고 있다. 비영리기구 ‘더멋진세상’과 국내외 의료후원에도 꾸준히 나서 다음 달엔 아프리카 남수단에 보건소도 세운다. 최근엔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후배 예술인 15명에게 재료비를 지원했다. 모두 자신의 사재를 털어 마련한 자금으로 진행 중인 사업이다.
예술로 소외 이웃을 돕고 후학을 양성하는 일에 매진하는 최 교수를 지난 25일 그가 출석하는 서울 용산구 온누리교회에서 만났다. 교회 1층 곳곳에는 성경말씀이 들어간 그의 작품 ‘인카네이션’이 붙어있었다.
해맑은 표정이 인상적인 최 교수에게 나눔을 적극 펼치게 된 이유를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예술의 길이 결코 쉬운 게 아니잖아요. 제가 순탄하게 미술을 배운 경우는 아니라 그런지, 저처럼 어려운 환경에 있는 후배나 이웃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해왔습니다.”
열한 살 때 아버지를 여읜 최 교수는 넉넉지 못한 환경에서 화가의 꿈을 키웠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해, 초등학교 선생님의 칭찬으로 우연히 자신의 재능을 발견한 그는 고학으로 홍익대 회화과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쳤다. 1992년 제15회 중앙미술대전 대상 등 여러 상을 받고 2년 뒤 미국 뉴욕주립대 대학원에 진학한 최 교수는 이때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유학 중 한인교회에 출석하다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이후 ‘내 실력은 하나님이 내게 허락한 달란트니 이제부터 사랑을 나누는 일에 써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됐다.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고 제 삶을 되돌아보니 제 능력과 환경으로는 도저히 지금의 위치에 올라올 수 없겠더라고요. 그저 기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때부터 결심했지요. ‘이제부터는 내 신체에 내리쬐는 햇볕도 감사해야겠구나. 모든 게 감사다.’”
99년 유학을 마치고 교편을 잡은 최 교수는 3년 뒤 미국 뉴저지 드루대학교 연구교수에 지원한다. 아펜젤러 선교사의 모교이자 미션스쿨인 드루대에서 예술을 신앙과 접목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한 해 동안의 영성 공부는 그의 작품 세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의 작품은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리움미술관 광주고검청사 등에 전시돼 있다.
“평소 작품을 풀어낸 방식이 주로 형상을 구현하는 거였다면 신앙을 깊이 받아들인 이후론 성경의 언어를 화폭에 나열하는 방식도 쓰게 됐습니다. 성경 말씀은 그 자체가 본질이고 진리인 만큼 그대로 표현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거든요.”
재능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일은 재단 설립 이전부터 시작했다. 2006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로비에서 기부 전시회를 연 게 출발이었다. 이때 소아암 환자 수술비를 소액 후원하며 시작된 나눔은 지금껏 이어져 50여 환자의 수술 및 진료비를 후원했다. 현재는 개인이 아닌 재단 이름으로 의료후원을 한다.
최 교수는 극심한 취업난에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겹쳐 여러모로 위축된 청년들에게 “상황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반드시 나를 지키고 보호하는 분이 함께한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그는 “무한한 잠재력이 있는데도 삶의 목표나 꿈이 없는 청년들이 많다”며 “나는 누구인지, 인생 목표는 뭔지 구체적으로 정리한 문장 한두 개를 만들어 가슴에 품고 다니며 환경이 아닌 꿈이 인생을 견인하게 하자”고 조언했다.
최 교수는 새 학기 첫 강의에 학생들에게 ‘나는 피카소보다 훌륭한 예술가가 되고 있다’고 외치게 한다. 자기 가치를 직접 실현하는 경험을 제공해주기 위해서다. 그의 인생을 견인하는 인생의 한 문장은 뭘까. 최 교수는 연신 “부끄럽다”며 망설이더니 이렇게 답했다. “‘세계 미술사에 남는 예술가가 돼 그 작품으로 생긴 물질을 선한 영향력을 위해 다 쓰겠다’입니다.” 재단 활동과 더불어 세계 미술시장에 더 다가서기 위한 화집 발간, 그간 작업해온 성경 말씀 작품을 소장하는 미술관 설립에 나서겠다는 그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