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 피터슨의 저서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은 신앙이 사실이라는 것에 집중해서 말한다. 우리 세대에서 신앙은 내 삶의 생명력을 주는 사실인가 아니면 무관한 사변인가. 듣지 않아도 모두 그 답을 알고 있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태생적으로 우리는 신앙이 삶에서 능력이 돼 나타나는 분명한 사실이라는 것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 예전에 어느 대형교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2000명의 고3 학생들이 대학진학 1년 후 300명 정도만 남고 모두 교회를 떠났다.
여느 교회도 다르지 않다. 고3 학생 10명이 대학진학을 한 후 졸업 때가 되면 2~3명 정도 교회에 남는다. 심지어 중직자의 자녀도 교회를 떠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적어도 교회에 남아있는 부모의 자녀들이라도 교회에 남아 세대잇기가 이뤄져야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인간은 탄생기, 성장기, 원숙기, 마감기의 네 시기를 거쳐 살아간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시기는 배움의 시기라고 말할 수 있는 유년과 청소년 시기인 성장기일 것이다.
우리 자녀들은 이 배움의 시기에 학교에서 삶의 거의 모든 시간을 집중해 공부한다. 그러나 세상 속의 지식만 배우며 지나버린다. 인생의 기초가 쌓이는 이 배움의 시기에 신앙생활의 기초를 쌓지 못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교회의 신앙교육이 ‘시험을 잘 보게 해달라’는 요청의 수단 정도로 퇴색했다는 것이다. 탄식을 금할 수 없다. 이 태생적 오류가 어디서 시작됐을까.
그것은 성장기 자녀들이 자신들의 가장 큰 관심사이자 현실문제인 학업 현장에서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자녀들이 학업의 현장에서 태생적 생명이신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을 가르쳐 살도록 해야 한다.
신앙을 가진 어른들은 사업하다가 난관에 부딪히거나 회사에서 어려움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주님을 의지하고 기도한다. 그러나 학생들은 공부가 막히면 유명학원이나 스타강사를 찾는다. 학업이라는 현실의 삶 가운데 예수님을 만나는 법을 거의 배운 적이 없다.
서울 좋은나무교회의 주말캠프와 C캠프(처치십캠프)는 신앙과 자녀들의 학업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학업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게 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골로새서 2장 2~3절은 그리스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춰져 있다고 분명히 말한다. 지혜와 지식의 보화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아 계시다는 것을 실제로 믿고 공부해야 한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비밀이 능력이 돼 나타나기 시작한다. 약간 복잡하지만 위대한 말씀의 법리가 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한다면 그분은 나의 구세주와 내 삶의 주인이 돼 주신다.
이때 내 안에 살아 계신 예수님은 지혜와 지식의 보고 그 자체임을 확실히 믿어야 한다.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잡고 계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 예수님께서 내 학업에서 주인으로 행하지 못하신다. 엄연히 내가 학업의 주인이 돼 내 능력으로 공부하고자 가장 율법적인 열심을 여전히 갖고 있기 때문이다.
주저하지 말고 그때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공부한다는 것을 믿음으로 선포하고 시작하면 된다. 공부하고자 하는 학업 의지를 ‘그리스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보고가 있다’라는 말씀을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다.
거듭된 믿음의 행위는 내 안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께 내 공부의 헤게모니를 드리게 되며, 그리스도의 뜻을 이루시는 성령 하나님의 능력으로 학업하게 된다. 학문적 성취의 길을 내 능력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의 능력으로 시작하게 된다.
우리의 아이들은 공부하면서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 교회는 ‘성령 하나님의 능력으로 공부하기’를 가르쳐야 한다. 이렇게 성령 하나님의 능력으로 공부한 학생들은 학업의 성취에 대해 자신이 이루었다는 교만함을 갖지 않는다.
이런 경우 어느 때라도 교회를 떠나지 않는다. 인생의 토대를 갖추는 성장기에 주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학업 속에서 주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이 사실이 중요하다.
Z세대라고 불리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 자신에게 이익을 주지 않고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으면 그들은 쉽게 등을 돌린다. 그들은 옳고 그름이 판단의 기준이다. 기준은 자신의 기준이다. 기존 세대의 상식은 통하지 않는다. 새로운 세대는 기존 세대들보다 훨씬 정보에 앞서 있으며, 합리성과 평등이라는 개념에 매우 민감하다. 이런 세대들에게 어떻게 다가설 것인가.
교회는 무언가를 제시해야 한다. ‘교회에는 무엇인가 있다’라는 영적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그들은 자연스럽게 교회에 들어와 성령 하나님께서 주시는 현장에서의 영성을 체험할 것이다.
교회와 목회자는 새로운 세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들을 위한 영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가시는 곳은 늘 사람이 밟힐 만큼 몰려들었다. 교회는 사람을 오라고 사정하는 곳이 아니다. 교회는 사람을 자연스럽게 오게 하는 곳이다.
이강우 목사(좋은나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