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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온사인·전광판 휘황한 ‘만남의 명소’… 영국판 타임스스퀘어

주요 도로가 교차하는 곳에 원형 광장으로 조성된 피카딜리 서커스는 관광객들과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만남의 장소다. 동상 밑 계단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거리 공연도 펼쳐진다.




어깨에 날개를 달고, 손에는 활과 화살을 든 에로스상은 최초의 알루미늄상으로, 샤프츠베리 백작의 헌신적인 이웃 사랑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으로 가득한 피카딜리 서커스 주변의 대형 전광판과 런던의 상징인 빨간 2층 버스.


광장은 보행 공간이자 만남의 장소다. 광장은 도시 중심에 있어 접근성이 좋고, 비어있는 공간이라 사람들이 모이기에 좋다. 그래서 주요 도시들은 광장 주변의 차도를 줄이고, 보행 공간을 늘려가는 추세다. 만남의 장소로 유명한 광장이 바로 런던의 피카딜리 서커스다.

1819년에 조성된 피카딜리 서커스(Piccadilly Circus)는 원형 광장으로 리젠트 스트리트(Regent Street), 샤프츠베리 애버뉴(Shaftsbury Avenue), 피카딜리 로드(Piccadilly Road), 헤이마켓(Haymarket)이 교차하는 교통 요지에 있어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서울의 명동 거리와 같다. 처음 광장이 건설될 당시에는 활 모양으로 이어진, 회반죽으로 마감된 건물들이 주변에 늘어서 있었다. 1886년 샤프츠베리 애버뉴 건설을 위해 일부 건물들이 철거되기도 했으나 지금도 피카딜리 서커스 주변에는 아치 모양으로 이어진 건물들이 있다.

유럽에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인 지난해 2월 20일 피카딜리 서커스를 찾았을 때 광장은 관광객들과 런던의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광장 한켠에서는 비 오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한 뮤지션이 기타 연주를 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동상 밑 계단에 앉아 쉬거나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길거리 공연이 펼쳐진다. 피카딜리 서커스는 약속 장소로도 유명하며 주변에는 극장, 명품점, 레스토랑 등이 모여 있다. 에로스 상 앞 흰 건물은 1873년 완공한 크리테리온 극장(Creterion Theatre)으로, 코미디와 연극을 공연한다.

피카딜리 서커스 중앙에는 빅토리아시대 천사처럼 자선을 베풀었던 정치가이자 사업가인 샤프츠베리 백작에게 헌정된 기념 분수가 있다. 분수 위에는 어깨에 날개를 달고, 손에는 활과 화살을 든 궁수 안테로스(Anteros)가 금방 쏘아 올린 화살을 바라보고 있다. 안테로스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에로스의 쌍둥이 동생으로, 사랑과 성을 관장하는 신이다. 사랑의 신 큐피트(에로스)를 연상시켜 ‘에로스 상’이라고도 한다. 1893년에 세워진 최초의 알루미늄 상으로, 알프레드 길버트가 설계했다. 아동보호법의 주창자인 샤프츠베리 백작이 평생 주력했던 사회 복지와 개혁 활동에 부합하는 보편적인 이웃 사랑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공식 명칭은 ‘자애의 천사상’이다.

광장 이름의 유래가 흥미롭다. 피카딜리(Piccadilly)는 16~17세기 귀족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피카딜(Piccadill)’이라는 레이스 옷깃에서 비롯됐다. 당시 이 옷깃을 개발한 재단사는 큰 돈을 벌어 지금의 피카딜리 서커스 땅에 초호화 주택 ‘피카딜 홀’을 세웠다고 한다. 사람들은 부자가 된 재단사의 작업실이 있는 거리를 ‘피카딜리 거리’로 불렀다. 라틴어로 ‘원형’을 뜻하는 서커스(Circus)는 안테로스 상 아래를 도는 원형의 교통 흐름을 의미했다.

17세기에 이미 피카딜리 거리는 패션의 중심이었다. 오늘날에도 피카딜리 광장 주변은 엄선된 상점과 사무실, 사교 클럽과 왕립 예술원, 18세기에 만들어진 영국의 대표적인 홍차 브랜드 ‘포트넘 앤 메이슨’ 매장이 위치한 런던 최고의 번화가로 꼽힌다. 1890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네온사인 광고가 등장했던 피카딜리 서커스는 1960년대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만남의 장으로 각광을 받았다. 대형 전광판에 나오는 휘황찬란한 빛과 네온의 홍수로 피카딜리 서커스는 언제나 시끄럽고 활력이 넘친다. 그 전성기의 흔적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피카딜리 거리는 원형의 피카딜리 서커스에서 끝을 맺고, 주변에는 고급 주택가 메이페어가 형성돼 있다. 광장 너머에는 샤프츠베리 대로와 화려하고 번잡한 소호 지구와 차이나타운이 펼쳐진다.

미국 뉴욕에 타임스 스퀘어가 있다면 영국 런던에는 피카딜리 서커스가 있다. 두 곳은 여러 면에서 닮았다. 대형 전광판에 세계적인 기업들의 상업광고가 화려한 네온사인과 함께 펼쳐지고, 주변에는 극장과 쇼핑몰이 즐비하다. 뉴욕시가 타임스 스퀘어 보행광장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면 런던시는 교차로 중심에 있는 에로스상과 지하철역 사이 차도공간을 보행공간으로 바꿔 보행환경을 개선했다. 그래서 두 곳 모두 걷기 편하고 머무르고 싶은 장소가 됐다.

런던교통공사는 지하철 노선을 배경으로 한 문학작품 100여 편을 모아 문학작품집을 발간했는데 런던 남서지역과 동북지역을 가로지르며 히드로 공항, 피카딜리 서커스, 킹스크로스를 연결하는 지하철 노선인 피카딜리(Piccadilly) 선을 다뤘다. 그래서 작품집 이름도 ‘피카딜리 나라’(Piccadillyland)다. 웨스트엔드의 중심인 피카딜리 서커스는 런던 지하철(튜브) 2개 노선이 교차하는 환승역과 연결되어 있어 접근성이 뛰어나고 유동인구가 많다.

런던시는 차량 중심으로 교통체계를 운영했으나, 유동인구가 많은 도로와 주요 관광지 주변 도로에서 차도를 없애고 보행공간을 확충하여 보행 접근성 및 연결성을 높이려는 정책을 실행해 좋은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피카딜리 서커스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트라팔가 광장은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와 연결되어 있는 관광 명소 중 하나다. 트라팔가 광장의 분수대는 주변이 모두 차도로 되어 있었으나, 내셔널 갤러리와 트라팔가 광장 분수대 사이의 차도공간을 보행공간으로 변경해 광장을 조성했다. 그 결과 트라팔가 광장과 내셔널 갤러리의 보행 접근성이 개선되어 관광객들과 시민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사람 중심의 보행친화도시는 세계적인 트렌드다. 서울시도 유동인구가 많은 도심을 중심으로 과감한 도로 다이어트를 통한 보행공간 조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말 서울역~세종대로 사거리 1.55㎞ 구간에서 ‘세종대로 사람숲길 조성사업’을 진행해 차로를 축소하고 보행공간을 확충했다. 이 구간에 자전거도로도 신설해 공공자전거 ‘따릉이’를 비롯한 자전거 이용이 활성화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세종대로 사람숲길은 광화문광장으로 이어진다. 새로 조성되는 광화문광장에 편입되는, 세종문화회관 앞 서측도로가 차도에서 보행공간으로 바뀌고, 이순신 장군상 옆에는 시민들이 쉴 수 있는 공원이 조성될 예정이다.

런던=글 사진 김재중 선임기자 j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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