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미래형 차량용 반도체 직접 설계를 통한 내재화를 공식 선언했다. 자율주행·전동화 기능이 포함된 고성능 반도체가 미래 먹거리로 부상하고 있는 데다 업계를 급습한 반도체 대란으로 반도체 수급에 대한 필요성이 절실해진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전문가들은 오랜 연구 기간과 막대한 비용을 고려하면 반도체 내재화는 현대차그룹이 단독으로 나설 분야가 아니라 정부와 반도체 업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숙제라고 입을 모은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를 필두로 미래형 차량용 반도체 내재화에 본격 시동을 걸고 있다. 지난해 12월 현대모비스는 약 1332억원에 그룹 계열사인 현대오트론의 반도체 사업 부문을 인수했다. 현대오트론은 차량에 들어가는 엔진·변속기 제어기용 반도체 개발을 담당하는 업체다.

현대차그룹이 반도체 내재화를 공식화한 배경에는 시장의 빠른 변화가 자리한다. 우선 자동차 업계에는 전동화·자율주행화 추세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반도체를 모두 최적화할 수 있는 플랫폼 개발 경쟁이 빨라지고 있다. 지난달 31일 김영광 현대모비스 상무는 “(차량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다 보면 최적화된 반도체를 개발해야 한다”며 “이미 사업계획은 수립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만큼 미래 반도체 시장 선점에 서두르고 있다는 뜻이다.

반도체 수급 부족 문제가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우려도 반도체 내재화 결정에 한몫했다. 물론 현대차그룹이 즉시 국내에 생산 공장을 건설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미 각국에선 지금부터라도 국산화 논의 정도는 시작해야 하지 않겠냐는 공감대가 이뤄지고 있다. 실제 미국의 반도체 기업인 인텔의 팻 갤싱어 최고경영자(CEO)는 12일(현지시각) 외신과 인터뷰에서 향후 6~9개월 이내에 차량용 반도체 생산을 개시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전 세계 반도체의 3분의 1가량을 미국에서 제조해야 한다는 주장도 전달했다.

현대차에 차량용 반도체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업체들의 반도체 국산화 의지도 강하다. 자동차산업연합회(KAIA)가 최근 국내 완성차 업체의 1~3차 협력사 53곳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부품업체 중 72%가 성능만 된다면 수입산을 국산으로 대체할 의향이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현대차그룹이 단독으로 내재화를 이끌기보다 정부와 재계의 협업이 수반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반도체 기술력이나 생산 여건에서 훨씬 앞서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전반적인 차량용 반도체 개발에 나설 수 있도록 정부가 성과급을 주며 생산을 독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자율주행차로 넘어가는 과도기 단계에서 자체 생산 기지를 무리하게 세우는 것이 섣부를 수 있다는 경고도 있다. 미국보다 자동차 시장이 협소한 국내에서 자체 생산으로 규모의 경제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국내의 높은 인건비를 고려하면 득보다 실이 많아질 수도 있어 차분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