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패권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경쟁 속에서 한국 정부의 대응이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자유무역주의 회복을 강조했던 미국조차 ‘반도체 인프라’론을 주창하며 삼성전자 등 기업 유치에 팔을 걷어붙였다. 세계무역기구(WTO) 보조금 협정 위반 소지가 있는 지원책 동원도 서슴지 않는다. 반면 한국 정부는 세계적인 반도체 강국임에도 기업의 눈길을 끌 만한 당근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자칫 국내 투자 수요가 해외로 빠져나갈 우려를 배제하기 힘들다.
정부는 15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확대경제장관회의를 열고 반도체·자동차·조선·해운 등 전략 산업 분야 최고경영자(CEO)들을 초빙해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이 중 가장 이목이 집중됐던 주제로는 반도체가 꼽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2일(현지시간) 삼성전자를 비롯한 반도체 기업 대표를 초빙해 국내 반도체 투자를 강조한 직후였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500억 달러(약 55조8000억원) 규모의 반도체 인프라 투자 구상을 밝힌 상태다. 2024년까지 투자액의 최대 40%를 법인세에서 공제하는 내용의 반도체 산업 지원법 입법도 앞두고 있다.
삼성전자만 놓고 보면 미국 내 각 주의 공장 유치 경쟁도 치열하다. 삼성전자 오스틴 공장이 위치한 텍사스주 외에 뉴욕·애리조나주도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뉴욕주의 경우 세제 혜택과 보조금 등 모두 9억 달러(약 1조53억원) 규모의 혜택을 약속한 상태다.
이날 회의에서 미국의 각종 지원책에 대응할 만한 정부의 반도체 지원 전략이 제시될 거라는 예상도 그래서 나왔다. 하지만 구체적인 지원 방안은 다뤄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 정부 관계자는 “정부의 향후 지원 방향을 두고 기업인들과 논의하는 성격이 강한 자리였다. 어떤 결론을 내고자 하는 자리가 아니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유럽연합(EU) 역시 투자액의 최대 40%를 보조금으로 지급하는 식으로 반도체 패권 경쟁에 뛰어든 점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해외 투자 확대 요인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투자를 매력적으로 느끼게 할 요인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반도체 기업이 한국에 지속적으로 투자하도록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