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음세대를 세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안다. 교단마다 70% 이상의 교회에서 주일학교가 사라졌다. 교회마다 어린이들이 북적였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인구절벽, 삶의 풍요로움, 진화론 교육과 과학주의, 제도적 교회의 고립화 등 많은 이유를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가 교인들의 고령화와 신앙의 단절을 모두 설명할 수 있을까. 없다. 만일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약 30년 후면 수치로는 교회의 70%가 문을 닫게 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주일학교가 사라진 가장 큰 이유는 세대잇기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사실 다음세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세대잇기가 가장 중요한 교회 과제였다. 전도해서 교회당을 채우는 것이 주된 이슈가 아니었다. 기존 성도의 자녀를 분명한 신자로, 나아가 제자로 세우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였다. 그것에 실패한 결과가 오늘의 현실로 나타났다.
요한복음 15장을 보면 교회에는 줄기가 있어야 한다고 말씀한다. 건강한 나무줄기는 당연히 무성한 가지를 낸다. 그리고 열매를 튼실하게 맺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건강한 줄기가 먼저 세워지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세대잇기의 중요성이다. 교회의 줄기가 바로 그것이다.
교육학 측면에서 본다면 성경을 가르치고 예배드리면 신자가 되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니 그것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었다. 진정한 신자는 예수님처럼 같이 살며 느끼며 갈등하며 고뇌의 시간을 보내며 세워진다. 그래서 가정이야말로 최고의 신자가 자라는 곳이며, 세대잇기가 이뤄지는 곳이다.
교회는 세대잇기 사역에 적어도 50% 이상의 관심과 배려, 기도와 재물과 시간을 사용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30년 후 문을 닫게 될 것이다.
교회에서 세워지는 줄기는 먼저 나의 자녀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선물이다. 자녀만이 생명이신 예수님을 담을 수 있는 유일한 그릇이다.
한국교회는 세대잇기로 교회의 줄기를 세워야 한다. 이것은 다음세대를 세우는 일과는 매우 다르다. 우리에게 주신 자녀들부터 마음과 뜻을 다해 역량을 다해 세워야 한다. 인간은 탄생기, 성장기, 원숙기, 마감기의 네 시기를 거치는데 교회는 이 모든 시기에 맞춰 세대잇기를 해야 한다.
탄생기에는 엄마와 어린아이들의 현실적 관심사를 통해 스스로 열심을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국 상황에서 엄마와 아이들이 즐겁게 임할 수 있는 도구로 영어가 적합하다. 교회는 공동육아, 즉 ‘처치 패어런팅’(Church parenting)을 하도록 도와야 한다. 공동육아가 가능하도록 교회 구조를 바꿔야 한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는 교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선순위를 여기에 두고 움직이면 성도들, 특히 엄마와 아이들은 ‘내가 교회에서 존중을 받는구나’라고 느끼며 반응하게 된다. 그럴 때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에 내 인생의 모든 것을 걸겠다는 의지와 싹이 돋는다.
교회는 아이들이 성장기에 학교와 학업의 틀 속에서 주님을 만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교회는 학업이 성령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는 것임을 가르치고 실증해야 한다.
대학진학 후 많은 자녀가 교회를 떠난다. 이것은 이미 조국교회에 고착화된 현상이 됐다. 학업 가운데 주님의 능력을 맛보지 못하고 자신의 힘으로 대학에 들어갔다고 생각하니 스스로 교회를 떠나는 것이다. 그러나 성장기 때 학업의 현장에서 예수님을 만난 자녀는 장년이 돼도 교회를 떠나지 않는다.
세대잇기로 세워진 자녀들이 원숙기로 접어들면 스스로 독립해서 설 수 있는 디사이플십을 갖추게 된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 리더로 세워져 목회자를 대신해서 일정한 무리의 장년 성도들을 목회할 수 있는 역량이 갖춰진다. 이렇게 되면 목회자가 세대잇기에 주력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춰진다.
인생의 마감기에는 선교사로서 자리매김하도록 교회가 가르쳐야 한다. 안정적으로 연금이 나오는 성도는 해외에서 선교적 삶을 살며 인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그렇지 않은 성도는 국내에서 봉사의 선교사로 지낼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서울 좋은나무교회에서는 지역의 어르신들을 섬기기 위해 동네에 조그마한 공간에 자동세탁기와 간단한 국수를 대접하며 어려운 노인을 섬기는 사역을 계획하고 있다. 이러한 사역이 성도의 삶의 선순환을 가져온다.
성도의 정체성은 오직 예수님 한 분이시다. 우리는 내가 선 곳에서 마치 깃발처럼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 들어 올려야 한다.
깃발의 정체성은 바람이 불어올 때 뚜렷하게 나타난다. 예수님께서 풍랑 속으로 베드로를 부르셨듯이 삶의 환난, 고난, 갈등이라는 바람이 몰아쳐 올 때 우리 안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세대잇기는 그 현장의 영성을 보며 성장한 자녀들로 이뤄진다.
이강우 좋은나무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