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든… 뭣이 중헌디”





수치심은 자신의 결점 때문에 사람들에게 거부당할 것이라고 믿는 고통스러운 감정입니다. 수치심에 대한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몸매, 말투, 경제력, 주름살, 질병, 옷 사이즈, 삶의 방식 등 자신의 모든 것에 대해 느낄 수 있습니다.

미국의 시인 번 러살라는 ‘수치심’이란 시에서 “자신이 사는 곳을 부끄러워하고 그런 자신을 바라보는 것, 이것이 수치심이다. 글을 읽을 줄 모르면서도 읽을 줄 아는 척하는 것, 이것이 수치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번 러살라의 ‘수치심’이란 시를 한번 읽어 보십시오. 저는 “글을 읽을 줄 모르면서도 읽을 줄 아는 척하는 것”이란 문장에 밑줄을 그었습니다.

2009년 국내 개봉한 영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는 글을 읽지 못하는 여인과 그녀를 사랑한 남자의 비극적인 사랑과 인생을 담았지만 남녀의 사랑보다 수치심이 사람에게 얼마나 부정적인 힘으로 작용하는지를 보여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유대인을 감시하는 교도관으로 일을 했던 주인공 한나는 전범재판소에 섭니다. 같이 기소된 다른 전범들이 ‘모든 일은 한나가 보고서로 지시했다’고 죄를 떠넘깁니다. 한나는 문맹이란 사실을 감추기 위해 자신이 보고서를 썼다고 말해 무기징역을 선고받습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나는 왜 이 모양일까”란 질문은 삶을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됩니다.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 견딜 수 없어”라고 여기는 한나의 감정은 수치심입니다.

반면 문맹이란 자신의 약점을 딛고 더 행복한 삶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세상엔 존재합니다. 양원초등학교에서 공부하는 만학도들의 이야기를 한 방송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한글을 몰라 은행에 가서 돈 찾는 일도 어려워 남의 손을 빌려야 했고 외식도 편하게 하지 못했던 노부부가 지금은 카페에서 어려운 음료를 주문해 마시며 공부하는 모습이 참 행복해 보였습니다. 한글을 배워 서로의 이름을 적으며 “나를 살아가게 하는 사람” “지금까지 이 사람 때문에 살았다”라고 말하는 노부부의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수용한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수치심은 긍정적으로 발휘될 것입니다.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인생의 행복과 불행이 나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가치 있는 존재가 되고 싶고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 같고 남들에게 거부당하고 어딘가에 소속될 가치가 없다는 느낌이 들 때 우리는 수치심을 느낍니다. 이 수치심은 단절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됩니다. 미국 휴스턴대 브레네 브라운 박사는 사람에게 ‘관계’가 중요한 이상 단절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수치심은 영원히 우리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누구나 ‘수치심 회복 탄력성’을 기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수치심 회복 탄력성이란 우리가 수치심을 느낄 때 그 감정을 인식하고, 수치심을 일으킨 경험을 통해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합니다. 우리에겐 그런 능력이 있습니다.

우린 살아가면서 실패할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 행동과 자신의 가치를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일에 성공하지 못했다 해도 인간으로서 실패한 것은 아니니까요. 실직할 수도 사업에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내가 가치 없다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일의 성패와 상관없는 나만의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린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에게 마음이 끌립니다. 마음이 따뜻하고 현실적인 사람을 좋아합니다. 있는 그대로 말하고 그 때문에 자신이 웃음거리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그런 사람 곁에 있고 싶어합니다. 이런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진짜 나’로 사는 사람들이 아닐까요.

우리는 진짜 나로 사는 사람을 존경하고 진짜 나로 살고 싶어합니다. 누구나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믿는지 정확히 알고 싶고 그것을 당당하게 말하길 바랍니다. 그래서 내가 나인 것을 편하게 느끼고 싶어합니다. 진짜 나를 이렇게 정의해 봅니다.

“자연스럽고 진심 어리고 마음에서 우러나오고 개방적이고 진실한 태도로 자기 자신을 남들과 공유하는 것.”

사실 이것도 완벽해지고 싶은 마음 일부분일 수 있습니다. 완벽하게 나를 몰라도 괜찮습니다. 내가 싫어하는 나, 내가 원하는 나의 리스트를 먼저 쓰신 후 ‘이게 바로 나’란 주제로 글을 써보십시오.

□내가 싫어하는 나
-나는 ○○한 사람으로 보이기 싫다.
-사람들이 나를 ○○라고 생각할까 봐 두렵다.
-사람들이 나를 ○○라고 생각하는 게 싫다.

□내가 원하는 나
-나는 ○○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
-사람들이 나를 ○○한 존재로 여겼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나를 ○○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이게 바로 나’란 주제로 글을 써보십시오.

글·사진=이지현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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