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코인 쇼’는 결국 도지코인의 폭락으로 마무리됐다. ‘도지 파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출연한 미국 TV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에 전 세계 암호화폐 투자자 시선이 집중됐지만, 방송이 끝난 뒤 받아든 성적표는 31.2% 폭락이었다.
‘머스크 파워’를 잃은 도지코인이 지난 몇 주간 보였던 반짝 상승세를 반납하면서 암호화폐 시장의 판세는 한동안 미궁 속으로 빠져들 전망이다.
9일 낮 12시24분(한국시간) ‘SNL’ 생방송을 앞두고 도지코인의 시세는 채 10분도 안 돼 784원에서 844원까지 7% 넘게 올랐다. ‘도지(DOGE)’를 외치는 각국 투자자 염원이 유튜브 채널 실시간 댓글 창을 뒤덮었다. 하지만 환희는 잠깐이었다. 머스크의 모친 메이 머스크가 오프닝에 깜짝 등장해 “설마 어버이날 선물이 도지코인은 아니겠지” 던진 농담을 시작으로 금세 하락 반전했다. 이 농담이 단순히 ‘패러디 암호화폐’인 도지코인의 한계를 지적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폭락의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방송 내내 도지코인은 하락을 거듭했다. 오프닝 이후 머스크가 7차례 더 등장해 다양한 코미디 연기를 보였지만 내림세는 가팔랐다. 네 번째 등장까지는 그가 화면에 모습을 비추면 약간 반등이라도 했지만 다섯 번째부터는 되레 추락했다. 방송이 끝날 무렵 국내거래소 업비트에선 23.6% 내렸고, 미국 거래소 코인베이스에선 69.7센트에서 48센트까지 31.2% 폭락했다.
이날 도지코인의 ‘하락쇼’는 실망 매물이 쏟아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머스크는 방송 중반 ‘암호화폐 전문가와의 대화’ 코너에서 진행자가 여섯 차례 “도지코인이 무엇이냐”고 물었음에도 “인터넷에서 시작된 장난” “디지털 화폐” “미래의 화폐” 등으로 둘러댔다. 결국 마지막에 진행자가 “별 볼 일 없다는 거네요”라고 꼬집자 “그런 셈이죠”라고 얼버무렸다. 지난달 8일부터 한 달여간 이어져 온 도지코인의 폭주가 일단락되는 순간이었다. 머스크는 앞선 7일 트위터에도 “암호화폐는 유망하지만 부디 신중히 투자하라”고 쓰며 지나친 투자 열기에 우회적으로 우려를 드러낸 바 있다.
도지코인이 폭락하며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전통적인 암호화폐가 주류 자리를 다시 꿰찰지도 주목된다. 이날 이더리움은 또다시 급등해 498만9000원의 신고가를 기록, 500만원선 돌파를 목전에 뒀다. 비트코인도 지난달 20일 이후 3주 만에 7300만원 고지를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
암호화폐 시장이 들썩들썩하는 가운데 글로벌 금융정책 기관의 경고음도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 7일(현지시간) 게리 겐슬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은 비트코인에 대해 “투기적인 가치 저장소”라며 높은 가격 변동성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수많은 암호토큰은 확실히 유가증권이고, SEC는 이에 대한 많은 권한을 갖고 있다”고 말하며 규제 가능성도 내비쳤다. 영란은행의 앤드루 베일리 총재도 지난 6일 기자회견에서 코인 투자에 대해 “암호화폐에는 내재가치가 없다”며 “모든 돈을 잃을 준비가 돼 있는 경우에만 매수하라”고 거듭 경고했다.
하지만 코인 시장의 높은 변동성과 금융 당국의 경고에도 암호화폐 투자 열기는 식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빅데이터 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의 분석 결과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 국내 주요 4대 암호화폐 거래소 앱의 지난달 사용 시간은 총 1억2000만 시간을 돌파했다. 지난해 12월(982만여시간)과 비교하면 12배 이상 급증했다. 앱이 아닌 컴퓨터 웹사이트를 통한 코인 거래소 이용시간까지 집계에 넣으면 이 수치는 더 커질 것으로 추산된다. 2월 기준 앱 사용자 수는 312만3206명인데 이 중 59%가 2030세대였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