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창일의 미션 라떼] 불타는 성지, 기독교인이 바라볼 곳은…

이스라엘 북부 도시 피나에서 지난 13일(현지시간) 시위대가 피켓을 들고 유대인과 아랍인의 평화공존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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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창일의 미션 라떼’는 역사 속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게 필요한 지혜를 발굴하는 내용의 칼럼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전쟁이었다. 공교롭게도 연합국과 추축국 중 대부분이 기독교 국가였다. 양측 군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방아쇠를 당겼다. 용서와 평화의 종교가 전쟁 앞에 무릎 꿇고 말았다. 교회들은 절망했다.

1948년 세계교회협의회(WCC)가 태동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WCC는 국제위원회를 조직하고 세계 각지의 분쟁을 해결하고 민주화 정착을 위해 노력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반대운동을 지원했고 우리나라의 민주화운동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 해결도 WCC의 큰 과제였다. 창립 이후 지속해서 팔레스타인의 자치권 보장과 양측의 무력 사용 중단, 팔레스타인의 기독교인에 관한 관심, 유대인 정착촌 철거 등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2002년부터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에큐메니컬 동반자 프로그램’(EAPPI)을 통해 평화를 위한 구체적 행동에도 나섰다.

하지만 갈등은 해를 거듭할수록 커지고 있다. 영토 분쟁이 문제의 근원이다. 시오니즘을 앞세운 유대인들은 1917년 밸푸어 선언에 따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사는 땅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땅에서 수천 년 살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유대인에 의해 점점 밀려났다. 고대 이스라엘의 후예가 1948년 원래 살던 사람들을 밀어내고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했다. 이스라엘은 수차례 전쟁을 통해 자국의 영토를 넓혔다. 520만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가자·서안지구의 좁은 땅에 갇혔다. 이스라엘은 이곳에 높은 분리장벽을 세웠다. 2004년 국제사법재판소가 장벽 해체를 결정했지만 이스라엘은 안보를 이유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

분쟁의 땅에 또다시 총성이 울렸다. 지난 10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에 무력 충돌이 시작됐다. 다행히 양측은 20일 휴전에 합의했지만 갈등의 원인까지 해소된 건 아니어서 여전히 위태롭다.

2014년 가자 전쟁 이후 7년 만에 격화된 이번 충돌은 전면전 양상으로 치달을 수도 있었다. 하마스는 연일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포를 발사했다. 이스라엘은 아이언돔으로 로켓포를 요격한 뒤 전투기로 보복 공격을 반복했다.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희생이 훨씬 컸지만 이스라엘 측 사망자도 생겼다. 양측의 군사력 차이가 커 자칫 일방적인 공격이 될 가능성도 컸다.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우리나라 기독교인의 마음은 복잡하다. ‘정의와 신앙’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양새다. 일부 기독교인은 지금의 이스라엘을 구약의 이스라엘과 동일시한다. 고조선과 마찬가지로 기원전 멸망한 고대 이스라엘, 그들의 후손 중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것도 이런 시선을 갖는 데 일조했다. 무슬림과 싸우는 이스라엘을 선으로 여기는 이들까지 있다.

과연 그럴까. 팔레스타인 기독교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지금도 5만여명의 기독교인이 있다. 이들은 2009년 ‘카이로스 팔레스타인 선언’을 통해 “팔레스타인 영토에 대한 이스라엘의 군사적 점령은 하나님과 인간을 향한 죄악”으로 규정했다. 결국, 무슬림과 반무슬림 사이의 갈등으로만 볼 수도 없다.

요 며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SNS에는 헤로도토스의 경구가 자주 언급된다고 한다. “평화로울 때는 자식이 부모를 묻지만, 전쟁이 나면 부모가 자식을 묻는다”는 내용이다. 무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유대인 말살을 계획했던 히틀러도 결국 실패했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미가서 4장 3절에는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말라며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만 바라야 한다. 어떤 비난도, 일방적 지지도 내려놓고 평화의 길만 찾아야 한다. 바로 지금, 성지가 불타고 있다.

장창일 종교부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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