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성규 기자의 걷기 묵상은 비대면 시대 누구나 쉽게 반나절가량 산책하면서 영성의 현장을 돌아보도록 돕는 코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계시던 2000년 전엔 차가 없었다. 걷는 게 다였다. 예수님은 갈릴리 호수에서 배를 타거나 예루살렘 입성 때 나귀 새끼 등에 오른 것 말고는 대부분 걸었다. 이동수단이 걷기뿐이던 몇 세기 전만 해도 서민들은 하루 평균 3만보를 걸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현대 한국인의 하루 평균 걷는 양은 5755보(2017년 스탠퍼드대 연구)다. 예수님 때와 견줘 5분의 1 수준이다. 가까운 거리도 무조건 차를 이용한다. 자신이 세팅한 러닝머신 프로그램에 올라 걷기 위해 차를 몰고 헬스클럽에 가는 사람도 봤다. 잃어버린 걷기를 되찾는 일이 어쩌면 우리를 영성의 길로 이끌지 모른다. 코로나19로 흩어져 예배해야만 하는 요즘, 가볍게 걸으며 누구나 쉽게 묵상하고 예배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나섰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서 연세대 방면으로 나오면 차 없는 거리를 만난다. 주중에는 버스만 다니고 주말에는 이마저도 금지돼 보행전용 거리로 변신한다. 팔짱 낀 연인들이 신촌역 홍익문고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바닥을 내려다본다.
“‘자살’도 뒤집으면 ‘살자’로 바뀐다. 무릎을 깨뜨려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젊음의 특권이다. 이어령”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정호승” “원고지 위에서 죽고 싶다. 최인호” “너에게 밥을 먹이고 싶네. 강은교”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
한국을 대표하는 문인들이 서대문구의 요청으로 바닥에 남긴 핸드 프린트와 대표 글귀들이다. 연예인이 아니라 문인들의 핸드 프린트를 볼 수 있어 반가웠지만, 나는 그것보다 보행전용 구간을 알리는 안내판에 더 눈길이 갔다. “걸으면 바뀝니다. 서울이 행복해집니다.” 기후위기 시대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화석연료를 쓰는 차량 대신 걷자는 저 문구는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연세대 정문을 지나 학생회관 뒤편 루스채플에 오른다. 작은 언덕 위에 있어 오른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지금은 연세대 대학교회 예배당이지만 과거엔 무덤이었다. 조선시대 영조의 후궁인 영빈 이씨의 원묘가 있던 자리인데 1970년 경기도 고양의 서오릉으로 이장했고 루스채플은 74년 봉분이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 영빈 이씨는 사도세자의 어머니이자 정조의 할머니다. 왕족의 죽음을 기억하는 무덤 자리에 만인에게 새 생명을 나누는 예배당이 들어섰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루스채플은 세계적 언론인 헨리 R 루스(1898~1967)의 기부로 마련됐다. 루스는 시사주간지 타임, 사진전문지 라이프, 경제전문지 포춘을 창간하고 최고의 매체로 키워낸 이다. 지붕은 하늘을 향해 두 팔 벌려 기도하는 모양의 역피라미드 구조이다. 하늘의 영광이 이 땅에 평화로 임하길 간구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루스채플에서 세브란스병원 본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병원 본관 3층 입구 정면에는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는 이사야서 12장 말씀이 대형 작품으로 걸려있다. 우리 라운지를 거쳐 종합관 4층으로 가면 병원의 역사가 담긴 선교사들의 유품과 기록화 전시 등이 이어진다. 세브란스병원은 암병원 증축 이후 전문 컨설팅 그룹의 자문을 거쳐 기독교 정체성을 분명히 밝히는 쪽으로 기관 이미지(CI)를 개편했고 이후 약진을 거듭하고 있다.
병원에서 나와 다시 대학 쪽으로 넘어가는 길. 노천극장과 청송대를 지나 본관 앞에 도착하면 호러스 G 언더우드의 동상이 두 팔 벌려 사람들을 맞는다. 학교 설립자 원두우(元杜尤) 선교사다. 또다시 서편으로 언덕을 하나 더 넘으면 언더우드가 기념관이 나온다. 낯선 땅에서 대를 이어 복음을 전하며 자신이 가진 전부를 나눈 이들의 사랑 위에 오늘의 학교와 병원이 서 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