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부터 30여년간 한국 교계에서 공인본으로 널리 사용했던 성경전서 개역한글판의 기초가 됐던 52년판 원고(사진)가 한국전쟁 당시 소실될 뻔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원고는 인민군의 감시와 전쟁의 폭격 속에서도 대한성서공회 측 관계자의 기지로 김치 항아리에 숨겨진 채 보존될 수 있었다.
지난해 출간된 ‘대한성서공회사 Ⅲ’에 따르면 성서공회는 1949년 11월 38년판 개역 성경전서를 당시 한글맞춤법에 맞게 수정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옛말을 현대말로, 사투리를 표준어로, 그리고 띄어쓰기 등을 바로 잡는 일이었다. 이를 통해 ‘그런고로’는 ‘그러므로’로 바뀌었고 ‘텬디’는 ‘천지’로, ‘갈아샤대’는 ‘가라사대’로 바뀌었다. ‘베델’이라는 지명이 지금의 ‘벧엘’로 바뀐 것도 이때다.
순조롭던 작업은 한국전쟁으로 위기를 맞았다. 50년 4월 원고 작업이 끝나고 곧바로 조판 작업에 들어갔지만, 인민군의 남침으로 더 이상 작업을 이어갈 수 없었다.
실제 인민군은 성서공회 사무실로 들이닥쳤다. 또한 당시 성서공회 총무였던 임영빈 목사를 보위부로 끌고 가기도 했다. 다행히 임 목사는 하루 지나 풀려 나왔지만, 그 뒤로도 성서공회는 계속해서 인민군의 감시를 받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임 목사는 한글판 개역 성경 수정 원고를 부인과 큰아들을 시켜 몰래 시골 친척집에 숨겨 두게 했다. 이들은 원고를 김치 항아리에 담아 숨겼다.
9·28 서울수복 직전 인민군의 횡포가 극에 달했던 때 화재로 성서공회 건물이 전소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성서공회가 갖고 있던 수많은 성경과 인쇄용지, 서류가 모두 불탔다. 그러나 한글판 개역 성경 원고만은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임 목사는 서울수복 후 원고를 파내 잘 간수했고, 부산에 가져가서 2차 수정 작업을 통해 52년 성경전서 개역한글판을 출간했다. 이 52년판은 이후 56년판, 61년판의 뼈대가 됐다.
이번 대한성서공회사를 집필한 옥성득 미국 UCLA 한국기독교학 교수는 27일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와 기적으로 원고가 보관되고 출판된 역사를 보면서 전쟁 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소망을 가졌던 믿음의 선배들의 모습을 기억하게 된다”고 말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