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진 기자의 사모 몰랐수다] 목까지 차올라도 못하는 말 “NO”

대부분의 사모들은 교회 공동체 구성원들과의 관계, 남편의 사역을 위해 ‘예스’와 ‘노’ 경계선에서 “예스”라고 답하며 필요 이상으로 손해를 보기도 하고 때로는 상처를 받는다. 게티이미지




사모에게 가장 힘든 일 중의 하나를 꼽으라면 아마도 “노(NO)”라고 말하는 것이다. 성도들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는 이유는 상대가 마음을 다칠까 두렵고 이 일로 남편의 사역에 영향을 미치진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사모들은 마음으로 “노”라고 수십 번 외쳐도 입술로는 “예스(YES)”라고 말하게 되는 여러 가지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그중 하나가 성도들이 물품 구매를 요구해올 때다. 몸에 좋다는 생식부터 건강기능식품, 온갖 종류의 생필품, 보험까지 “좋은 상품이니 목사님이 꼭 써야 한다”는 요청을 거절하기란 쉽지 않다. 좋은 것을 목사님께 권유하고 싶은 성도의 마음도 알겠지만 빠듯한 살림에 주머니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사모들은 “성도 처지에선 한 번의 요청이겠지만 우리는 다수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해 마음이 어렵다”고 말하곤 한다.

얼마 전 만난 개척교회 사모는 “집사님이 전도해서 교회에 나오게 된 새신자가 피부 노화 방지에 좋다며 화장품을 내밀었다. 거절하려니 이제 막 교회에 나온 성도가 상처받아 떠날 것 같고 집사님까지 입장이 곤란해질까 봐 구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비교적 자기주장과 개성이 강한 2030세대 사모들도 성도들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해 울며 겨자 먹기로 물품을 구매한다고 하니 사모란 위치의 고단함이 다시금 느껴진다.

교회에서 만난 여자 집사님이 있었다. 그분은 체형을 바로잡아주는 속옷을 판매하는 일을 했다. 어느 날 바른 체형 잡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며 내 신체 치수를 재기 위해 우리 집을 방문하겠다고 했다. 비싼 가격도 부담이었지만 집사님이 집을 방문하면 청소를 해야 하고, 평균 BMI(체질량지수)를 넘긴 내 신체 치수를 집사님께 공개해야 하는 것도 불편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어떻게 정중하게 거절해야 집사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용기를 내서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 순간 집사님이 내뱉은 한마디는 비수가 돼 가슴에 꽂혔다. “○○○목사 사모는 사줬는데.” 지금이야 넉살 좋게 웃어넘길 여유가 생겼지만 당시엔 이런 일로 비교당하는 것이 내심 억울했다. 한편으론 실망을 안겨드린 집사님께 죄책감도 들고 혹여나 이런 일로 남편 사역에 영향을 미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이게 끝은 아니었다. 그 뒤로 매주 교회에서 집사님과 마주할 때면 미묘한 불편함이 찾아왔다. ‘아, 어쩌면 다른 사모들도 성도와 이런 불편한 감정을 피하고자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론 나도 “예스” 사모가 됐다.

그러나 얼마 못 가 이렇게 맺어진 관계는 성도들과 건강한 교제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요청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지면서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 심지어 물질을 낭비하게 될 뿐 아니라 교제 가운데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치거나 성도와의 관계도 멀어졌다.

예스와 노의 경계선에서 사모들이 건강한 균형을 찾길 바란다. 성도들에게 좋은 사모, 착한 사모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내려두고 정중하게 “아니요”라고 거절할 수 있는 용기, 때로는 거절했을 때 돌아오는 비판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맞설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길러나가면 좋겠다. 어쩌면 성도들에겐 이런 이야기가 불편하고 부담스럽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기회로 삼으면 어떨까.

‘딩동’ 오늘도 집사님께 한 통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 파격 세일 30% 할인, 사모님 이번 기회 놓치지 마세요. 몇 개 구매하시겠어요?” 지면을 빌려 사모들의 막힌 속 좀 시원해지라고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단호박’ 대답을 해볼까 한다. “집사님, 사실 저는 ○○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온라인 최저가가 더 쌉니다.” 그러나 현실적인 나의 대답은 이러했다.

“와 집사님, 정말 싸게 잘 나왔네요. 그런데 아직 집에 조금 남아있어서요. 고민해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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