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 없이 무릎 꿇는 그 복종 아니요…”.
예배당에 찬양이 울려 퍼졌다. 찬송가 460장 ‘뜻 없이 무릎 꿇는’을 부르는 나직하면서도 깊은 울림이 있는 목소리에는 하나님을 향한 진심이 느껴졌다. 찬양을 부른 이는 배우 강신일(61) 장로다. TV드라마와 영화에서 경찰, 군인 역할을 주로 맡으며 강직한 이미지를 가진 그가 교회 예배당 한편에 마련된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는 모습이 새롭게 다가왔다.
강 장로는 “노래를 잘하는 게 내 평생 숙제”라며 부끄러운 듯 찬양을 멈추고 ‘갓플렉스’ 인터뷰에 나섰다.
최근 서울 종로구 동숭교회에서 강 장로를 만났다. 이 교회 장로인 그는 “고등학생 때 서울로 전학 와서 같은 반 친구 전도로 오게 된 곳이 동숭교회”라며 “40여년간 한 교회를 섬길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다.
교회 성극을 통해 연극을 처음 접하게 된 사연도 전했다.
강 장로는 “교회 문학의 밤 행사에서 시를 낭독했다. 그때 내 목소리를 듣고 배우 겸 연극 연출가 최종률(동숭교회 원로) 장로가 고등부 졸업발표회 때 나를 연극 주인공으로 세웠다”고 말했다.
경희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했지만, 공부는 뒷전이었다. 오롯이 교회와 연극뿐이었다. 그는 최 장로가 만든 극단 ‘증언’에서 활동하며 지방의 병원, 학교, 군부대, 교도소, 시골교회, 나환자촌 등을 돌며 공연했다. 그렇다고 연극배우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었다.
강 장로는 “군대 제대 3개월을 남겨두고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나’ 고민했는데 청년 시절 교회에서 살다시피 하며 해온 게 연극 밖에 없었고, 할 줄 아는 것도 그것 뿐이었다”며 “연극이 내 인생을 바꿔놓은 게 아니라, 하나님을 찾아가는 과정에 만난 연극이 운명이 됐다”고 설명했다.
1986년 극단 연우무대에 입단한 그는 암울한 시대상을 소재로 한 창작연극 ‘칠수와 만수’에서 배우 문성근과 함께 투톱으로 열연하며 대학로에서 명성을 떨쳤다. 20년 동안 수십 편의 연극에 출연하며 연극 무대만 고집해온 그와 달리 영화나 드라마로 활동 영역을 넓힌 동료들은 스타가 됐다. 연극배우로 가난한 삶을 당연하게 여기며 “아직 무대에서 배워야 할 게 많다”고 말하는 강 장로를 보며 사람들은 미련하다고도 했다.
그의 생각이 바뀐 건 부양해야 할 식구가 늘어나면서부터다. 강 장로는 “수입이 빠듯한 나를 대신해 아내가 동네에서 피아노 교습을 하며 두 딸을 양육했는데 마흔 살에 하나님이 셋째 딸을 선물로 또 주셨다”면서 “가장으로서 책임감을 느껴 영화와 드라마로 활동 영역을 넓히게 됐다”고 강조했다.
2002년 영화 ‘공공의 적’으로 대중에 이름을 알린 뒤 ‘실미도’ ‘한반도’ ‘강철중’ ‘7급 공무원’ 등에 출연해 씬스틸러(주연 이상으로 주목받는 조연)로 불리며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강 장로는 “연기생활을 하면서 창세기 1장 27절 말씀은 늘 도전”이라고 했다.
이어 “‘나는 지금 하나님을 닮아있는가’를 고민하게 한다. 연기는 나에게 숨겨진 하나님 형상을 찾아가는 과정 중 하나이며, 나를 통해 하나님의 형상이 드러나고 대중에게 전달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연극과 영화, 드라마를 오가며 활약하던 강 장로는 2007년 간암 초기 진단을 받고, 간의 3분의 1을 잘라냈다. 그때를 떠올리는 그의 고백은 담담했다.
“내 잘못된 습관으로 병을 얻어놓고 어떻게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겠어요. 하나님이 주신 경고로 여기고 처음 연극을 시작했을 때의 자세, 하나님과 가족과의 관계를 다시 바라보는 시간이 됐습니다.”
건강을 회복한 뒤 강 장로는 ‘많은 사람과 즐거움을 나누며 공유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노래 잘하는 것이 평생 숙제’라면서도 그는 지난해 딸 결혼식에서 직접 축가를 불러 하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젊은 시절 신앙의 고민을 함께 나눈 친구가 암에 걸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까지 자신의 찬양 부르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보내며 위로하고 격려했다. 최근 복싱과 크로스핏을 시작하면서 열정과 자신감도 되찾았다.
강 장로는 “못하는 노래, 운동 등 나의 일상을 대중과 공유해볼까 한다. 60세가 넘어서도 끊임없이 노력하는 나를 통해 이 시대 청년들도 도전받고 즐거웠으면 좋겠다”면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연극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찼던 청년 시절의 마음을 잊지 않고,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고 말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