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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 in 이건희 컬렉션] 젊은 ‘靑田’이 청록산수로 붓질한 복숭아밭 이상향

청전 이상범의 20대 초기 화풍을 보여주는 ‘무릉도원’(1922년, 비단에 채색, 10폭 병풍). 구한말 유행했던 청록산수화로 병풍 형식에 담았다는 점에서 전통의 계승자로서의 이상범의 변모를 보여준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1960년대 전성기 경향을 보여주는 ‘산고수장(山高水長·1966)’. 8폭 병풍 형식에 수묵채색으로 그렸지만 청전준이라는 독창적인 필법으로 현대적인 미감의 산수화를 만들어 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1964년의 일이다. 현대화랑(현 갤러리현대)에 청와대로부터 문의가 왔다. “박정희 대통령이 미국에 차관을 얻으러 간다. 그림 선물을 할까 하는데, 제일 잘 나가는 화가가 누구냐”는 것이었다. 당시는 서양화보다 동양화가 더 인기 있었다. 청전(靑田) 이상범(1897∼1972)이 최고였다. 청와대는 그의 10폭 산수화 병풍을 60만원에 샀다. 당시 최고가였다. 표구한 그림을 전달하기 위해 박명자 현대화랑 회장이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다. 박 대통령이 그림 속 초가를 가리키며 “우리나라가 아직도 이렇게 못사는 줄 알면 어떡하지?”라며 걱정했다. 육영수 여사가 “우리 옛것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깊이가 있으니 꼭 가지고 가시라”라고 하자 표정이 밝아졌다.

이 일화가 전하듯 1960·70년대 청전의 산수화에는 항상 초가가 보인다. 가로로 긴 화면에는 미루나무가 있는 숲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하단에는 비스듬히 개울이 흐른다. 길 위에는 짐을 이거나 등에 진 채 집으로 돌아가는 촌부가 있다. 물기를 듬뿍 머금은 필묵으로 언덕과 숲을 부드럽게 펴 바른 뒤 다시 강조하듯 바위와 언덕에 자신이 창안한 ‘청전준’을 써서 먹을 중첩시킨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물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인상주의 회화처럼 멀리서 봐야 형태가 뚜렷해지는 청전의 산수화는 그래서인지 고향에 대한 근원적 그리움을 건드린다.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에는 청전의 이런 전성기 면모를 보여주는 ‘산고수장(山高水長)’(1966) 등이 당연히 들어있다. 이번 기증을 미술계가 더 반기는 이유는 희귀작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청전 양식’이 해방 이후에 정립되기 전인 20대 시절 초기 화풍을 알 수 있는 산수화인 ‘무릉도원’(1922)이 그것이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22일 “유사한 그림의 존재를 알리는 신문기사 등 기록은 있지만 그림이 실물로 확인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무릉도원’은 동양의 이상향인 복숭아밭 풍경을 10폭 병풍 형식에 담은 청록산수화다. 중국 동진의 시인 도연명(365~427)이 쓴 ‘도화원기(桃花園記)’를 상상해서 그린 시의도(詩意圖)다. 도화원기 내용은 이렇다. 길을 잃은 어부가 배에서 내려 산속 동굴을 따라 들어갔는데, 동굴 끝에서 어떤 동네가 나왔다. 닭울음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한가롭게 들리고 남녀가 모두 외계인 같은 옷을 입고 평화롭게 사는 마을이었다. 그들은 진(秦)나라의 전란을 피해 그곳에 온 뒤 수백 년 동안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살고 있었다. 그들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은 어부는 돌아오는 도중에 위치를 표시했지만 결코 다시는 찾아가지 못했다.

청전의 그림을 자세히 보면 화면 오른쪽 아래에 배를 탄 어부가 동굴로 들어가는 장면을 찾을 수 있다. 대각선 방향으로는 어부가 동굴 끝에서 만난 복숭아꽃 흐드러진 마을이 묘사돼 있다. 복숭아꽃의 분홍은 산세의 초록과 대비돼 더욱 화사하다.

‘무릉도원’ 청록산수화는 이상범이 구한말 3대 화가였던 심전(心田) 안중식(1861∼1919)의 수제자였음을 증거 하는 그림이기도 하다. 스승 안중식도 ‘도화원기’ 등에서 딴 비슷한 주제의 청록산수화를 남겼기 때문이다. 안중식은 자신의 호 ‘심전(心田)’ 가운데 ‘전(田)’자를 떼서 ‘청전(靑田)’이라고 호를 지어줄 정도로 제자 이상범을 아꼈다.

이상범은 17세에 이왕직(일제 강점기 이왕가와 관련한 사무 일체를 담당하던 기구)에서 운영하는 서화미술회에 들어갔다. 기성 화가들이 교수로 참여한 최초의 근대미술학교에서 두 사람은 교수와 제자로 만났다. 안중식은 이상범이 서화미술회를 졸업한 뒤에는 자신의 운영하는 화숙 경묵당에서 별도로 가르치기도 했다.

이상범은 1920년 불과 23세의 나이로 당대 쟁쟁한 화가들과 함께 뽑혀서 창덕궁 벽화 제작에 참여했다.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됐던 ‘무릉도원’은 그로부터 2년 뒤 미국 유학파 사업가 이상필을 위해 그린 그림이다. 청전이 스승 안중식이 1919년 타계한 이후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이상필은 자신의 서대문 저택인 구 경교장에 기거하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줬다. 이상범은 그 넉넉한 후원에 보답하기 위해 6개월 이상 공들여 ‘무릉도원’을 그렸다고 한다.

‘무릉도원’의 왼쪽 위에 쓰인 글씨(제발)는 그림의 진가를 높인다. 활달한 필치의 이 글자들은 이상범이 아닌 이도영(1897∼1933)이 쓴 것이다. 이도영은 같은 안중식의 문하생이자 대선배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이도영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도 않고 글을 써줬는데, 몇 년 뒤 이 작품을 본 서예가 김태석이 ‘이상범의 그림과 이도영의 글이 더해진 합작’임을 그림 한 편에 밝혀두었다.

사실 서화가로서 이상범의 인생은 언제나 전성기라고 할만 했다. 1920년 창덕궁 벽화 제작에 뽑혔던 그는 1922년 조선총독부가 주최한 조선미술전람회가 출범한 이래 내리 8회 당선됐다. 최고상인 이왕가상까지 받으며 20대 시절에 이미 ‘스타 작가’로 떴다.

대부분의 대가들이 그런 것처럼 청전 역시 안주하지 않는 작가였다. 전통의 계승자였지만 동시에 새로운 화풍의 개척자이기도 했다. 청전은 1923년 노수현 등 또래들과 동연사(同硏社)를 조직해 ‘신구화도(新舊畵道)’, 즉 옛것을 토대로 새로운 그림 그리기를 추구했다. 서양화와 같은 사실주의 묘사에 서양의 공기원근법을 시도한 ‘초동’(1926)으로 조선미전에서 입선하기도 했다.

해방 이후에는 즐겨 구사하던 뾰족한 침엽수 대신에 활엽수와 수풀이 있는 부드러운 둔덕을 그림 속에 등장시키기 시작했다. 여기에 어울리는 표현법을 찾아 독자적인 ‘청전준’을 개발했다. 미술평론가 송희경씨는 “이상범은 60년대 들어서는 추상화 경향을 보이면서 은은한 먹색과 감각적인 필치로 모든 것을 포용하는 대자연의 넉넉함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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