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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웅빈 특파원의 여기는 워싱턴] 아프간서 손 뗀 바이든… 그의 관심은 국내 문제·중국 견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에서 모든 미국인을 안전하게 귀환시키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 뒤에는 카멀라 해리스(왼쪽) 부통령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나란히 서 있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은 해외 이슈보다는 국내 문제에 초점을 유지하고 있다고 현지언론은 전했다. AP뉴시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이 탈레반에 함락된 지난주, 백악관에 ‘워룸’(war room)이 새로 소집됐다.

민주당 싱크탱크로 불리는 미국진보센터 대표이자 조 바이든 대통령 수석 고문을 맡고 있는 니라 탠던이 워룸 수장을 맡았다. LA타임스에 따르면 워룸은 매일 오전 8시45분 화상 회의를 열고 중요 메시지 관리 방식 등을 논의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프간 사태는 논의 대상이 아니었다. 워룸은 1조2000억 달러 규모 인프라 투자법안과 3조5000억 달러 규모 부양 패키지(휴먼 인프라 예산안) 지원을 위한 전시 상황실 성격이었기 때문이었다.

텐던은 “행정부 전체의 최우선 순위는 8월 휴회 기간 입법 의제에 대한 지원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LA타임스는 21일(현지시간) “카불 군사작전 기간에도 백악관은 지난 8개월 동안 우선순위로 뒀던 국내 문제에 대한 초점을 유지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가 공들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단적인 장면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아프간 사태를 통해 ‘바이든 독트린’의 내용이 더욱 분명해 졌다고 분석했다. 실익 없는 세계 경찰 노릇보다 국가 재건 등 내부 현안을 챙기고, 중국 부상에 대응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원칙이 재차 강조됐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바이든식 우선주의’ 혹은 ‘가벼운 버전의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 Light)라는 표현도 썼다.

카불은 안타깝지만, 철군은 지지

“철군해야 한다는 결정에 매몰돼 (작전) 실행의 기본을 잊은 것 같았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방장관과 CIA국장을 지낸 레온 파네타는 바이든 행정부의 처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역시 오바마 행정부 전략가로 꼽히는 데이비드 액슬로드도 “아프간 작전을 마무리해야 할 때라는 바이든 대통령의 말에 미국인 대부분이 동의했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전쟁을 끝내려는 열망이 계획과 실행을 압도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카불의 비극은 바이든 행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있다는 비판이다. 이는 미국 내 진보·보수 언론 모두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후 최대 정치적 위기에 몰렸다”고 지적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실제 최근 주요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은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로이터통신과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지난 18~19일 공동 실시한 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 직무 수행 긍정 평가는 46%를 기록했다. 전주보다 7%포인트나 하락한 수치다. 부정 평가는 49%로 6%포인트가 올랐다. 외신들은 지지율 하락이 카불 비극의 영향인 것으로 봤다.

바이든 행정부 내부에선 그러나 ‘혼란을 일으킨 철군 방식이 문제였지 철군하기로 한 결정은 옳았다’는 인식이 여전히 지배적이다.

케이트 베딩필드 백악관 공보국장은 최근 뉴욕타임스(NYT)와 인터뷰에서 “미국인들이 현재 보고 있는 건 어려운 결정일지라도 나라를 위한 올바른 결정이라고 확신하는 용기 있는 대통령”이라고 설명했다.

NYT는 이 같은 메시지 전략이 정치적 계산에 의한 것이라고 봤다. ‘미국인들은 지저분한 카불 탈출은 곧 잊고 바이든 대통령이 실패한 전쟁에서 미국을 건져냈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비판은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으리란 계산이 서 있다는 설명이다.

미국인 상당수는 이에 동조하고 있다. AP와 시카고대 여론연구센터(NORC)가 지난 12일부터 나흘간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 62%는 ‘아프간 전쟁은 싸울 가치가 없는 전쟁이었다’고 했다.

폴리티코가 모닝컨설트에 의뢰한 여론조사(13~16일)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의 미군 철수를 지지한다는 응답은 49%로, 반대 응답 37%보다 12%포인트 높았다. 지난 4월 조사 때보다 찬성 응답은 20%포인트 하락, 반대 응답은 13%포인트 상승한 것이지만 여전히 철군을 지지하는 미국인이 더 많다.

AP 통신은 “바이든 대통령의 결정은 냉정한 현실주의를 드러냈다”며 “바이든 행정부는 카불 공항의 대피 상황이 개선되면 결국 전쟁 종식에 대한 공로를 얻게 될 것으로 믿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 현안 해결 시급한 바이든

바이든 행정부는 ‘국내 현안 해결’과 ‘중국 견제’에 대한 성과가 내년 중간 선거를 가르는 핵심 사안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한 유권자 관심 역시 높다.

갤럽이 20일 발표한 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은 49%로 지난 2월 대비 7% 포인트 하락했는데, 분야별 평가 내용이 달랐다. 특히 코로나19 대응에 긍정적 평가를 보낸 유권자는 51%로 지난 2월 대비 16%포인트나 하락했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에 의한 코로나19 재확산이 지지율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이다.

외교(10%포인트 하락), 경제(8%포인트 하락) 등도 같은 기간 지지율 하락의 주요 원인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특히 8월 조사에서 중국이나 러시아와의 관계 항목에 가장 낮은 39% 지지를 얻었다. 바이든 행정부가 가장 공들이고 있던 분야에서 하락이 두드러졌던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주 카불 상황이 악화하는 동안 미국인 전체에 세 번째 부스터샷 접종을 권장하는 연설을 직접 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가난한 국가의 수백만 명이 첫 번째 접종 기회도 얻기 전에 미국인에게는 세 번째 접종이 제공되는 것”이라며 “세계보건기구(WHO) 우려를 무시한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코로나19 대응에 얼마나 민감해 하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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