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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혜 특파원의 여기는 베이징] 이번엔 연예계에 철권… 500억대 벌금 물리고 작품영상 싹 지워

세금 탈루 혐의로 벌금 500억원 이상을 선고받은 정솽(왼쪽)과 중국 여러 동영상 사이트에서 검색이 되지 않는 중국 여배우 자오웨이. 바이두 캡처, AP뉴시스




중국 정부가 연예인 팬덤 문화에도 칼을 빼들었다. 스타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그들을 위해 과하게 돈을 쓰며 각종 루머를 퍼뜨리는 행위를 전부 금지했다.

중국 당국의 칼날은 연예계로도 향하고 있다. 유명 배우가 등장하는 작품이 하루아침에 온라인상에서 사라졌고, 소득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은 배우에게는 500억원 넘는 벌금이 부과됐다. 중국은 유명 연예인의 일탈과 폐쇄적인 팬덤 문화가 청소년의 가치관을 왜곡하고 나아가 사회 통치에도 위협이 된다고 보고 있다. 광적인 팬덤 현상을 병든 문화 또는 사이비 종교와 동일선상에서 보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인기 차트 없애고 팬클럽 인증제 실시

중국 공산당 중앙인터넷안전정보화위원회 판공실은 지난 27일 ‘무질서한 팬덤 관리를 더욱 강화하는 것에 대한 통지’를 발표했다. 총 10개항으로 이뤄진 안내문에는 연예인 인기 차트 발표를 금지하고 각종 작품 순위에서 ‘좋아요’나 ‘리뷰’가 차지하는 비중을 줄이는 방안이 포함됐다. 또 미성년자가 팬클럽에 들어가 연예인을 위해 돈 쓰는 일도 금지시켰다.

이와 함께 모든 팬클럽 계정은 해당 연예인과 소속사로부터 인증을 받아야 한다. 팬클럽 운영 관리 책임을 소속사에 지운 것이다. 소속사는 팬클럽 계정 등록, 콘텐츠 게시, 팬 관리 등의 규정을 명확히 하고 이를 이행해야 한다. 허위사실 유포, 불매 운동 선동을 방치한 온라인 플랫폼은 처벌받는다.

중국 사이버 당국은 이날 안내문을 발표하기 전 두 달가량 팬클럽 정화 캠페인을 벌였다. 그 일환으로 중국판 SNS인 웨이보는 지난 6일 팬들의 시간과 돈 투자로 유지되는 ‘스타 파워 리스트’를 삭제했다. 포털 사이트 바이두도 비슷한 콘셉트의 ‘스타 인플루언서’ 운영을 보류했다. 웨이보는 매주 욕설이 달린 게시물을 삭제하고 이용 정지된 팬클럽 계정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중국에서 극성 팬 문화는 오랜 기간 사회 문제로 여겨졌다. 그러다 지난해 2월 이른바 ‘샤오잔 사건’이 터지면서 문제의 심각성이 다시 부각됐다. 당시 해외 팬픽션 사이트 AO3(Archive of Our Own)에 중국 배우이자 가수인 샤오잔을 여장 남자로 묘사한 글이 올라오면서 샤오잔의 팬들이 들고 일어났다. 팬픽션은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작품을 팬들이 자신의 뜻대로 재창작한 작품이다.

샤오잔의 팬들은 관련 사이트 수십여곳을 무차별 공격하고 정부 기관에 항의 전화를 걸어 웹사이트 차단을 요구했다. 이러한 행동은 반샤오잔 움직임을 자극해 그가 광고한 제품 불매 운동으로 번졌고 한동안 양측 대립이 이어졌다.

중국 전문가들은 아직 가치 체계가 형성되지 않은 청소년들이 팬클럽 내의 단순한 사고방식에 익숙해지면 성인이 되어서도 분별없이 행동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장이우 베이징대 교수는 관영 글로벌타임스에 “중간지대와 복잡성이 없는 팬클럽에 머물다 보면 사람과 사회에 대한 이해가 약해지고 사고가 단순화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성향의 집단은 외부 세력이 공격하기 좋은 타깃이 되고 국가 안보에도 위협이 된다는 주장이다. 결국 중국은 청소년들의 생각을 바로잡기 위해 그들이 쉽게 빠져드는 팬클럽을 손보기로 한 것이다.

한 웨이보 이용자는 “팬클럽 내에서 세뇌당하지 않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거나 여론 주도층에 도전했다가 결국 쫓겨난다”고 토로했다. 지금도 많은 청소년 팬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를 띄우기 위해 그들이 광고하는 제품을 구매하고 관련 기사에 댓글을 달고 있다. 이는 대개 소속사가 해야 할 일이지만 팬들이 제 돈과 시간을 들여 스스로 하고 있는 것이다.

마윈과 친분 유명 배우, 프랑스 도피설

사정 바람은 연예계로도 불고 있다. 중국 매체들에 따르면 영화 ‘적벽대전’에 등에 출연한 유명 여배우 자오웨이의 작품은 지난 26일부터 여러 동영상 사이트에서 검색되지 않고 있다. 사이트에 자오웨이를 치면 ‘관련 법규·정책에 따라 결과를 표시하지 않음’이란 문구가 뜬다.

이번 조치의 배경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과의 친밀한 관계 때문일 가능성이 거론된다. 자오웨이는 2014년 알리바바의 자회사인 알리바바픽처스에 약 31억 홍콩달러(4655억원)을 투자해 수익을 거뒀다. 2015년에는 알리바바의 핀테크 계열사인 앤트그룹 기업 초기 단계 파이낸싱에 모친 명의로 투자해 중국 당국으로부터 증권시장 5년 진입 금지 처분을 받았다. 최근 알리바바 본사가 있는 저장성의 관리들이 잇따라 부정부패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것과 맞물려 자오웨이 역시 알리바바 부역자 색출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대만 자유시보와 연합보 등은 자오웨이가 지난 27일 새벽 프랑스 남부의 유명 와인 산지인 보르도 공항에 전세기편으로 도착했다는 소식이 웨이보에 급속히 퍼지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배우 정솽은 2019~2020년 개인소득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고 세금을 탈루한 혐의 등으로 벌금 2억9900만 위안(539억원)을 선고 받았다. 정솽은 미국에서 대리모를 통해 낳은 아이를 버린 것으로 알려져 이미 중국 연예계에서 퇴출된 상태다.

권지혜 베이징 특파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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