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재우고 벽시계를 봤는데 어느덧 밤 11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오늘따라 퇴근이 늦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도 문자를 보내도 답이 없다. 약속이 있거나 심방, 잔업이 있는 날이면 미리 연락하던 남편이었다. ‘조금 후에 연락이 오겠지.’ 밀린 집안일을 하며 연락을 기다렸지만 어떠한 답신도 없었다.
자정이 다 돼가도록 연락이 닿지 않자 며칠 전 “피로가 누적됐는지 몸이 좋지 않다”는 남편의 말이 떠올랐다. 순간 덜컥 겁이 났다. ‘교역자실에서 일하다 피곤해서 잠이 들었나’ ‘혹시 일하다 혼자 쓰러지기라도 했으면 어쩌지’ 오만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최근에 남편은 대상포진을 살짝 앓기도 했고, 간 수치도 피곤하면 정상 범위를 약간 웃도는 편이라 걱정이 앞섰다.
잠든 아이를 깨워 겉옷만 입힌 뒤 지하 주차장으로 갔다. 카시트에 아이를 태우고 교회로 향했다. 운전하면서 전화를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두려움이 엄습했다. ‘내가 이렇게 믿음이 부족한 사람이었나’ 싶어 자책도 해보다가 갑자기 눈물이 뚝뚝 흘렀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제발 제발 우리 남편 지켜주세요.’
교회 주차장에 도착해 주차한 뒤 출입구로 달렸다. 그 순간 남편이 교회 문을 열고 뚜벅뚜벅 걸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아, 주님 감사합니다!’ 흔히 드라마에서는 이럴 때 달려가 남녀가 눈물의 포옹을 하던데 현실은 달랐다. 남편을 보며 안도했지만, 한편으로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남편은 저녁 미팅 때 바꿔 놓은 휴대전화 ‘비행기 모드’를 되돌려놓는 것을 깜빡했다고 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탈진한 남편을 보며 휴가를 계획했다.
무더운 여름 취재현장에서 목회자와 사모님들을 만날 때면 “휴가는 다녀오셨나요”라고 묻는 게 인사였다. 교역자 가정에 여름휴가는 특별하기 때문이다. 직장인에게는 연차, 월차, 반차, 병가 여기에 공휴일도 있지만, 근로자가 아닌 목회자에겐 이런 휴가가 적용되지 않는다. 굳이 근무시간을 비교하자면 목회자들은 주 6일 근무에 새벽기도, 수요예배, 금요기도에 소그룹, 설교 준비로 법정근로시간인 주 50시간을 훌쩍 넘기는데도 말이다.
교역자들은 대부분 1주일의 여름휴가를 부여받는다. 1주일이라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목회자의 휴일인 월요일을 빼고 토요일, 주일에는 예배 준비를 위해 사역을 해야 해 참된 휴가는 4일에 불과하다. 4일 만에 육체적, 영적으로도 회복하기란 쉽지 않다.
한국교회 안에서 목회자의 휴식에 대한 중요성은 계속 강조돼 왔지만 여전히 쉼에는 인색하다. 목회자의 피로가 누적되면 교인들에게도 영적 유익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다행인 것은 목회자에게 월차를 허용하거나 주일을 포함한 2주간의 여름휴가, 1년에 두 차례(여름·겨울) 휴가를 주는 교회들도 늘고 있다.
얼마 전 주도홍 백석대 명예교수는 페이스북에 “한국교회도 5일제 근무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목회자들의 한 주간 하루 휴일은 너무하고 시대에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미국 개혁교단 CRC의 경우 공식 휴가는 2주다. 목회자는 교인의 삶과 보조를 맞출 때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말 무릎을 치게 만드는 글이다. 이런 관심과 의견이 모여 목회자 근무환경에 작은 변화로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한밤중 소동을 겪은 그날 이후 우리 가정도 4일간의 휴가를 다녀왔다. 휴가 중에도 남편은 쉬는 것과 일하는 것의 경계가 불분명했다. 목사님의 휴가 일정을 미처 알지 못한 성도들의 전화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휴가 마지막 날에는 부고가 전해졌다. 함께 부교역자로 사역했던 목사님이 개척한 뒤 사역을 강행해오던 중 갑자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기분 좋은 요즘이다. 교회들은 이제 하반기 사역을 시작한다. 목회자가 먼저 영적 육체적으로 건강해야 교회와 성도가 행복하다. 목회자는 절대, 절대로 슈퍼맨이 아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