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에 묻혀 있던 홍범도(1868~1943) 장군의 유해가 이번 광복절 우리나라로 송환됐다. 그는 최진동 장군 등과 함께 1920년 6월 7일 중국 지린성 봉오동에서 일본군 월강추격대를 상대로 대승을 거둔 봉오동전투의 영웅이다.
독립군과 일본군의 전력 차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지만 봉오동에서는 달랐다. 러시아제 모신나강 소총이나 독일제 마우저 소총, 맥심 기관총 등으로 중무장한 독립군의 총구가 일본군을 정조준했다. 넉 달 뒤 청산리대첩에서도 김좌진·홍범도 장군의 군대는 일본군을 최대 3000명 이상 사살하는 대승을 거뒀다. 최신 무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독립군은 대체 어디에서 이런 무기를 구했을까. 긴 이야기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던 1914년 시작된다. 오스트리아제국은 식민지였던 체코에서 군인을 징집해 러시아와의 전투에 배치했다. 이는 패착이었다. 체코군은 같은 슬라브 민족인 러시아에 곧바로 투항했다. 6만명 넘는 체코군이 일순간 러시아의 편에 서서 오스트리아로 총구를 돌렸다. 이들은 ‘체코군단’이라는 이름으로 재편됐다.
문제는 1917년 볼셰비키혁명으로 등장한 러시아 새 정부가 이듬해 3월 적이었던 독일과 연합국에서 이탈한다는 내용의 조약을 체결하면서 불거졌다. 이로 인해 체코군단이 러시아에서 싸울 명분이 사라졌다. 제3의 장소로 이동해 독립투쟁을 이어가야 했지만, 러시아-독일의 조약 때문에 육로로 서유럽으로 이동하는 길마저 막혔다.
이들은 시베리아 횡단 열차로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한 뒤 다시 배편으로 프랑스에 집결해 전열을 재정비한다는 엄청난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수만명이 열차로 이동하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었고 오랜 기간이 걸렸다. 체코군단이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1918년 말, 이미 세계대전은 끝났고 조국도 독립했다.
중무장한 체코군단에 무기는 짐이었다. 이들을 찾아온 게 독립군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무기거래가 성사되면서 최신 소총 1800정과 기관총 7문, 대포 3문, 수류탄 등이 독립군 손에 들어갔다. 봉오동전투와 청산리대첩에 신식 무기가 등장한 건 이 때문이었다.
무기 구입을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사업가들이 개인 재산을 냈다. 거부이자 크리스천이었던 독립운동가 최재형(1860~1920)이 대표적이었다. 물론 당시 연해주 일대에 살던 한인들도 성금을 냈다. 비녀와 가락지도 내놨다. 요즘도 체코 골동품 시장에서 우리나라의 옛 장신구가 거래되는 이유다. 신앙인이었던 최재형의 솔선수범이 없었다면 애초에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최근 개봉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드라마에는 부정적 이미지를 가진 기독교인들이 등장한다. 세상이 기독교인을 보는 눈높이가 투영됐다는 지적이 많다.
민족의 미래가 풍전등화에 놓였을 때 자신을 희생한 최재형의 헌신이 지금 기독교인들에게도 드러나야 한다고 말하는 건 과욕일까. 빛과 소금이 되라는 예수의 당부가 땅에 떨어져 밟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