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참배란 일본의 민간종교인 신도(神道)의 신사에 기독교 신앙인들을 포함한 한국인을 강제로 참배케 한 일을 말한다. 신사는 일본 신들을 봉안한 사당이다. 그런데 일제는 왜 신사참배를 기독교인에게 강요했을까.
신사참배는 어느 날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다. 당시 일본의 지배 이데올로기였던 국가신도라는 것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신사참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배경이 되는 국가신도가 무엇이며 이 국가신도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1543~1616)가 세이이타이쇼군에 취임하면서 사실상 전국을 통일했다. 그때부터 오랫동안 막부가 통치하는 막부체제를 유지한다. 그러다가 1853년 페리 제독이 이끄는 미국 군함에 의해 일본이 강제 개항되면서, 일본은 막부체제가 무너지고 천황이 직접 통치하는 중앙집권체제로 바뀌게 된다. 이때 메이지 천황이 등극하는데, 그가 황권 강화의 일환으로 수립한 통치이념이 국가신도였다.
국가신도는 대부분의 일본인이 믿고 있던 일본의 전통종교, 신도신앙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일본의 전통종교인 신도는 창시자도 없고 경전도 없는, 애니미즘이나 샤머니즘처럼 자연 발생적으로 성립된 종교다.
이 신도에서는 신이 800만이라고 할 정도로 수많은 신이 있다. 산, 강, 바람, 바다, 비, 짐승, 돌 등 자연물들 가운데서 인간에 영향력이 큰 것들을 신격화하여 신으로 숭배했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도 죽으면 신이 될 수 있다는 사상에 따라, 사회에 공헌한 영웅이나 귀족들도 신으로 숭배되었고, 또한 각 씨족이나 가족의 첫 번째 조상 또한 신으로 추앙되었다.
수많은 신 가운데서 특별히 창조주로 추앙되는 신이 있다. 남성의 신인 이자나기와 여성의 신인 이자나미이다. 일본인들은 부부신이 일본 섬을 비롯한 많은 섬과 바람, 바다, 수십 명의 신을 창조했다고 믿었다.
그런 가운데 이자나기의 왼쪽 눈으로부터 한 신이 탄생하는데, 이 신이 일본의 모든 신 가운데서도 가장 높이 숭배되는 해의 신, 아마데라스 오미가미(天照大神·천조대신)라는 여신이다.
이 태양 여신의 명령에 따라 이 신의 손자가 이 땅에 내려와 일본을 건국했으며, 이 신의 자손들이 일본을 통치한 역대 천황이라는 것이 신도의 신화와 믿음이다. 바로 이런 신화에서부터 일본 천황은 태양의 여신인 아마테라스의 직계후손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래서 일본은 신의 나라이며, 일본 국민 역시 신의 후손이라는 관념이 형성된 것이다.
메이지 천황은 오랫동안 민간신앙으로 내려온 신도신앙을 황권 강화의 도구로 사용했다. 그러나 근대화된 일본의 상황에서 신도신앙을 그대로 통치 철학으로 삼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신도신앙에서 가급적 종교적 요소를 배제하고 근본사상만 통치 철학으로 삼고자 했다. 그들은 이것을 교파로서 신도와 구별해서 국가신도라고 불렀다. 즉, 국가신도는 종교가 아니라 민족윤리를 체계화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국가와 천황에게 충성을 바쳐야 한다는 하나의 애국의식 개념으로 포장한 것이다.
국가신도의 내용을 구성하는 신사신도는 이렇게 규정한다. “일본은 신의 나라이고 이 나라는 태양 여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만세 일계의 손자 현인신 천황의 다스리는 나라이며 그 천황은 신성불가침이다. 이 천황에게 국민은 죽음으로써 충성할 것이며 천황의 황조황종(皇祖皇宗)인 조상신들을 모신 신사에 참배치 않는 것은 비국민이다.”
여기에 보면, 천황은 최고 신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손자일 뿐 아니라 현인신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그 천황은 신성불가침이란 것이다. 일본은 이것을 국가신도에서만이 아니라 1947년까지 효력이 미쳤던 대일본제국의 헌법 제3조에서도 명시했다. 황권 강화를 위해 천황을 단순한 왕이 아니라 신의 경지에까지 올린 것이다.
그리고 메이지 정부는 국민에게 천황에 대한 숭배감을 고취하기 위해 일본의 역대 천황뿐 아니라 여러 신을 모아놓은 신사에 가서 참배하는 것을 애국적인 국민의례로 정착시켰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정부 산하에 신사국을 설치하고 전국에 있는 모든 신사를 관장케 했다. 그리고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신사에 가서 참배하는 것을 국민의례로 만들어 의무화시켰다.
어떻게 보면 천황숭배가 국가신도의 본질이고 신사참배는 그것의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일본의 정책에 따라 조선의 기독교인에게도 신사참배가 강요된 것이다. 그러면 과연 이 국가신도가 종교성이 없는 단순 국민의례에 그쳤던 것일까. 이 문제는 3회에서 다룬다.
오창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