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공생애 시작 직전,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당한다. 40일 금식 직후의 예수님에게 나타난 사탄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마 4:3)이라며 돌을 떡으로 만들고,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보라고 꼬드긴다. 자신에게 경배하면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주겠다는 말도 한다.
천종호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는 이 대목을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님이 당하시게 될 고난의 데자뷰”라고 말한다. 주석서에서도 볼 수 없는, 무릎을 치게 만드는 해설이다. 예수님이 돌들을 떡으로 만들라는 사탄의 요구를 거절하는 모습에서, 십자가를 지실 때 쓸개 탄 포도주를 마시지 않는 장면이 연상된다. 성전에서 뛰어내리라는 시험은 로마 군인들 대제사장들 서기관들이 보는 앞에서 십자가에 달려 있던 강도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마 27:40)고 예수님을 희롱하는 장면과 겹친다. 만국을 주겠다는 사탄의 시험은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요 19:10)란 빌라도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려면 신학적 좌표와 역사적 좌표를 모두 동원해야 한다. ‘소년범의 대부’ ‘호통판사’, 자나 깨나 소년들 생각이라 ‘만사소년’으로까지 불리는 천종호 부산지법 부장판사가 ‘천종호 판사의 예수 이야기’(두란노)를 출간했다. 언뜻 들어선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예수님의 말씀을 마치 법조문 해설처럼 깊이 있고도 명쾌하게 풀어낸 책이다. 신학 용어가 아닌 법사회학적 언어로, 특히 젊은 층과 믿지 않는 이들까지 쉽게 읽도록 돕는다.
천 판사는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예수님에 관한 책이 많지만 결례를 무릅쓰고 세상에 또 한권의 책을 내놓은 이유는 제 아이들에게라도 예수님의 생애를 통합적으로 설명해 주자는 생각이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천 판사는 그가 섬기는 부산의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소속 교회에서 학생부 및 청년부의 성경공부와 수요예배 및 새벽기도회를 이끌며 깨달은 점을 저술의 기반으로 했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막내 아이가 200쪽 넘게 단숨에 읽어 내려가 기뻤다”고 말했다.
책은 복음서를 통해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선 기적이 아니라 말씀을 맛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믿음이 싹튼 이후엔 성령의 9가지 열매, 즉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마음을 가지게 된다고 설명한다.(갈 5:22~23) 이는 정의롭고 선한 삶을 고민하는 시민들에게 요구되는 바로 그 덕목이다. 천 판사는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선한 삶을 다룬 ‘선, 정의, 법’에 앞서 최고선인 ‘예수 이야기’를 먼저 집필했고 이번에 출간한 것”이라며 “3부작 완결편으로 공동선에 관한 책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