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봇기술로 설계부터 수행
통상 5∼10년 걸리던 백신 개발
불과 10개월만에 이뤄내
선진국들, 국가 차원에서 육성
한국, 2030년까지 6852억 투자
통상 5∼10년 걸리던 백신 개발
불과 10개월만에 이뤄내
선진국들, 국가 차원에서 육성
한국, 2030년까지 6852억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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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에 대응할 인류의 첫 반격 무기는 '메신저 리보핵산(mRNA)백신'이었다. 현재 화이자·바이오앤테크, 모더나가 개발한 두 개의 mRNA백신이 전 세계적으로 접종되고 있다. 이들 백신이 주목받은 것은 놀라운 개발 속도와 기간이었다. 백신이나 신약 개발에 통상 5~10년 걸리던 것을 불과 10개월만에 이뤄냈다.
특히 모더나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전체가 해독되고 42일 만에 백신 후보물질에 대한 임상시험(1상)에 진입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백신을 상용화했다.
특히 모더나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전체가 해독되고 42일 만에 백신 후보물질에 대한 임상시험(1상)에 진입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백신을 상용화했다.
mRNA백신 초고속 개발 숨은 주역
모더나의 이런 초고속 백신 개발 뒤에는 숨은 주역이 있었다. 바로 최신 의·과학 영역인 ‘합성생물학(Synthetic Biology)’과 이를 구현하는 수단인 ‘바이오파운드리(Biofoundry)’다.
합성생물학은 인공적으로 생명 시스템을 설계, 제작(조립), 합성하는 분야다. DNA나 RNA 같은 핵산(유전물질), 유전체(게놈), 단백질 등을 합성해서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인공 생명체(인공 세포 혹은 미생물)를 만들고 여기서 백신이나 의약품 개발에 필요한 재료를 얻는 것이다. 현재 단순 생명체의 경우 인공적 제작이 가능한 단계까지 기술이 발전했다. 올 3월 미국에선 세계 최초로 번식이 가능한 진정한 의미의 인공 생명체(세포)가 탄생하기도 했다. 유용한 기능을 하는 인공 생명체를 비교적 자유롭게 설계, 제작해 활용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바이오파운드리는 이런 합성생물학의 전 과정을 표준화, 자동화, 고속화한 시스템이다.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을 기반으로 설계(Design)-제작(Build)-검증(Test)-학습(Learn)의 과정을 자동화해 생물학 실험과 제조 공정을 수행하는 ‘바이오 자동화플랫폼’이다. ‘스마트 세포공장’이라고 할 수 있다. 바이오파운드리를 활용하면 바이오 연구의 오랜 난제였던 속도, 스케일(규모), 불확실성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짧은 기간에 생산성은 확 끌어올리고 비용은 크게 줄일 수 있는 것이다.
모더나의 mRNA 백신 개발에도 이 방식이 도입됐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전물질 mRNA가 안전하게 세포 내로 들어가 인체에서 적정 수준의 항원과 그에 대항하는 항체가 생성되도록 ‘인공 mRNA’를 대량으로 만들어야 했다.
이승구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합성생물학전문연구단장은 25일 “모더나는 합성생물학과 자동화 기술, AI를 통해 한 달에 평균 2000개의 mRNA를 합성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이 작업에 미국 바이오파운드리 기업 ‘긴코 바이오웍스(Ginko bioworks)’와의 협력이 주효했다. 긴코는 인공 미생물 설계-제작 자동화 모델을 구축했고 이를 통해 대량 제조된 mRNA 백신 원료를 모더나에 공급했다. 긴코는 바이오파운드리를 통해 생물학 실험 효율을 2~5배, 생산량은 10배 이상 끌어올렸다.
2008년 창업한 긴코는 400여명의 직원 중 생물학자는 100여명뿐이고 나머지는 IT나 로봇 기술자들이다. mRNA 백신 개발을 디딤돌로 올해 미국 나스닥에 상장해 가치 20조원 규모의 기업으로 급성장했다.
이 단장은 “mRNA 코로나 백신의 최단 시간 개발로 백신 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향후 경쟁은 바이러스 변이 속도에 필적하는 추가 백신 개발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모더나, 화이자는 델타 등 주요 변이에 대응한 ‘개량 mRNA백신’을 신속하게 개발해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합성생물학 파급효과 막대
전문가들은 AI와 로봇 등 4차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을 접목한 합성생물학이 제약·바이오는 물론 식품, 환경, 우주, 에너지, 화학, 농업 등 다양한 산업 영역에 막대한 파급 효과를 내고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실제 합성생물학 기술을 활용한 사례들이 국내외에서 다수 보고됐다. 질병을 감지하고 약물 분비 등 의약품 기능을 하는 ‘장내 미생물(마이크로바이옴)’, 인공 육류를 생산하는 식물이 제작됐다. 유전자를 조작한 말라리아 저항성 수컷 모기를 만들어 전염병 매개 모기를 퇴치하는 방법도 제시됐다. 이 밖에 폐플라스틱을 분해하는 인공 미생물, 수소 등 대체 에너지를 생산하는 균주, 우주의 극한 조건에서 견디는 물질, 석유 대체 바이오 연료의 생산도 기대할 수 있다.
한 전문가는 “특히 2050년경 화학산업의 50%가 바이오 화학으로 대체될 것”이라며 “합성생물학은 환경 친화적 바이오 소재 및 공정 개발에 기여함으로써 친환경·탄소중립으로의 전환을 촉진하며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에 핵심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합성생물학 산업 시장은 2020년 103억달러(약 12조3000억원)에서 2030년 1255억달러(약 149조8000억원)로 커질 것으로 예상되며 연평균 28.4%씩 성장하고 있다. 일부 선도적 바이오파운드리 기업은 바이오 화합물 상용화 기간은 2배 가속, 비용은 4배 절감하고 있다.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조병관 교수는 “미국의 바이오파운드리 기업 아미리스의 경우 말라리아치료제 상용화에 10년, 평균 신약 개발에 7년 걸렸는데, 바이오파운드리 도입 후 7년간 15개 신약 물질의 상용화에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정부, 뒤늦게 생태계 조성 나서
선진국들은 앞다퉈 국가 차원에서 합성생물학 육성과 바이오파운드리 구축에 나서 선두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올해 6월 미국혁신경쟁법에서 합성생물학을 10대 혁신기술로 지정했고 지난해 10월 국방성 산하 연구기관인 ‘다르파(DARPA)’에 합성생물학제조연구기관을 신설해 7년간 2억7000만달러를 투입키로 했다. 민간 투자도 적극 늘려 긴코 바이오웍스 같은 합성생물학 전문 플랫폼 기업이 700여개에 달한다.
영국은 세계 최초 국가 합성생물학 로드맵을 수립하고 정부 주도로 2012년 이후 7개의 합성생물학센터와 3개의 바이오파운드리를 구축했다. 2016년부터는 생물 정보에 AI 기술을 적용해 고도화된 생물 기능을 설계, 활용을 지원하는 ‘스마트 셀(smart cell) 프로젝트’도 추진중이다. 후발 주자인 중국도 2018년부터 7200억원을 들여 선전 지역에 바이오파운드리를 만들고 있다.
이에 비하면 한국의 합성생물학 현주소는 한참 뒤처져 있다. 최고기술 보유국인 미국 대비 75% 수준이다. 국가 차원의 육성 전략이 부족하고 전문 인력, 시설, 기업 지원 등 산업화 연계 노력이 미흡하다. 국내 기업 중 CJ가 유일하게 바이오파운드리 시설을 구축 중이지만 국제적 역량을 갖춘 합성생물학 전문 기업은 없는 실정이다. 합성생물학 연구·산업 생태계 구축을 지원할 법·제도 준비도 덜 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늦게라도 바이오 제조 혁신을 위한 합성생물학 생태계 조성에 발 벗고 나선 것은 다행스럽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주축으로 ‘바이오파운드리 구축 및 활용기술 개발 사업 계획’을 마련해 지난 8일 혁신성장 ‘빅3(바이오헬스, 자동차, 반도체)’ 추진회의에 보고했다. 빅데이터와 AI 기반 인공세포 설계·제작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정부 주도의 공공 바이오파운드리(일명 K-바이오파운드리) 구축과 활용기술 개발이 핵심 추진 과제다. 2023년부터 30년까지 6852억원을 투자키로 했다. 지난달부터 과학기술혁신본부의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대상 심사가 진행 중이며 오는 29일 발표를 앞두고 있다. 통과되면 예타 본심사를 거쳐 내년 4월 말이나 5월 초 최종 확정된다.
이 단장은 “공공 바이오파운드리를 구축해 범부처가 공동 활용하고 이후 민간기업을 참여시키는 방식이 훨씬 효율적”이라면서 “8년간 3단계로 추진되며 지금 생명공학연구원에 바이오파운드리센터 베타 버전(시험용)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합성생물학과 바이오파운드리는 바이오 관련 전 산업에 활용 가능한 ‘게임 체인저’로서 제2의 모더나 같은 성공 사례 창출도 가능하게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번 정부의 합성생물학 생태계 조성 추진이 ‘한국판 모더나’를 키울 자양분이 될 것이란 지적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팬데믹 감염병 대응과 탄소 중립 등 미래 글로벌 현안에도 지속 가능한 대안을 제시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대전=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