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큰 뜻 담은 성전, 한옥의 경계를 넘다

인천 강화군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은 지역주민에게 다가가기 위해 성경 메시지를 담은 한옥 양식으로 건축됐다. 1900년 축성한 이 성당은 2001년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됐다.
 
세상과 창조를 의미하는 네모진 들보 끝 십자가 문양의 단청.
 
예배당 정면 5개 기둥에 한시 대신 5대 교리를 한자로 적은 주련. 그중 삼위일체 하느님은 만물의 근원(오른쪽), 기쁜 소식을 전파해 영생의 길을 가르친다는 뜻이 담긴 주련.
 
바실리카 양식으로 지어진 예배당 입구에는 중국 석공이 만든 세례제대가 놓였다.
 
일제 때 빼앗긴 서양식 종 대신 성도들의 헌금으로 달아놓은 범종. 종 고리는 성령의 불꽃, 종 표면은 십자가 등이 음각과 양각으로 새겨졌다.
 
강화성당은 22개 석재 계단을 올라 솟을대문을 지나면 예배당과 사제관으로 이어진다.


취재 시작 전부터 남달랐다. 교회가 있는 군청에 ‘국가지정문화재 촬영 허가신청서’를 내고 촬영허가를 받았다. 교회 관계자는 “주말엔 사람이 많으니 주중에 오는 게 좋다”고 당부했다.

그런 이유로 평일인 지난달 29일 교회를 찾았는데 입구부터 문화해설사 설명을 듣는 관광객 무리가 보였다. 교회지만 관광객이 찾아오는 곳, 불교 사찰이나 전통 가옥인 줄 알고 왔다가 교회라는 걸 알게 되는 곳,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제424호)인 인천 강화군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이다.

이미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옥 교회’로 유명한 강화성당을 굳이 건축순례에 넣은 이유는 한국 교회건축의 역사와 철학을 오롯이 담고 있어서다.

강화성당이 건축을 시작한 건 1889년이다. 앞서 영국인 선교사들은 1883년 강화에서 선교를 시작했다.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이 만나는 지리적 위치를 보고 선교기지로 삼았다. 더구나 강화도 갑곶 나루터엔 조선이 외세 침략에 대응하려고 세운 지금의 해군사관학교인 통제영학당이 있었다. 이 학교 교관이 영국 해군 출신 콜웰 대위다.

일제 압박으로 통제영이 폐교되면서 영국 선교사는 콜웰 대위로부터 학교 부지를 매입하고 영국 성공회 후원을 받아 공사에 들어갔다. 건축 양식은 한옥을 선택했다.

이경래 관할사제는 “한성 한복판에 고딕양식 성당들이 세워졌는데 사람들에게 서양 건물은 익숙지 않았다”고 말했다. 더구나 강화도는 프랑스, 미국과의 전쟁인 병인양요(1866년), 신미양요(1871년)를 경험한 터라 서양인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지역주민과의 충돌을 막고 위화감을 없애는 게 필요했다. 품격 있는 한옥교회를 세우기 위해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중건에 참여한 도편수를 건축에 참여토록 했다. 도편수는 요즘 말로 건설 현장 소장이다. 건축 재료도 공 들여 마련했다.

“경복궁 중건으로 목재가 없어 신의주까지 가서 뗏목으로 백두산 나무를 가져왔고 석재는 강화도에서 공급받았어요. 석조 기술이 없어 중국의 석공도 데려왔고.”

22개 석재 계단을 오르니 태극문양에 둥근 곡선의 성공회를 상징하는 십자가를 그려 넣은 솟을대문이 나왔다. 문 뒤로는 예배당이 나타났다. 한자로 ‘천주성전(天主聖殿)’이라 쓰인 편액이 보인다. 한쪽엔 1901년 6월이라는 편액 날짜도 보이지 않게 적혀 있다. 외양부터 기존 한옥과 다른 게 많다. 꽃봉오리 모양의 한국식 십자가가 세워졌다. 둥근 들보는 우주와 하늘, 네모진 들보는 세상과 창조를 의미한다. 들보 끝 단청 무늬도 태극과 십자가다. 지붕 위 추녀마루엔 교회와 어울리지 않는 용 머리가 보인다.

강화군 이애경 문화관광해설사는 “용 머리가 앞과 뒤에 각각 6개씩 있다. 열두 제자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예배당을 둘러볼 차례다. 바깥문 5개 기둥에 적힌 ‘주련’이 보인다. 나무판이나 기둥에 한시나 산문 등을 새겨 걸어 놓는 장식물을 주련이라 한다. 강화성당 기둥의 주련엔 한학자의 감수를 받아 삼위일체, 창조 등 5대 교리가 한자로 적혀 있다.

내부도 한옥에 대한 고정관념을 흔든다. 일반적으로 한옥은 전면이 가로로 넓은데 강화성당 예배당의 전면인 가로는 4칸, 세로는 10칸으로 길쭉하다. 구조는 바실리카 양식을 따랐다. 바실리카는 고대 로마 공화정 시대 재판소나 집회장, 관공서 등 공공 목적으로 사용된 대규모 건물의 건축 양식이다. 중앙의 넓은 홀을 기둥이 둘러싸고 천장을 높게 해서 창문을 달아놓는 게 특징이다.

중국 석공들이 만들었다는 등록문화재 7-5호 세례제대를 지나니 일렬로 늘어선 20개 기둥이 보인다. 2층 창문으로 들어온 햇볕은 회중석을 비춘다. 이 사제는 “교회하면 떠오르는 스테인드글라스 대신 투명 유리로 창을 낸 건 밝기 조절과 함께 하나님 은총을 빛으로 느끼도록 하기 위함”이라며 “유리는 일본에서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이 해설사는 “당시 유리 기술이 좋지 않아 흠이 많다”면서 “깨끗한 유리는 바꾼 것이고 지저분한 유리는 당시 일본에서 가져온 그대로”라고 전했다.

예배당 가장 안쪽 지성소가 보인다. 만유근원이라 적힌 현판 아래 화강암으로 만든 제단엔 6개 촛대가 세워져 있다. 지금도 강화성당에선 매주 주일예배를 드리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예배 모습과 차이가 있다. 목회자인 사제는 성도와 마주보는 게 아니라 제단 앞에서 벽을 향해 서서 예배한다.

이 사제는 “구약에선 양과 소를 바치는 희생예배를 드려 사제는 벽을 보고 예배했다”면서 “20세기 들어오면서 교회들은 예배 형식을 고민했는데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 때 떡과 포도주를 나누며 상통하는 것이 예배 모습임을 알게 됐고 예배 형식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강화성당은 그전에 만들어져 이전 예배방식을 따른다는 게 이 사제 설명이다.

다만 매년 11월 15일 축성일부터 이듬해 부활절까지 겨울 추위를 피해 바로 옆 교육관 소예배실에서 예배하는데 그때는 사제와 성도가 마주본다.

121년이라는 시간의 흐름도 강화성당엔 오롯이 담겨 있다. 대문으로 들어오면 보이는 게 종이다. 1914년 영국에서 가져왔다는 유럽식 종은 사라지고 불교 사찰에 사용하는 범종이 성경 메시지를 담아 자리했다. 종의 고리는 성령의 불꽃을 표현했고 종에는 십자가와 요한복음 1장 1절 등이 양각과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이 사제는 “일제가 무기를 만들겠다며 계단 난간, 종 등 철을 가져갔다”면서 “난간은 2010년 일본의 성공회 성도들이 사죄의 마음을 담아 마련해 줬고 범종은 1989년 성도들의 헌금으로 만들었다”고 전했다.

예배당 안 250석 나무 의자는 1980년대 들어왔다. 그전엔 바닥에 앉아서 예배했다. 초기엔 남녀칠세부동석을 이유로 가운데 가림막을 만들어 남녀가 나눠 앉았다. 출입구도 남자는 정문, 여자는 우측 옆문이다. 여자가 출입했다는 문과 맞은편 왼쪽 문이 눈길을 끈다. 영국에서 가져온 문에는 영국 국기인 유니언잭 문양이 있다.

이 사제는 “강화성당은 성공회 정신이 오롯이 담겨 있다”며 “어울림과 조화, 균형 그리고 내재를 통한 초월”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이 사제가 다음 회차를 자연스럽게 예고했다.

“강화성당은 주가 한옥, 부가 서양 건축 양식이었다면 서울 중구 정동의 성공회 서울 대성당은 주부가 반대예요. 두 성당을 비교해서 보는 재미가 있을 겁니다.”

강화=글 서윤경 기자, 사진 강민석 선임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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