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교역자의 이동이 시작되는 11월이다. 부교역자는 짧게는 2~3년에 한 번씩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새로운 임지로 떠난다. 성도들은 “왜 우리 교회에 오래 안 있느냐”며 푸념할 수 있겠지만 부교역자들은 담임 목회를 맡기 전 다양한 목회를 경험하기 위해 떠난다.
헤어짐과 만남의 반복이지만 정든 교회와 성도, 동역자들과의 이별은 늘 여운을 남긴다. 마음만 먹으면 자주 만날 수 있을 것 같지만 새로운 임지에서 만난 성도들을 섬기다 보면 어느새 추억과 그리움만 남고, 이곳에서도 끝이 있음을 알기에 하루하루를 더욱 소중하게 채워간다.
사모로 경험한 첫 번째 이별은 슬픔보다 기대와 설렘으로 기억된다. 남편이 전도사, 강도사를 거친 뒤 처음 목사로 부임해 가는 ‘설렘’이었다. 사임을 앞두고 담임목사님 내외를 비롯한 모든 동역자가 한자리에 모였다. 식사 교제를 나누며 우리 부부와 함께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서로를 격려하고 축복하는 시간을 가졌다.
담임 사모님은 손으로 직접 쓴 편지를 건넸다. ‘어느새 수년이 지나 벌써 헤어짐을 마주하다니,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라고 주신 일 늘 점검하고, 있는 곳에서 정성 다해 사역하길, 가끔 허리 펴고 쉬려 할 때 추억 속에 웃음 띠고 이어보고 싶은 우리이기를….’
철없던 전도사 사모가 어느덧 목사 사모가 돼 새로운 임지로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마치 딸을 시집보내는 것 같으셨나 보다. 눈 닿는 곳에 이 편지를 세워 두고 한 번씩 읽어보며 힘을 얻곤 했다.
젊은 세대와는 문자 외에도 SNS로 서로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지만, 나이가 지긋하신 권사님들과의 이별이 가장 힘들다. 그래서일까. 두 번째 이별은 ‘슬픔’으로 회상된다. 오랜 역사를 가진 전통 교회에는 유달리 어르신이 많았다. 권사님들은 아이가 생기지 않는 우리 부부를 위해서 기도해 주셨다. 7년 만의 임신 소식에 맛난 반찬은 물론,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위해 털실로 손수 짠 모자와 목도리도 선물해 주셨다. 태어난 아이는 권사님들에게도 큰 기쁨이었다.
교회를 사임하고 2년이 지난 어느 날 남편은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엄마가 천국 가기 전까지 목사님 보고 싶다고 참 많이 찾으셨어요.” “집사님 전화를 주시지 그러셨어요. 제가 먼저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소천하신 권사님의 딸로부터 걸려온 전화에 남편은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사임하던 날 “살아생전에 우리 목사님, 사모님 또 볼 수 있을까” “나중에 내 장례식에는 꼭 와줄 거지”라고 말했던 권사님 모습이 떠올라 그날 우리는 참 많이도 울었다.
세 번째 이별은 ‘아쉬움’이다. 2년 전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던 날, 교역자 가정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복에 저고리까지 곱게 차려입은 담임목사님 부부를 필두로, 사역자 부부들이 강대상에 함께 올라가 성도들에게 큰절을 올렸다.
발 디딜 틈 없이 본당을 가득 메운 성도들은 박수로 감사를 표했다. 그렇게 서로의 얼굴을 익히고 교제를 시작하려 할 때쯤 코로나19가 확산됐다. 성도가 없는 텅 빈 예배당을 보며 예배의 소중함과 소그룹 공동체의 소중함을 깨닫는 날이 많았다. 온라인으로 성도들과 교제하고 사임 인사도 비대면으로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교회마다 다양한 사임 이야기를 듣게 된다. 교역자를 축복하며 떠나보내는 교회가 대부분이지만, 사랑으로 헌신하고 수고한 교역자에게 일방적으로 사임을 통보하거나 인사도 없이 떠나보내는 교회도 더러 있다 한다. 이별에도 예의와 품격이 필요한 것 같다.
부르심에 따라 순종하며 나아가는 사모들을 응원한다. 이사 문제부터 아이의 전학, 새로운 곳에서의 만남과 교제 등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지만 언제 우리가 이런저런 환경을 따져가며 사역했나.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혜만 구할 뿐이다.
성도들에게도 당부하고 싶다. 보고 싶고 그리울 때 주저하지 마시자. ‘아직 나를 기억할까’ ‘바쁜데 방해되진 않을까’ 머뭇거리지 말고 이렇게 문자를 보내보면 어떨까. “목사님 사모님 건강하시죠. 저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문득 그리워서 안부 묻습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