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제자’ 기둥으로 나란히 선 예배당 십자가 사랑을 새기다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서울대성당)은 둥근 아치와 낮은 천장, 작은 창 등 로마네스크 양식을 만날 수 있다. 아치는 리듬감을 느끼게 하고 낮은 채도는 경건함을 배가시킨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서울대성당은 십자가 모양이다.
 
서울대성당 예배당 안에는 둥근 아치를 떠받치는 12개 기둥이 있다. 기둥은 열두 제자를 의미한다.
 
서울대성당 서쪽 편엔 하나님과 인간을 의미하는 쌍둥이 탑이 세워져 있다.
 
서울대성당은 화강암의 석조 건물과 오렌지빛 서양식 기와를 사용해 덕수궁 등 주변 풍경과도 어우러진다. 벽돌로 둥근 아치와 기둥을 표현한 블라인드 회랑이 눈길을 끈다.
 
서울대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에 한옥의 미를 더했다. 한옥의 격자 창살을 적용한 예배당 안 고층 창.


둥근 아치를 떠받치는 기둥이 예배당 양옆으로 열을 맞춰 서 있다. 기둥 상단은 녹색과 빨간색 페인트로 소박하게 장식돼 있다. 녹색은 영생, 빨간색은 보혈을 상징한다.

“리듬감이 느껴지지 않나요.”

성공회대학교 이정구 전 총장은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서울대성당) 안 예배당 기둥을 따라 걸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둥근 아치의 끝이 기둥을 타고 물결처럼 연결돼 있었다. 기독교미술과 교회건축 이론가로 유명한 이 전 총장은 2011년 발간한 ‘건축신학(Architecture Theology)’ 등 자신의 책에서 서울대성당을 소개했다.

서울대성당엔 유럽 성당 하면 떠오르는 스테인드글라스나 높은 천장은 없었다. 로마네스크 양식을 대표하는 둥근 아치와 낮은 천장, 작은 창이 대신했다.

정동역사재생지역협의체가 2019년 발간한 ‘정동 이야기’에선 서울대성당을 ‘로마네스크 양식 속에 한옥 양식이 깃들었다’고 설명했다.

성공회는 1909년 대지를 확보하고 2대 단아덕 주교의 주도로 대성당 건립을 위한 모금을 시작했다. 건립은 3대 조마가 주교 때 시작됐다. 조마가 주교는 1896년부터 강화도에서 사역하며 1900년 강화성당(국민일보 11월 6일자 8면 참조)을 세우고 영국으로 돌아갔다가 10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대성당 건립에 나섰다.

이 총장은 “유교 사상이 강한 지역을 고려해 강화성당은 한옥으로 지었지만, 서울대성당은 한국 성공회의 본부라는 상징이 있어 영국 본부가 서양식 건축을 원했다”며 “영국 건축가 아서 딕슨을 초청해 주변 환경에 어울리면서도 한국인 심성에 맞는 예배당을 건축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당시 언덕이던 지금의 장소엔 화려한 고딕보다 위압감이 덜한 로마네스크가 맞춤이었다. 1926년 축성했지만 1차 세계대전으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으며 처음 설계대로 완성하지 못했다. 위에서 보는 서울대성당은 가로세로 길이가 같은 십자가 모양이 됐다. 그러다 김중업 선생의 제자인 김원 선생이 미완성을 끝맺기 위해 1996년 예배당을 확장하면서 세로로 긴 십자가 형태가 됐다.

강화성당 관할사제인 이경래 신부는 “서울시 유형문화재다. 예배당을 확장해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정동 이야기’ 필진으로 참여한 이 신부는 강화성당에 이어 서울대성당 순례길에도 함께했다.

내부로 들어가니 익숙한 구조가 나온다. 한옥 형태 목재건축인 강화성당과 석재로 세운 로마네스크 양식의 서울대성당은 달라도 너무 다름에도 직사각형에 기둥과 회랑이 있는 바실리카 양식을 따랐다. 낮은 채도 덕에 엄숙함이 느껴졌다. 이 총장은 “로마네스크의 석조 지붕 무게를 버티기 위해 벽이 두꺼워졌다. 유럽의 한 성당은 벽면 두께가 3m”라며 “천장은 낮고 창도 크게 낼 수 없어 빛이 적게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중앙통로 좌우 12개 기둥은 열두 제자를 뜻한다. 지붕에서 내려오는 둥근 아치를 받치며 서 있다. 제대 쪽으로 걸어가니 중앙통로의 양옆으로 뻗어 나가는 길, 익랑이 나온다.

이 총장은 “가로, 세로 통로의 교차점은 빛이 들어오는 광탑(光塔)”이라며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고 했다.

제대 뒤 반원형 돔인 앱스(APSE)에 황금빛 모자이크가 보인다. 높이 15m, 폭 11m의 모자이크화는 영국 장식미술가인 조지 잭이 1927년 작업을 시작해 1938년 완성했다. 가장 높은 곳의 예수님은 삼위일체를 뜻하는 오른손 세 손가락을 펼치고 있다. 왼손은 ‘나는 세상의 빛’이라 적힌 성경을 들고 있다.

제단 오른쪽 문 뒤 준비실엔 종탑의 종을 울리는 줄이 있다. 종은 1926년 영국의 종 제조 전문회사인 테일러가 만들었다. 강화성당에도 같은 종이 걸려 있었지만 일제 때 뺏겼다. 서울대성당 종은 높은 종탑에 걸려 있어 수탈을 피했다. 덕분에 지금도 평일엔 매일 새벽 6시, 낮 12시, 저녁 6시에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 수난 기간에는 종을 치지 않는다.

아서 딕슨이 만든 자개문양 주교좌, 1450개 파이프로 이뤄진 해리슨사의 파이프오르간도 서울대성당의 자랑이다.

지상에 있음에도 예배당 아래에 있어 지하성당(crypt)이라 불리는 곳으로 향했다. 바닥 중앙엔 영국의 동판 제작자 프랜시스 쿠퍼의 동판화가 있다. 세밀하게 묘사된 조마가 주교와 함께 동판화 테두리엔 4복음서를 상징하는 천사(마태) 사자(마가) 황소(누가) 독수리(요한)가 복음서를 펼쳐 들고 있다. 대한성공회 문장인 십자가 방패도 있다. 당시 한국의 13개 도를 상징하는 13개 떡갈나무 잎이 둘러싸고 있다. 동판화 아래엔 사대문 안에 매장할 수 없다는 1930년 당시 관례를 깨고 조마가 주교가 잠들어 있다. 사대문 안 현존하는 유일한 묘소다.

외부 구조도 흥미롭다. 화강암의 석조 건물, 오렌지빛 서양식 기와, 붉은 벽돌은 바로 옆 덕수궁 돌담과 어우러진다. 미학적 세심함도 돋보인다. 앱스 뒤 야외 예배를 드리는 발코니와 이어지는 양옆 벽면엔 벽돌로 기둥 모양을 만들어 회랑을 표현했다. 블라인드 회랑이다. 예배당의 고층 창에는 한옥의 격자 창살을 넣었다. 교회 건물의 서쪽 양옆에는 쌍둥이 탑이 세워져 있다. 이 총장은 “한쪽은 하나님, 다른 한쪽은 인간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서울대성당 뒤쪽 한옥 건물인 주교관과 경운궁 양이재도 흥미롭다. 양이재는 구한말 대한제국의 황족과 귀족들의 근대식 교육장으로 사용한 건물이다. 성공회가 매입해 대성당 뒤편에 옮겼다.

서울대성당은 한국의 근현대사도 품고 있다. 서울의 중심인 숭례문 경복궁 시청과 덕수궁 인근에 자리했음에도 조선총독부가 세운 체신부 건물에 가려 오랜 세월 소외됐다. 서울시가 2015년 8월 이 건물을 허물면서 비로소 대중의 시선에 들어왔다. 한국전쟁 당시 총탄 자국도 남아있다. 1987년 6월 항쟁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이 총장은 “건축 양식보다 중요한 건 교회라는 공간에 들어오는 순간, 어떤 경험을 주느냐”라며 “천편일률적인 교회 형태에서 벗어나 교회가 추구하는 철학을 공간에 어떻게 담아낼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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