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유럽 발칸반도 서부의 알바니아는 한때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사회주의 독재체제 땐 종교 활동도 금지됐다. 하지만 1991년 알바니아 공화국이 되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인구 절반 이상이 이슬람교도이지만 종교 비자를 쉽게 받을 수 있고 선교사도 환영한다.
독일과 알바니아를 오가며 선교하는 이향모 선교사가 지난 14일 알려온 알바니아 소식이다. 이 선교사는 부산장신대, 서울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목사고시에 합격한 뒤 사역지를 찾던 중 유럽을 봤다.
“매일 지도를 보며 기도하는데 유럽의 중심부인 독일에 시선이 갔어요. 성령님께서 독일과 알바니아를 선교지로 준비하시고 저를 인도하신 것 같아요.”
이 선교사는 1982년 11월 선교사 파송도, 재정 지원도 없이 전도사 신분으로 서독에 도착했다. 재정이 바닥날 때쯤 프랑크푸르트에서 출발한 기차 안에서 미군과 결혼한 한국 여성들을 만났다. 당시 미국은 서독에 군대를 파견했다. 미군과 결혼한 한국 여성들은 한인교회가 없다며 이 선교사를 가정예배에 초청했다. 한인교회 개척의 시작이었다. 미군 부대를 찾아다니며 한인교회를 세웠다. 그 사이 한국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아내 윤경숙 선교사와 결혼했다. 그는 1990년 독일 통일 뒤 유학생 선교로 방향을 바꿨다. 알바니아를 바라본 건 1992년 7월이다.
“미국 시카고의 빌리 그레이엄 센터에서 한인세계선교대회가 열렸는데 한국인 자매가 눈물을 흘리며 알바니아에 복음을 전해달라고 말했어요.”
이 선교사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그해 10월 선교 답사를 위해 찾은 알바니아의 첫인상은 충격적이었다. 아이들은 거리에서 구걸했고 병원엔 마취제가 없어 환자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는 복음 전도가 시급하다고 봤다. 독일에서 알바니아를 오가며 선교하는 한계를 극복하려면 전략이 필요했다. 교육과 문화였다. 당시 알바니아에선 컴퓨터를 찾기 어려웠다. 교육부 장관에게 컴퓨터 후원을 약속하며 교육 장소를 제공받았다. 독일에서 쓰지 않는 286·386 컴퓨터 10대를 라취시로 가져와 1994년 1월부터 이 지역 고등학교에서 학생 교사 공무원 등을 교육했다. 영어 수업도 인기였다. 수강자가 많아질수록 말씀 전할 기회도 늘었다. 전도도 안 했는데 무슬림까지 찾아왔다.
탁구를 활용한 스포츠 사역,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성경학교와 수련회도 열었다. 이렇게 활동하면서 이 선교사는 라취시 유명인사가 됐고 명예시민으로 추대됐다. 라취시장, 국회의원들에게 발전한 한국을 소개하기도 했다.
복음을 전하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라취교회, 바토래선교교회에서 예배를 드렸고 성도를 사역자로 훈련시켰다. 매년 발칸 12개국 현지 목회자와 교회 지도자를 초청해 발칸 선교대회도 열었다. 이 선교사는 “발칸 국가들은 동·서 로마제국과 오스만 터키제국의 영향을 받았다. 세계 선교 지형을 보면 개신교가 절대적으로 약한 곳”이라고 했다. 그는 알바니아와 발칸반도를 위해 기도를 요청했다.
“다음세대를 위해 한국교회 선교사와 단기팀들이 많이 왔으면 해요. 발칸 복음화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알바니아는…
“사도 바울이 다녀간 일루리곤 지역이다. 1478년 오스만 터키제국에 멸망당한 뒤 국민의 70%가 무슬림으로 전향했고 지금도 이슬람교 영향력이 높다. 1967년 독재자 엔버 호자는 종교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했는데 민주화 시대가 되면서 종교도 회복 중이다. 이슬람 영향을 받는 나라 중 선교하기 가장 좋은 복음의 황금어장이다.”
-경제·사회적 상황은 어떤가.
“개방 초기보다 상당히 발전했지만 여전히 어려움이 있다. 생계를 위해 젊은이들은 경제 난민 형태로 유럽 각국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다음 세대 리더가 될 이들이 나간다는 뜻이다. 선교를 준비하신다면 영적 문제와 함께 직업 교육 등의 선교구조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알바니아 선교를 준비하는 이들을 위해 추가로 전할 조언이 있다면.
“알바니아에서 외국인 선교사들은 수도와 대도시에서 활동한다. 주민 수가 많지 않은 읍 규모의 마을에서 사역해 볼 만하다. 선교는 예수님 말씀대로 뱀 같이 지혜롭게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타종교를 부정하기보다 적극적으로 생명의 복음을 전해 영혼들이 구원받게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알바니아 사람들은 한국처럼 정도 많고 인간관계를 중시한다. 그 지역에서 좋은 평판을 얻어야 한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