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망하지 않는다… 시인들이여, 독자 곁으로 내려오라”

충남 공주시에 사는 나태주 시인이 지난 9일 자전거를 타고 골목길을 달리고 있다. 평생 운전을 해본 적이 없다는 그는 외출할 땐 늘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공주풀꽃문학관과 인접한 이 오래된 골목길에는 곳곳에 나 시인의 시가 적혀 있어 기념사진을 찍는 이들도 많다. 공주=김지훈 기자
 
평소 즐겨찾는 카페 앞마당에 앉은 나태주 시인. 공주=김지훈 기자


어떤 작가는 칠십이 넘어 발견되기도 한다. 나태주 시인이 그렇다. 팔순이 가까운데 “지금이 내 인생의 전성기”라고 말한다.

작년과 재작년 출판시장에는 나태주 책이 한 해 20권 넘게 나왔다. 신작시집, 시선집, 회고록, 산문집, 시화집, 동화집, 공동시집, 편지집, 필사시집, 컬러링시집, 동시집, 청소년시집, 재출간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태주 책이 쏟아졌다. 새해에도 아이돌그룹 BTS의 가사에 그의 산문을 더한 ‘작은 것들을 위한 시’가 예약 판매를 시작했고 신작시집 두 권과 종교시집, 산문시집 등이 출간될 예정이다.

그는 TV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고 그의 시집은 드라마에 나온다. 연예인과 브랜드의 콜라보 작업 요청이 이어지고 전국에서 강연 요청이 쇄도한다.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에만 25회나 강연에 나섰다.

지금 시대 가장 사랑받는 시인이라면 단연 나태주다. 77세의 시인이 셀럽이 돼버렸다. 시를 안 읽는 시대, 시집이 안 팔리는 시대에 ‘나태주 신드롬’은 기이할 정도로 예외적인 현상이다.

지난 9일 오후 충남 공주시 구도심의 오래된 카페에서 시인을 기다렸다. 자전거를 타고 나타난 시인은 평소 즐겨 마신다는 홍차를 주문했다. 차를 한 잔 따라주고는 “코로나 때문에 내 책이 많이 팔렸다”고 말했다.

“코로나가 오면서 사람들 기가 확 꺾였다. 가게만 셧다운된 게 아니고 사람들이 다 갇힌 거다. 춥고 외롭고 화가 나고 빛이 그립고…. 어두우면 불을 켜고 방에 습기가 차면 제습기를 가동한다. 그런데 우리 마음은 어떻게 할 거냐. 사람들은 트로트로 몰려가고 애완동물 기르기나 정원 꾸미기, 음식 만들기로 갔다. 사양 문화였던 트로트가 살아나고 백종원이 음식대통령이 됐다. 밖에서 하던 일이 불가능해지니까 안으로 눈을 돌리게 되고 시에 대한 관심도 생겨났다. 그때 나태주의 시가 있었던 것이다.”

지난해 3월 출간된 나태주 시선집 ‘가지 말라는데 가고 싶은 길이 있다’는 500쪽 가까운 두툼한 시집인데 2만부 넘게 팔렸다. ‘풀꽃’ 등 나태주의 유명 시들을 수록한 ‘꽃을 보듯 너를 본다’는 2015년 출간됐지만 아직도 시집 분야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금까지 60만부 이상이 판매됐다. 나 시인은 “시가 그만큼 필요하다는 것”이라며 “시는 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와도 감정이나 마음을 다스리는 산업이나 상품은 죽지 않을 것이다. 지금 사람들이 많이 불안하다. 문화는 감정을 다루는 사업인데, 제대로만 다루면 손님들이 사주지 않을 까닭이 없다. 그런 점에서 시가 유리하다. 요즘 대하소설이 읽히지 않는다. 서사가 아니라 서정이 문제다.”

최근 발행된 문학잡지 ‘문학사상’(2022년 1월호)에는 나 시인의 시론이라 할 수 있는 ‘시는 망하지 않습니다’란 글이 실렸다. 이 글에서 그는 시의 시대가 갔다는 건 어림없는 말이라며 “시의 문장이 바로 감정의 문제인데, 인간에게는 감정이란 것이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썼다. “인간의 감정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시입니다. 시야말로 감정을 소재로 하는 글이고, 감정을 나누기에 가장 적합한 문화형식이요 예술형식입니다.”

그는 “아무도 감정에 대해 말해 주지 않으니 걱정”이라며 “시인은 세상 사람의 감정을 돌봐주는 서비스맨이라고 생각한다”는 말도 했다. 그러면서 “마음이 담기지 않은 건 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서정시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서정시가 아니면 시가 아닌 것이다. 마음이 담기지 않은 건 시가 아니다. 시는 서정인데 자꾸 서사로 간다. 시인들이 왜 소설을 쓰느냐. 시는 소설이 아니다.”

나태주의 시는 짧고 쉽다. 거대하고 추상적인 주제를 다룰 때도 그의 시는 한없이 소박하다. ‘행복’이란 시는 이렇다. “저녁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

시가 뭐냐고. “그냥 줍는 것이다// 길거리나 사람들 사이에서/ 버려진 채 빛나는/ 마음의 보석들.”

그의 쉬운 시를 시인이나 평론가들은 높게 쳐주지 않았다. 그를 발견한 건 대중이었다. 10년 전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현판에 그의 시 ‘풀꽃’이 걸린 게 계기였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스물네 글자밖에 안 되는 이 시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가장 중요한 문장은 마지막 ‘너도 그렇다’이다. ‘나만 그렇다’고 썼더라면 이 자리에 올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내(시인) 마음에 살았던 시가 너(독자)의 마음에 가서 살지 않으면 절대 끝”이라고 했다.

“시가 내 마음에서만 살면 안 된다. 더 많은 사람 마음에 가서 살아야 진정한 시다. 그런데 문예창작과에서는 이런 걸 안 가르친다. 레토릭이나 신춘문예에서 당선되는 법만 가르친다. 그게 한국 시를 망치고 있다.”

한국시인협회 회장인 그는 시인들을 향해 “잘난 척하지 말고, 아는 척하지 말고, 있는 척하지 말고, 거룩한 척하지 말라”며 “독자들 곁으로 내려오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BTS 얘기를 들려줬다.

“BTS 노래에 대해 쓴 산문집이 곧 나오는데, 그들이 쓴 가사를 보면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자기들하고 똑같다는 말이 계속 나온다. 자기들 역시 가난했고 친구가 없었고 작은 방에 살았다, 그런데 네가 나타나서 조금씩 좋아졌다, 그런 말에 젊은이들이 열광한다. 엄청난 스타지만 우리하고 똑같다고 얘기한다. 심지어 RM은 우리가 부르는 노래는 당신들에게 보내는 팬레터다, 우리가 아이돌이지만 당신들도 아이돌이다, 이렇게 얘기한다.”

그는 “나는 곧 팔십이 되지만 BTS와 그런 생각을 공감한다”면서 “독자에게 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강연 요청이 오면 어떤 자리인지 따지지 않고 응하고 정성스레 사인을 해주고 아이들에게도 명함을 건넨다. 독자들과 문자 메시지나 이메일을 주고받는다.

그는 시를 쓰는 이유가 시인이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공헌하기 위해서라는 점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시인으로 불리지 않아도 좋다. 시를 씀으로써 내가 살아난 것처럼 내 시가 다른 사람에게 가서 그들도 살릴 수 있기를 바란다”고 얘기한다.

“나는 시를 사람들이 길거리에 버리고 가는 보석이라 생각한다. 나는 그걸 주워서 버리고 간 사람에게 돌려주는 것”이라는 얘기도 자주 한다. “내 시 중에 ‘약속’이란 시가 있다. ‘내일 그 애를 다시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 나서 ‘오늘이 내일이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썼다. 이게 뭐냐. 그냥 아이들이 하는 말이다. 그들이 하는 얘기를 받아쓴 것이다.”

그는 길고 어려워지고 서사에 치중하는 한국 시의 흐름을 불만스레 바라보고 있다. ‘독자 없는 시’를 이대로 두고 볼 것인가. 여기서 나태주는 시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보자고 한다. 쉬운 시, 감정을 전하는 시, 독자를 위한 시를 얘기한다.

“내 마음에 살았던 시가 너의 마음에 가서 살지 않으면 절대 끝”이라는 그의 말이 독자의 부재를 고민하는 한국 시에 하나의 대답이 될 수 있을까.

공주=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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