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 23:10, 개역한글)
“간사한 무리들이 기세를 떨쳤지만, 하늘이 너를 옥으로 쓰시기 위함이라(憸人旣張 天用玉汝)”(다산 정약용 자찬묘지명 광중본)
‘고난에 대한 다산 정약용과 욥의 대화’(영성나무)는 이중나선 구조의 독특한 책이다. 고난과 영성을 주제로 구약 시대의 욥과 조선 시대의 다산 정약용이 번갈아 가며 등장한다. 저자는 이경용(63) 청주영광교회 목사다. 앞서 ‘감정 치유 기도’(두란노) ‘말씀묵상기도’(예수전도단) 등을 저술한 이 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소속으로 영성신학과 영성목회를 추구하는 교수와 목회자 70여명의 모임인 ‘영성나무’ 대표를 맡고 있다. 50대에 광교소망교회를 개척해 담임 목회를 하다 최근 고향 교회의 청빙을 받아 충북 청주로 사역지를 옮겼다.
지난 17일 교회 목양실에서 만난 이 목사는 다산과 욥의 공통점으로 ‘정금과 옥(玉)으로의 정화’를 꼽았다. 그는 “고난을 당할 때 욥은 ‘단련 후에 정금 같이 나오리라’ 고백했고, 다산은 18년 귀양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 회갑을 맞이하며 쓴 묘비명에서 자신의 고난을 ‘옥으로 쓰시기 위함’이라고 고백한다”고 밝혔다. 책은 고난을 주제로 욥과 정약용을 들여다보며 이들이 이를 어떻게 수용하고 이겨내려고 몸부림쳤는지 따라가 보는 여정이다. 곳곳에 각주를 달아 근거를 밝혔으며 후행 공부를 돕는 친절함도 갖췄다.
책 앞부분에 자식을 먼저 보내는 고통, 참척(慘慽)의 아픔이 나온다. 다산은 6남 3녀를 두었으나 2남 1녀만 장성했다. 막내아들 이름을 농아(農兒)로 지었는데 폐족의 자식이니 농사를 성실히 지으며 살아가란 뜻이었다. 정조의 총애를 받던 조선 제일의 학자이자 관료였다가 하루아침에 폐족이 된 다산은 귀양 2년 만에 네 살배기 막내를 잃었다. 다산은 ‘농아광지’란 관에 넣는 글을 통해 아빠를 그리워할 아들을 위해 강진에서 인편에 보냈던 소라껍데기를 떠올리며 오열한다.
욥 역시 열 자녀를 사고로 한꺼번에 잃는다. 기독교 시인 김현승은 시 ‘눈물’에서 어린 아들의 죽음을 ‘나의 가장 나아중 지니인 것’으로 노래했다. 소설가 박완서는 1988년 남편의 사망 3개월 만에 스물다섯 살 의사 아들을 잃고 소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을 쓴다. 이를 언급하며 이 목사는 “부모에게 자식이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이 목사는 다산에게서 영성훈련의 흔적을 발견한다. 다산은 배교자로서 죽음을 피했고 철저한 자기 검열을 거쳤지만, 그의 글에는 숨길 수 없는 신앙이 묻어 나온다. 다산초당에 머물며 마지막으로 저술한 심경밀험(心經密驗)에는 최고 경지인 마음공부의 중요성과 함께 신독(愼獨)이 나온다. 이 목사는 “신독은 홀로 있음이며, 사막 교부들과 수도사의 기본적 영성 훈련도 홀로 있기”라며 “이는 곧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살아가는 신앙적 수양론”이라고 해석했다. 신을 독대하는 신독(神獨)이란 의미다.
이중나선 구조의 책은 ‘별이 빛나는 밤에’로 마무리된다. 어두워야 잘 보이는 것이 별이다. 고난의 끝에 별이 있다. 욥기에서 하나님은 “너는 별자리들을 각각 제 때에 이끌어 낼 수 있으며 북두성을 다른 별들에게로 이끌어 갈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욥 38:32) 다산은 유배로 한강을 건너며 “삼성은 반짝반짝 북두칠성도 찬란해”라고 노래한다. 빈센트 반 고흐는 1889년 유화 ‘별이 빛나는 밤’을 완성했고, 윤동주는 1941년 연희전문에서 ‘별 헤는 밤’을 썼다. 이 목사는 “별을 우러러보는 것은 단순히 밤하늘의 반짝임을 보는 게 아니라 그 위에 계신 분을 바라보는 거룩한 행위”라고 말했다.
청주=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