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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만남] “북한에서 기독인으로 산다는 건… 말 아닌 삶으로 드리는 예배”

윤상혁 평양의대 교수가 지난달 27일 서울 광화문 선양하나 사무실에서 북한 어린이들의 사진을 배경으로 사역을 소개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북한에서 13년을 살았다. 미국 시민권자 신분으로 부인과 세 자녀 등 가족을 대동했다. 평양의 옛 김일성종합대학 평양의학대학에서 외국인 최초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북한에서 처음으로 평양의대에 척추 및 소아행동발달장애치료 연구소를 세워 공동소장으로 일한다. 북한 전역에 유치원 탁아소 농촌진료소를 짓는 국제 NGO 선양하나의 국제대표도 맡고 있다.

현역으로 활동하는 윤상혁(50) 평양의대 회복기과(재활의학과) 교수가 북한에서의 사역을 담은 ‘사랑으로 길을 내다’(두란노)를 출간한 건 지난해 11월이다. ‘저자와의 만남’을 위해 석 달을 기다렸다. 북한에서의 사역은 말 한마디, 표현 하나로 롤러코스터를 타곤 한다. 무수한 어려움을 뚫고 북한에 들어가 그곳 주민들과 함께 살면서 고난을 자초하는 그에게 오히려 북한 사람들이 묻곤 했다. 가족까지 데려와 왜 여기서 이 고생을 하느냐고.

지난달 27일 서울 광화문 선양하나 사무실에서 만난 윤 교수는 “그렇게 물을 때까지 기다려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이라고 말한다”고 답했다. 인터뷰 직후 미국으로 출국한 윤 교수는 현재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북한에 다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는 2007년 나진 선봉 지구에서 진료 봉사를 시작해 2년 전 코로나로 북한 국경이 봉쇄될 때까지 평양에 상주하며 척추 신경의학 및 뇌성마비와 자폐증 어린이들의 재활 치료에 힘써왔다. 북한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장애아동들의 삶에 처음으로 치유의 빛을 비추는 여정이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셨고, 우리가 그 고난에 함께 참여하길 바라시며, 그 과정을 통해 우리가 참사랑을 배워 가길 원하신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제가 배운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이 이곳에 당신들과 함께 살러 왔다고, 이것이 내가 배운 그리스도의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북한에서 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것은 말이 아닌 삶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는 일이어야 한다. 북한과 달리 마음껏 소리 내어 찬양하고 기도하고 모여서 예배할 수 있는 남한에서도 복음 전파를 위해선 마찬가지다. 말이 아닌 삶으로 드리는 예배다. 윤 교수는 “남한의 믿지 않는 사람들이 북한보다 더 날카로운 눈빛과 잣대로 기독교인을 지켜보고 있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윤 교수는 가족과 함께 평양 봉수교회에 수년간 출석했다. 그곳에서 ‘진짜 교회, 가짜 교회’ 논란을 넘어, 참된 예배자이자 삶으로 드리는 예배가 필요함을 깨달았다고 했다.

윤 교수 인생 자체도 극복의 역사다. 인천 내리교회 출신인 그는 난독증으로 일찌감치 공부를 접고 고교 시절 수영 종목 체육 특기생으로 활동하다 주님을 만난다. 미국에 건너가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뒤엔 올리벳 나사렛대에서 생물학을, LA 클리블랜드 카이로프랙틱 의대에서 척추 신경학 박사학위를 받는다. 난독증으로 남들 2시간 공부하면 될 내용을 8~10시간 걸려 소화했다. 윤 교수는 “수영 선수 시절, 매일 물에서 8시간 이상 훈련하며 배가 고프면 수영장 물을 퍼마시면서까지 버티던 인내, 그 인내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북한에서의 사역은 말 그대로 기적의 연속이다. 스스로 씹을 힘이 없어 끼니마다 할머니가 씹어서 넣어주는 음식으로 버티던 뇌성마비 다섯 살 아이, 간절히 기도하며 치료에 임한 그 아이를 통해 북한에 장애아동 재활치료의 길이 열렸다. 윤 교수는 장애아동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부인과 낳은 세 자녀 이외에 해외 기관을 통해 연결된 중증 장애아동 둘을 차례로 입양해 총 다섯 자녀를 양육하고 있다. 윤 교수는 북한에서 추진한 다수의 프로젝트보다 한 사람의 이웃으로서 그들과 함께 흘린 눈물이 더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주님은 당신의 자녀 모두를 화목의 직분자로 부르시고, 화목의 자리로 초청하십니다. 북한에 있으면서 정치와 뉴스 뒤에 가려져 있던, 그 땅 사람들을 봤습니다. 제게 대단한 신앙이랄지 특별한 것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마음, 한반도를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제게 주신 겁니다. 여전히 북한에서 그들과 함께 살아가려는 이유입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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