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중심에 시편이 있다. 분노 원망 좌절 저주를 포함해 용서 감사 신뢰 찬양 등 인간의 경험이 오롯이 담겨있다.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담은 이 위대한 노래와 기도는 정제된 언어로 이뤄지지 않았다. 원수들이 불행해지길 바라는 극단적 표현까지 담은 노래,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배치돼 보이는 이런 시편들까지도 통과해야만 한다고 김기석(66) 청파교회 목사는 말한다. 회피는 결국 우리를 위선으로 끌고 가기 마련이다. 김 목사는 “시편을 통해 우리의 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지점에서 하나님의 치유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하늘에 닿은 사랑-김기석의 시편 산책’(꽃자리)을 펴낸 김 목사를 지난 3일 서울 용산구 청파교회 목양실에서 만났다. 책은 2013년 펴낸 시편 묵상집 ‘행복하십니까? 아니오, 감사합니다’의 개정 증보판으로 624쪽 분량의 벽돌책이다. 한달음에 읽긴 어렵다. 8년간 추가된 시편 설교들이 합쳐져 두 배 이상 불어났다. 여백을 두고 시를 읽듯, 묵상을 거치며 곱씹어 보는 책이다. 김 목사에게 총 150편의 시편이 장엄한 이유를 물었다.
“인생에서 중요한 두 가지가 시편 1편과 2편에 담겨 있습니다. 1편은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를 복 있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 삶을 바라보는 일을 강조합니다.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로 시작하는 2편은 우리가 처한 역사 속에서, 하나님 뜻이 아닌 권력자들이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변혁을 이룰 것인가를 노래합니다. 믿는 사람으로서 용기 있는 삶을 보여줍니다. 이런 정신이 시편 전체를 관통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같은 23편의 아름다운 시와 51편 같은 참회시를 거쳐 마지막 150편에선 할렐루야 아름다운 찬양이 터져 나옵니다. 복 있는 사람과 악인의 길을 오가며 세상과 얽혀들어 너무나 많은 고통이 다가오기에 탄식하고, 죄를 짓고 또 이를 참회하는 등의 과정을 전부 다 거쳐서 마침내 당도하는 세계가 할렐루야, 궁극의 찬양 세계입니다. 시편은 종착지가 있고 지극히 높은 곳의 하나님, 역사를 의의 방향으로 이끄는 하나님, 그 안에서 우리의 세세한 일에 귀 기울이는 하나님을 만나기에 장엄합니다.”
1만권 장서가 사면을 둘러싼 김 목사의 목양실 한쪽에 ‘위학일익 위도일손(爲學日益, 爲道日損)’ 붓글씨가 액자에 담겨 있다. ‘배움은 날마다 채우는 것이고, 도는 날마다 버리는 것’이란 노자의 도덕경 속 문구다. 김 목사는 “성도들을 오도하지 않기 위해 목사는 하루도 공부를 놓으면 안 된다”며 “먼저 배우고 이후 맑아지기 위해선 매일 덜어내야 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칼럼 ‘김기석 목사의 빛을 따라’를 비롯해 일간지와 잡지 기고문, 각종 서평에 더해 매일 설교문을 작성하는 것이 김 목사의 일이다. 써야 할 글이 많아 지금은 못 하지만 41년 전 전도사로 청파교회에 왔을 당시부터 김 목사는 ‘하루 200쪽의 책을 읽는다’는 다짐을 해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기자들이 쓰는 수첩을 꺼내 보여줬다. ‘바장이다’와 같은 표제어는 붉은색 볼펜으로, ‘부질없이 오락가락 거닐다, 자꾸 머뭇머뭇하다’와 같은 뜻풀이는 검은색으로 메모를 남긴다. 사라져가는 우리말, 그 안에 담긴 세세한 인생의 결을 다시 설교와 글에 길어 올리기 위해 수첩에 적고 공부한다.
김 목사가 주도하진 않았는데, 설교문 기고문 등을 출판사 쪽에서 모아 출간한 책이 벌써 30권을 넘겼다. ‘흔들리며 걷는 길’(포이에마) ‘걷기 위한 길, 걸어야 할 길’(비아토르) ‘광야에서 길을 묻다’(꽃자리) 등 유독 ‘길’을 제목으로 한 책이 많다. 김 목사는 흔들리면서도 기어코 중심을 찾아가는 팽이처럼, 신앙의 중심을 찾아가는 길 위의 순례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여행자는 요구하고 순례자는 감사해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을 여행에 비유한다면 내가 빌 때 달라고 요구하는 여행자가 있는데, 그러면 힘들어집니다. 순례자라면 중심을 향해 가는 길 위에서 불행한 일도 감사하며 걷게 됩니다. 인생을 잘 걸어가는 길이 뭘까 늘 고민합니다. 길에 집착하는 이유입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