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진 기자의 사모 몰랐수다] 여성·자녀가 안전한 세상 만들려면

지난해 10월 21일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뒤 12월 31일까지 72일간 스토킹 범죄 신고가 총 7538건으로 하루 평균 105건씩 접수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법 시행 전 하루 평균 24건 접수되던 것에 비해 4배 이상 폭증한 수치다. 국민일보DB




사랑하는 김희진(가명) 집사님.

집사님이 저희 곁을 떠난 지도 어느덧 두 달이 흘렀네요. 고통 없는 천국에서 사랑하는 주님 품에 안겨 안식을 누리고 계시겠지요.

집사님이 떠난 그 날은 몹시 추운 날이었습니다. 퇴근 후 살을 에는 추위에 서둘러 집에 도착하니 남편은 장례식에 갈 채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집사님이 소천하셨다는 소식과 함께 이날 포털사이트 뉴스를 장식한 스토킹 피해로 경찰의 신변 보호를 받던 여성의 가족이 살해된 사건의 피해자가 집사님이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됐습니다.

그저 또 하나의 ‘스토킹’ 사건으로만 여겼던 저는 다시 관련 기사를 찾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사진 속 남편이 심방 다녔던 집사님의 집에는 폴리스 라인이 처져 있었고, 집사님이 마주했을 공포와 고통의 무게에 슬퍼하며 분노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죽음 앞에 마음이 무너질 때면 하나님께 기도하며 원망하듯 따져도 봤습니다.

밤늦게 장례식장을 다녀온 남편의 눈은 퉁퉁 부어있었습니다. 평온했던 집사님의 가족을 비극으로 몰아넣은 가해자의 얼굴이 공개되던 날, 우리 부부는 집사님 생각에 또다시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밝고 정겨운 미소로 세 자녀의 손을 잡고 교회에 나와 함께 예배드리고 기도하시던 집사님을 추억해 봅니다. 수요예배 때 마주칠 때면 집사님 손 한 번 더 잡아 드릴 걸, 힘드실 때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더 나눌걸, 더 기도해 드릴 걸, 더… 더 많이 해 드리지 못한 후회만 남습니다. 아직은 부역자 사모라는 이유로, 코로나로, 바쁘다는 핑계로 더 세심히 살피지 못한 저는 참 많이 부족한 사모였습니다.

지난해 교회를 사임하는 남편에게 “목사님 절대 잊지 않겠다...”며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셨죠. 이제는 저희가 집사님을 기억하려 합니다. 아니 우리 사회에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스토킹’ ‘데이트 폭력’ 사건들이 집사님을 기억하게 합니다.

지난해 여성, 청소년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로 신상정보가 공개된 피의자는 총 10명으로 2010년 제도 도입 이래 가장 많았고, 10명 가운데 스토킹이나 교제했던 여성과 그 가족을 살해한 피의자가 절반을 차지했다고 합니다.

귀한 생명까지도 앗아가는 스토킹 범죄, 이 범죄의 심각성을 우리 사회는 얼마나 인식하고 있을까요. ‘데이트 폭력’ ‘스토킹 범죄’ 사건을 남의 일처럼 여겼던 저부터 반성하게 합니다. 이번 일을 겪고 보니 특정한 사람만 피해자가 되는 것이 아닌, 우리 주변에서 언제든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가끔 교회에서 마주할 때면 이뻐해 주시던 제 아이는 엄마가 하는 일에 대해 “세상을 안전하고 따뜻하게 바꾸는 일”이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아직 사모, 기자가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춘 제 나름의 소통 방식인 셈이지요.

사실 안전하고 따뜻한 세상을 위해 지금 제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또 하나의 ‘데이트 폭력’ ‘스토킹’ 사건으로만 여기지 않겠습니다. 그때마다 집사님을 기억하며 여성과 우리 자녀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며 행동하는 사람이 돼보려 합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자리에서 겸손하게 그분의 지혜를 구하면서 말이죠.

사건 당일 중태에 빠졌던 현식(가명·14)이는 다행히 많은 분들의 기도로 회복됐습니다.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아내, 어머니를 잃고 슬픔과 상실감을 겪고 있을 가족들을 위해 천국에서 함께 중보해 주세요.

집사님의 죽음은 너무나 허망하고 슬프지만 천국에서 다시 만나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큼 가장 확실한 위로가 어디 있을까요. 이 슬픔의 끝에 소망을 품습니다. 부활의 주님과 함께 다시 만날 그날을 기다립니다. 하늘에서 지켜봐 주세요.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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