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파리외방전교회 성당 입구에는 가로 4m, 세로 3m의 큰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선교사들의 출발(Le depart des Missionnaires)’이라는 그림으로 1864년 조선으로 떠나는 성 브르트니에르와 도리, 볼리외, 위앵 신부의 파견식 현장을 담고 있습니다.
그림은 프랑스 최고의 문화 훈장인 레종 도뇌르 수상자인 샤를 드 쿠베르탱이 1868년 완성했습니다. 그는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선교사들을 추모하기 위해 붓을 들었습니다.
파리외방전교회는 ‘파송 받으면 돌아오지 않는다’는 규약이 있다고 합니다. 돌아오지 못할 걸 아는 그림 속 신부들의 표정은 유독 온화해 보입니다. 반면 그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이들에게서는 슬픔이 묻어납니다. 다시 못 볼 걸 알기 때문이죠.
병인박해가 일어나던 해 대동강에서 토마스 선교사가 개신교 선교사로는 최초로 순교합니다. 이후 1884년부터 개신교 선교사들이 본격적으로 입국하죠. 복음의 첫 씨앗은 이들의 순교와 헌신으로 이 땅에 심긴 셈입니다.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그림에 눈길을 끄는 어린이가 등장합니다. 화가가 인장처럼 남긴 자신의 아들입니다. 이 아이가 훗날 국제올림픽위원회를 창설한 피에르 드 쿠베르탱입니다. 그림에는 또 다른 유명인이 등장합니다. 도리 신부의 뺨에 입맞춤하고 있는 작곡가 샤를 구노입니다. 구노는 조선에서 순교한 또 다른 신부들을 추모하며 ‘아베 마리아’를 썼다고 합니다. 프랑스 파리와 조선, 순교한 이들을 추모하는 곡을 쓴 작곡가와 올림픽까지 한 폭의 그림에 담긴 셈입니다.
신앙 안에서 자란 쿠베르탱이 올림픽을 부활한 건 스포츠를 통해 세계 청년들의 화합을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는 “올림픽에서 가장 중요한 건 대회에서 이기는 게 아니라 참가하는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필수적인 건 이기는 게 아니라 얼마나 잘 싸우는 것이냐다”, “모든 스포츠는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는 등의 말을 남기며 순수한 경쟁과 화합을 꿈꿨습니다.
순교자나 일제의 핍박 속에서도 학교와 병원을 세우며 복음을 심었던 개신교 선교사 모두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헌신했습니다. 이들이 전한 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었지 개인의 욕심이 아니었습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한창 진행 중인데 스포츠를 통한 화합만 바라기에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이 너무 많습니다. 쇼트트랙 경기의 오심 판정을 보는 이들의 마음도 편하지 않습니다. 프로 선수들까지 출전하게 되면서 상업화됐다는 비판까지 따르고 있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묻힌 130여명의 선교사가 이 땅에서 죽으면서까지 뿌리려 했던 순수했던 복음은 온데간데없어 보입니다. 세속화와 물량주의 속에서 교회가 탐욕만 좇는다는 비난을 받는 게 현실이죠. 올림픽이든 교회든 회복의 길은 단 하나, 욕심을 버리고 처음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