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걷기 묵상의 행선지는 충북 청주다. 충북도청 옆 육거리 종합시장 안쪽 청주제일교회에서 걷기를 시작한다. 청주제일교회는 1904년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프레드릭 S 밀러(민노아·1866~1937)가 김흥경 장로 등과 함께 설립했다. 고딕 양식에 석조 계단, 남녀유별을 위해 좌우에 똑같은 현관문을 낸 예배당이 아름답다.
표지석은 지금의 교회 자리가 조선시대 청주 진영이었다고 말한다. 죄인들을 체포해 심문하고 형을 집행하던 감옥이다. 1866년 병인박해를 비롯해 1868년까지 평신도를 포함해 4명이 이 터에서 순교했다. 한국이름 민노아로 불리길 원했던 밀러 선교사는 병인박해 순교의 역사를 기억하고자 남문 밖에 있던 교회를 이곳 순교지로 이전했고, 천주교 청주교구는 2017년 청주제일교회의 협조와 배려로 순교지 기념 표지석을 교회 앞마당에 세웠다. 에큐메니컬 정신은 이렇게 지역에서 더욱 돋보이고 있다.
민노아 선교사는 청주 선교의 아버지다. 1893년 서울에서 경신학교를 맡아 도산 안창호 선생을 길러내는 등 기독교 교육에 힘썼다. 청주로 오기 직전엔 두 아들과 아내를 연속해서 잃고 마포 양화진에 이들을 묻었다. 그가 세운 청주 탑동 양관은 선교사 사택과 학교 병원 성경학교 시설이 남아있는 선교부지다. 육거리 종합시장에서 십여 분을 걸어 일신여중고를 지나 탑동 양관 안의 퍼디기념관(부례선 목사 기념 성경학교)에서 김성수 청주성서신학원장을 만났다. 100년 가까이 된 퍼디기념관은 지금도 청주성서신학원 강의실과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교단의 충북노회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민노아 선교사는 ‘전도지의 왕’ ‘소책자의 사도’ ‘문서 전도의 창시자’로 불렸습니다. 40여 종의 저서를 발간해 한국에 파송된 어떤 선교사보다 더 많은 글을 남겼습니다. 한국 이야기를 많이 쓰고 간행했는데, 저는 마크 트웨인보다 더 재치있는 작가로 봅니다. 청주 선교부를 개설하고 청주에서 정년을 마쳤으며, 가족과 떨어져 사랑하는 청주에 묻어달라고 유언해 이곳에 묘소가 있습니다.”
우리말 감각이 탁월했던 민노아 선교사는 찬송가 96장 ‘예수님은 누구신가’를 작사했다. 우는 자의 위로, 없는 자의 풍성, 천한 자의 높음, 잡힌 자의 놓임을 말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기쁨 생명 평화 영광으로 표현한다. 찬송가 96장의 곡조는 ‘사회계약론’ ‘불평등기원론’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등의 저서를 펴낸 프랑스 근대 사상가 장 자크 루소의 작품이다. 음악에도 조예가 깊던 루소는 1752년 오페라 ‘마을의 점쟁이’를 초연했으며, 오페라 안에서 이 곡조가 위풍당당 행진곡으로 나온다. 걸으며 듣기에 딱 좋은 찬양이다.
탑동 양관에서 북쪽으로 30분을 걸으면 언덕 위에서 대한성공회 수동교회를 만난다. 동서양 건축양식이 절묘하게 결합한 예배당으로 팔작지붕의 목조 한옥에 기와를 얹고, 외벽은 벽돌과 콘크리트로 내벽은 석회로 마감했다. 1935년 영국 버밍엄의 세인트 그레고리교회 성도들의 헌금으로 건축된 곳으로, 8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예배당으로 쓰이고 있다.
언덕을 내려와 다시 충북도청 쪽으로 방향을 잡고 화문당을 찾았다. 화문당은 한국전쟁 당시인 1953년부터 청주 시내에서 기독교 서적을 보급해온 기독교 백화점이다. 한국기독교서점협회 임원도 역임한 이성준 청주 신성교회 장로가 대표다. 기독교는 성경이란 책의 종교인 만큼, 지역 복음화를 위해선 기독서점의 부활이 꼭 필요하다. 이 대표는 “글로써 화목하게 한다는 의미의 화문당(和文堂)”이라며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롬 10:15) 말씀을 바탕으로 묵묵히 문서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청주=글·사진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