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대 교학부총장을 역임한 임창호(66) 객원 교수는 ‘탈북민의 대부(代父)’로 불린다.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임 교수는 하나님을 굳게 의지해 북한선교 사역을 멈추지 않고 있다.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에서 25일 만난 임 교수는 “역경 가운데 하나님을 믿고 나니 모든 것이 감사한 일”이라며 “북한선교 사역에 우선순위를 둘 수 있었던 것은 복음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북한선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미국 한인교회 목회를 할 때다. 2003년 10월 친구 목사의 소개로 한 탈북 여성을 만났다. 두 시간가량 처참한 북한 실정을 들었다.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었습니다. 교회에 초청해 3일간 간증집회를 열었어요. 저와 교인들 3일 내내 울었어요. 북한 동포들의 실정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사실에 죄송함과 미안함으로 가슴이 미어졌고, 이 집회는 제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놨습니다.”
이후 그는 북한 주민을 위해 기도하고 탈북민의 권리보장과 복음 전파에 힘을 쏟았다. 미국 의회의 북한인권법 통과를 위해 기도했고, 미국과 한국에서 여러 차례 열린 ‘북한 자유를 위한 통곡기도회’ 개최를 도왔다.
2007년 7월 부산 장대현교회를 설립, 탈북민들과 함께 하고 있다. 기독 탈북민 연합체인 북한기독교총연합회(북기총) 결성을 주도했다. 북한인권과민주화실천운동연합(북민실)을 설립해 탈북자녀를 위한 장대현지역아동센터와 탈북 청소년을 위한 장대현학교를 설립, 교장을 맡고 있다. 최근 기숙사 증축을 계획하고 있다.
장대현학교는 부산시교육청 위탁교육기관으로, 검정고시를 치르지 않고도 상급학교 진학이 가능하다. 현재 대안학교 설립 신청서를 제출한 상태다. 통과되면 수도권 지역 이외 영호남 지역 최초의 인가받은 탈북 대안학교로 거듭난다.
‘장대현’이라는 이름은 원래 평양의 옛 지명이다. 그곳에 세워진 장대현교회는 한국교회 역사가 자랑하는 유명한 교회다. 평양 숭실대학이 장대현교회의 헌금으로 세워졌다.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 중 한 명인 길선주 목사가 장대현교회 목사였다.
그는 “장대현학교 아이들은 통일한국 시대에 다양한 사람들이 어떻게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지를 연습하고 있다. 상처와 분노를 넘어 치유된 인성으로 다가올 통일시대를 실험하고 있다. 오늘도 장대현학교에서는 작은 통일이 만들어져 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지역사회 통일교육운동 활성화의 공로로 2017년 대통령 국민포장을 받았다. 탈북자 한 영혼이 변화돼 하나님의 일꾼으로 변화되는 것을 큰 보람으로 여긴다.
“미국에서 한 탈북자를 만나 북한선교를 향한 뜨거운 소명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순간마다 필요와 동역자를 채워 주시고 환경을 조성해 주셨습니다. 그저 처한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 왔을 뿐입니다.”
그는 “북한 동포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하신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좋게 여기시고 사용하신 것 같다”며 “남은 사역도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게 하실 것을 믿고, 오늘 맡겨진 사역에 쓰임 받기를 원해 묵묵히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정년퇴임을 기념해 ‘기독교교육과 통일’(북민실)이란 책을 펴냈다. 그간 발표한 50여편 가운데 12편의 논문을 골랐다. 기독교교육학 논문 6편, 통일교육과 북한선교 사역 논문 6편, 장대현학교에 대한 글을 추가했다.
그는 고신대 기독교교육(B.A.)과 신학(M.Div.) 과정을 마친 뒤 일본 유학을 떠나 국립 히로시마대 대학원에서 교육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3년부터 지난해 2월까지 고신대 기독교교육학 교수로 근무했다. 도중에 미국 휴스턴 한인장로교회의 청빙을 받아 10년간 이민 목회 현장을 경험했다. 현재 북한인권과민주화실천운동연합 이사장과 장대현학교 교장, 대한민국역사미래연구원 부산지부장, 코리안벨트네트워크선교회 사무총장, 장대현교회 담임 등을 맡고 있다.
글·사진=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