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톡!] 승자 없는 핏빛 유혈극… “칼 쳐서 보습으로”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이 지난 28일 서울 중구 주한 러시아대사관에서 열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단·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집회에 참석해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


‘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100만명의 죽음은 통계 수치일 뿐이다.’

여러 곳에서 인용되고 있지만, 정확히 누가 처음 한 말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구소련의 스탈린이라거나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 리어나도 라이언스가 한 말이라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다만 전쟁의 냉혹함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엄청난 수의 죽음이 과연 통계 안에만 갇혀 있는 걸까요.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총합과도 같습니다.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군인과 민간인 모두의 죽음은 남은 자들에게 깊은 아픔을 남깁니다. 지난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또다시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전쟁의 이유를 간단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인간의 욕망이 부른 비극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온 세상을 흔들었던 1·2차 세계대전의 불씨는 모두 동유럽에서 붙었습니다. 보스니아 공화국 사라예보와 체코슬로바키아를 둘러싼 주변 강국의 이해가 충돌하면서 1·2차 대전이 시작됐죠. 세계가 이번 전쟁을 주시하는 이유도 이런 쓰라린 경험 때문입니다.

기억해야 할 건 금세기 들어 벌어진 전쟁에서 딱히 누가 승자인지 고르는 게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전쟁을 벌인 이들이 당초 목적을 달성한 예를 찾는 것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죠.

1차 대전 후 승전국들이 독일에 부과한 과도한 전쟁 배상금은 히틀러라는 악마를 잉태했고 결국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습니다. 일제 강점의 상흔은 고스란히 한반도에 남아 분단과 6·25전쟁으로 이어졌고 오랜 세월 대립과 갈등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주변 중동 국가들 사이의 충돌은 어떤가요. 전쟁과 테러의 연속일 뿐 승자가 없습니다. 20년간 주둔하던 미군이 최근 아프가니스탄을 떠나자마자 그곳은 다시 눈물의 땅이 됐습니다.

무력을 앞세워서는 절대 목적을 달성할 수도, 평화를 정착시킬 수도 없습니다. 총과 칼을 앞세워 얻은 평화는 일시적이며 또 다른 갈등을 빚는 촉매제에 불과합니다. 무력을 통한 평화란 환상일 뿐입니다.

성경은 뭐라고 할까요. 이사야 2장 4절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고 조언합니다. 마가복음 12장 31절에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고 이웃과의 평화를 강조하죠.

마가복음 8장 36~37절에서는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라고 합니다. 이 구절은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라는 말로 풀이됩니다.

숫자 안에 갇힌 죽음이란 없습니다. 우크라이나나 러시아인 모두의 생명은 소중합니다. 더 늦기 전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향한 길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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