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영성 작가] 십자가 사랑에 뜨거워진 순간 마음이 붉어지다















스웨덴의 국민작가 셀마 라겔뢰프(Selma Lagerlof·1858~1940·아래 사진)는 최초의 여성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다. 셀마 라겔뢰프란 이름이 다소 낯설다면 북유럽 아동문학의 최대 명작으로 꼽히는 ‘닐스의 신기한 여행’(1907)을 떠올려보자. 스웨덴 남부 출신 소년이 엄지손가락만큼 작아져 거위를 타고 세계를 모험하는 내용이다. 스웨덴 아이들의 지리 공부를 위한 부교재를 써달라는 교육부 청탁으로 쓰게 된 이 책은 현재까지 세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라겔뢰프는 이 책으로 1909년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4년 후,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결정하는 스웨덴 한림원의 첫 여성 회원으로 선출됐다. 그가 노벨문학상을 받을 당시 한림원은 ‘고귀한 이상주의와 풍부한 상상력, 작품들을 관통하는 영혼이 가득한 묘사’라는 선정 이유를 밝혔다.

셀마 라겔뢰프는 스웨덴 베름란드 몰바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다리 장애로 집에서 교육을 받았으나 점차 회복했다. 유년 시절에는 할머니로부터 동화와 판타지를 들으며 자랐다. 7살에 소설을 읽기 시작했으며 10살 때 성경을 완독했다. 그가 성경을 완독한 이유는 병중에 있는 아버지를 위해서였다. 성경을 한 장, 한 장 읽으면 병중에 있는 아버지가 건강해질 것이라 믿었고, 실제로 아버지는 17년을 더 살았다. 이런 경험을 통해 그는 성서에 뿌리내리는 문학 세계를 이뤘다.

그가 쓴 모든 작품엔 신에 대한 경외심, 선의와 순수한 사랑, 용서와 화해, 헌신적인 사랑이 기조를 이룬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단편소설 ‘늪텃집 처녀’(1908)는 사랑과 신에 대한 경외심을 일깨운다. 작품은 자녀의 양육비 청구를 위해 재판석에 선 주인공 헬가의 놀라운 행동으로 시작된다.

“이제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죄에 은총이나 용서는 없다. 거짓 선서를 행한 자는 지옥문이 저절로 열릴 것이다. 그가 거짓 선서를 하려고 한다는 것, 미래를 위해 신의 분노를 자초하리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피고가 선서를 따라 읽으려는 순간 그녀는 갑자기 뛰쳐나가 성경을 빼앗아 들었다. ‘소송을 취하하겠어요. 그분이 거짓 선서를 하게 할 수 없어요. 그는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저는 아직 그분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거짓 선서를 하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늪텃집 처녀’ 중)

작가는 신을 속인다는 것은 지옥문을 여는 무서운 일이라고 말한다. 주인공 헬가는 아이의 아버지가 신 앞에서 거짓 선서를 하고 지옥을 향하게 놔둘 수는 없었다. 성경의 신성함에 손을 얹고 신을 모독하게 둘 수는 없었다. 헬가는 수치와 가난, 조소의 손가락질을 뒤로한 채 고소를 취하했다. 헬가를 연모하는 청년 구드문트의 어머니는 “그 아가씨 내면에는 뭔가 좋은 씨앗이 있는 모양이구나”라고 말했다. ‘좋은 씨앗’이란 주님이 주신 선한 마음이다. 용기란 타락의 마음에서는 나올 수 없다. 퇴폐적인 마음을 갖는다면 인간은 선을 회복하기보다는 악의 습관에 달려가기 때문이다. 버림받은 한 여성의 순애는 한 소박한 젊은이(구드문트)의 영혼을 정화하고, 진정한 사랑의 신비에 눈뜨게 해준다.

교사였던 라겔뢰프는 성경을 기반으로 한 예수님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들려주길 즐거워했다. 다음은 예수님에 대한 동화로 가장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셀마 라겔뢰프의 ‘진홍가슴새 이야기’를 요약 발췌한 내용이다.

아주 오랜 옛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의 이야기이다. 하나님은 빛과 어둠, 나무와 풀포기, 하늘과 땅에 뛰어놀 새와 짐승들을 만드셨다. 하나님은 날이 저물 즈음 잿빛 깃털의 작은 새 한 마리를 만드셨다. “네 이름은 진홍가슴새란다.” 그러나 작은 새는 시냇가에서 자기 모습을 비춰보았지만 아무리 봐도 빨간 깃털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저는 온통 잿빛뿐인데 왜 제 이름은 진홍가슴새인가요?” 하나님께서 실수였다고 말씀해주시길 바랐지만, 하나님은 인자하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진홍가슴새로 불렀으니 너는 진홍가슴새가 된 거란다. 하지만 네 마음가짐으로 너는 빨간 깃털을 받게 될 수도 있단다.”

그 후 오랜 세월이 흘렀다. 진홍가슴새의 둥지 근처 언덕에 십자가가 세워졌고, 그곳에 어떤 사람이 매달렸다. 그 사람의 이마에 가시관이 씌워져 있는데, 가시마다 검붉은 피가 솟아나고 있었다. 멀리서 지켜보던 진홍가슴새는 그 사람이 불쌍하게 여겨졌다. 십자가 주변을 맴돌던 겁이 많은 작은 새는 용기를 냈다. “나는 비록 약하고 힘이 없는 작은 새이지만, 엄청난 아픔을 당하는 저분을 위해 분명히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야.”

진홍가슴새는 그분의 이마에 박힌 수많은 가시 중의 하나를 자신의 부리로 뽑았다. 그때 피 한 방울이 작은 새의 가슴에 뿌려졌다. 뿌려진 피는 잿빛 작은 새의 짧고 부드러운 깃털을 빨갛게 물들였다. 작은 새는 지칠 때까지 그 가시들을 뽑다가 자신의 둥지로 돌아왔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잿빛 작은 새에 묻은 붉은 피는 도무지 깨끗이 지워지지 않았다. 이날 이후 지금까지 진홍가슴새의 가슴에는 빨간 깃털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작품 내용 중에 “내가 너를 진홍가슴새로 불렀으니 너는 진홍가슴새가 된 거란다”라는 하나님의 말씀과 “너희 조상이 세상 첫날부터 그토록 구하려고 애쓴 것을 네가 드디어 얻게 됐구나. 내가 당하는 고통을 안타깝게 여기는 그 마음으로 말이다”란 예수님의 말씀은 십자가 고난을 묵상하는 이번 사순절(3.2~4.16)기간에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일깨워준다.

셀마 라겔뢰프는 작고 하찮은 소재에 낭만적인 마법을 걸었다. 그가 성장한 지역의 특성 때문이다. 신비스러운 백야현상, 오로라 현상, 만년설, 토끼 꽁지처럼 짧은 일조시간, 자작나무 가지를 울리는 북서풍 등 북유럽 특유의 자연현상이 작가의 상상력과 창작력을 더했다. 그가 성장한 스웨덴 베름란드의 좁고 현실적인 시골 마을은 그의 펜 끝에서 전설의 무대로 변했다. 평범한 산과 들은 그의 시적인 묘사를 통해 잊지 못할 아름다운 공간이 됐다.

베름란드의 자연은 아름답지만 혹독하기도 하다. 이곳은 이야기 속 사건들이 벌어지는 무대일 뿐 아니라 인간들의 삶의 형태와 소설의 주제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의 시선은 사랑하는 고향의 어두운 면 또한 놓치지 않았다. 작가 집안의 농원이 남의 손으로 넘어가는 비운을 그린 ‘예스타 베를링 이야기’(1891)가 그의 첫 작품이다. 부유한 제철소 주인과 소지주들의 생활상을 연대기적으로 다루면서, 나약한 성격이지만 매력이 넘치는 배교자인 사제 예스타 베를링이 이끄는 12명의 기사에 대한 모험담을 묶었다.

라겔뢰프는 ‘예스타 베를링 이야기’의 성공 이후 꾸준히 집필했다. 1897년 왕실장려금을 받아서 유럽과 아시아 등의 해외여행을 통해 작가로서 식견을 넓혔다. 이탈리아를 방문한 뒤 시칠리아에 관한 사회주의적 소설인 ‘반그리스도의 기적’(1897)을 출간했고, 이집트와 팔레스타인에서 한 해 겨울을 보내던 중 영감을 얻어 집필한 ‘예루살렘’(1902)으로 스웨덴 최고의 소설가로 자리를 굳히게 됐다.

이지현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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