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가 지나간 공터에 기초공사 중인 중장비 소리가 요란했다. 지난 20일 찾은 경북 울진군 신화2리 마을회관 앞에선 산불로 집을 잃은 주민들을 위한 임시 주택 공사가 한창이었다. 주변에 설치된 견본용 주택에는 이재민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옷가지도 챙겨 나오지 못해 군인용 방한내피를 입은 몇몇은 컨테이너 크기의 임시 주택 내에 갖춰진 주방과 안방, 화장실 등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공사 관계자는 콘크리트 양생이 끝나면 주말엔 임시 주택 설치가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피 시설과 친척집을 전전하던 이재민들도 이달 안에 다시 삶의 터전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 것이다.
‘213시간’이라는 역대 최장 기록을 세운 산불은 결국 자연이 매듭지었다. 지난 4일 오전 11시17분 울진군 두천리의 한 도로가에서 원인 모를 불씨로 시작된 산불은 지난 13일 내린 봄비로 끝이 났다. 9박10일간 소방관과 군인들을 합한 6만9700여명은 쉴 새 없이 산불 진화에 총력을 다했다. 하지만 헬기가 뜰 수 없는 야간에는 소방차가 접근하기 힘든 험한 산속으로 번지는 불을 막을 순 없었다. 산불이 한창이던 지난 6일 금강송 군락지를 지키기 위해 차가 들어갈 수 있는 도로마다 소방차들이 밤새 대기하기도 했다.
이번 산불은 2만923㏊(울진 1만8463㏊, 삼척 2460㏊)의 임야를 태웠다. 비가 오지 않아 건조한 날씨에다 강한 바람의 영향으로 하루 최대 80여대의 산불진화헬기가 투입됐지만 화마는 쉽사리 잡히지 않았다. 결국 산불은 주택 319채를 태웠고 335명의 주민은 보금자리를 잃었다. 울진군 검성리에 거주하던 온성기(75)씨도 집이 전소하는 걸 지켜만 봤다. 옆집을 태우던 불이 넘어오자 아픈 집사람을 데리고 몸부터 피했다. 멀쩡한 속옷 하나 건지지 못한 온씨는 “여긴 사람이 사는 집인데, 전부 타서 남은 게 하나도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요란한 굉음을 내며 불길을 찾아다니던 헬기들도 사라졌고, 머리를 아프게 하던 매캐한 연기 대신 푸른 하늘이 돌아왔다. 정치인들이 지원과 보상을 약속하고, 구호 물품과 성금도 속속 답지하고 있다. 폐허처럼 변한 마을의 땅도 다시 다져지고 있다. 하지만 이재민들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고 있다. 비록 임시 주택이지만 그들이 그곳에서 다시 희망을 얘기할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울진=사진·글 최현규 기자 froste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