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6·25전쟁 때 어려웠잖아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비참했죠. 구호품으로 살아가고. 이제 살 만하니까 베풀 때가 된 거잖아요. 어릴 때가 생각나요. 미군 코트, 발목까지 내려오는 거. 구호품으로 입어 봤잖아요. 그랭께네, 지금도 그 구호 식품, 옥수수빵 강냉이죽이 생각나요. 그거 먹고 싶어요.”
대구 서문시장 인근에서 이불가게를 하는 60대 여성 A집사가 27일 전화로 들려준 이야기다. 익명을 요구한 A집사는 40년 넘게 신앙생활을 이어오며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소속의 대구 청산교회(현철호 목사)에 출석한다. 지난 23일 교회에 찾아온 그는 무명으로 1억원을 헌금했다. 지난해까지 집도 없이 이불가게 한구석 10㎡(3평)의 공간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평생 모아온 돈에 급한 대로 친인척에게 몇백만원씩을 더 빌려 1억원을 채웠다. 그러곤 교회를 통해 우크라이나 성경 보내기에 써달라고 했다. A집사는 본인 이름을 밝히지 말고 교회 이름으로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우리도 많은 나라의 도움을 받았으니 우리도 주었으면 좋겠어요.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으로 아파트도 공격받고, 사람들이 마지막 순간에 성경을 찾는데 성경이 부족하다고 하니까요. 원래 아프리카 우물 파기를 위해 모은 거예요. 하지만 전쟁이 너무 비참한 상황이니까, 주일예배 광고를 보며 같이 기도하고 물품도 지원하자고 생각했어요. 돈보다 더 귀한 한 영혼, 성경을 통해서 돕자는 생각을 했어요.”
현철호 대구 청산교회 목사는 일주일 전인 지난 20일 주일예배 광고 시간에 교회 선교부 재정으로 100만원을 보내 대한성서공회 우크라이나 성경 보내기에 동참한 사실을 알렸다. 현 목사는 “국민일보 보도를 보고 우크라이나 성경 긴급 지원을 알게 됐고, 우리도 6·25 때 누가복음 쪽복음을 지원받았다는 칼럼 내용을 성도들과 예배 광고 시간에 나누었다”면서 “그게 감동이 되어 섬길 수 있는 계기가 됐으니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이후 A집사가 찾아와 성경 보내기에 동참할 뜻을 밝혔고, 큰 액수의 헌금을 처음 접한 교회는 곧바로 장로들과 온라인 연락을 주고받아 그 즉시 헌금 전액을 대한성서공회로 보냈다. 지난해 11월 대구 청산교회에 부임한 현 목사는 A집사에 대해 “지극히 소박하고 늘 섬기며 선교하는 일에 관심을 두는 분”이라고 전했다.
대한성서공회 호재민 총무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두 렙돈을 넣은 여성이 떠오른다”며 “대한성서공회로서도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대한성서공회는 현재 우크라이나성서공회가 요청한 현지어 요한복음 8만부를 인쇄 중이며 1차로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국경지대로 이를 보내 피란민들과 나눌 예정이다. 호 총무는 “우크라이나어 성경 제작을 전쟁 이후에도 지속해 트라우마를 겪는 현지 성도들에게 영적 위로와 소망을 전하는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