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집계하는 금융불안지수(Financial Stress Index)는 단기적인 금융상황을 숫자로 표시한다. 지난해 6월 0.0으로 안정세를 보였으나 하반기부터 상승세로 돌아선 뒤 올 2월 들어 우크라이나 전쟁과 주요국 통화정책 정상화에 따른 금융 시장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오름세를 지속하고 있다. 현재는 7.4로 주의단계(8.0) 임계치에 근접해 있다. 한국경제가 안팎으로 불안한 금융상황에 휩싸여 있음을 반영하고 있다.
인플레 잡아라… 보폭 커지는 미국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평화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미국이 러시아의 대량살상무기 사용 가능성에 대한 대응방안 검토에 나서는 등 전쟁은 장기화 모드로 가는 분위기다.
국제금융센터는 최근 보고서에서 “금융시장은 이를 반영해 높은 변동성 국면이 지속되고 높은 인플레이션이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주요국 통화정책의 뒤늦은 긴축 (behind the curve)이 가져올 경제 충격에 대한 우려가 지속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 등 주요국의 긴축 강화 모드는 전쟁 장기화에 따른 고유가 상승 등 인플레 해소 우려와 맞물려 있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은 지난 16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인상 사이클을 개시한 후 이른바 빅스텝(기준금리를 0.5%이상 인상)을 시사했다. 이에 연준 이사들은 물론 뉴욕 투자은행들까지 호응하고 나섰다.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은 총재는 정책금리를 3%대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씨티은행은 FOMC에서 4차례 연속 0.5%포인트 인상과 함께 인플레가 극심해질 경우 0.75%포인트 인상도 가능하다고 했다. 골드만삭스는 이번 금리인상 주기의 최종 종착지는 3.0~3.25%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이달 연준이 점도표(dot plot)를 통해 전망한 올해 말 연 1.9%와 내년 말 2.8%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미국의 긴축강화 분위기는 작년 8월부터 3차례 선제적인 금리 인상에 안도하며 지난달 금통위에서 동결을 통해 한 템포 쉬어가는 분위기였던 한국은행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올해 2차례 정도 인상을 통해 1.75% 수준을 예상했지만 이는 미국에 1%포인트 이상 금리를 역전당하는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금리 차이를 따라 자본이 한국에서 급격히 빠져나갈 수 있다. 국내 채권시장에서는 올해 말 국내 기준금리를 2.25%까지도 각오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주요국 긴축 급박… 한국은 느긋
긴축 강화 분위기는 국채금리의 장단기 금리차까지 역전되며 경기침체 우려도 나온다. 지난 23일(현지시간) 전세계 금융시장의 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10년만기 재무부 채권 수익률이 0.06%포인트 하락한 2.32%를 기록하면서 7년 만기 채권 수익률(2.37%)에 역전됐다. 전날인 22일엔 5년만기 국채 수익률에도 역전당했다. 28일 5년물(2.64%)은 16년만에 30년물 수익률(2.63%)을 뛰어넘었다.
일반적으로 장단기 금리 스프레드에 대한 평가는 재무부 채권 10년물과 2년물의 차이를 통해 이뤄지는데 아직까지 두 만기 구간 간의 금리는 역전현상이 나타나고 있지 않다. 다만 지난해 연말 0.8%포인트 내외의 격차가 올해 빠르게 축소되며 02%포인트 수준으로 좁아졌다.
이처럼 채권시장이 ‘발작’하는 것은 과거 장단기 금리 역전이 이뤄지고 18개월 전후로 경기 침체가 나타났던 데 대한 기시감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주 미시건대학이 발표한 3월 미국의 소비심리 지수는 전쟁 및 인플레이션 우려로 11년여 만에 최저치를 보이는 등 경기 급랭 신호까지 가세하고 있다. 기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영향으로 4월 공개할 예정인 글로벌 경제성장률 전망을 당초 예상치보다 낮출 수 있다고 언급했다. 미 댈러스 연방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올해 안에 러시아산 원유 수출이 재개되지 않으면 글로벌 경기침체를 피하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27일 한국금융연구원은 ‘우크라이나전쟁에 따른 국제수지 불균형 우려’ 보고서에서 유가가 배럴당 110달러선을 유지할 경우 무역수지는 405억달러 줄어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가상승 뿐아니라 엔화 약세까지 가세하며 그동안 우리경제의 버팀목이었던 수출 전선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일본과 수출경합도가 높은 석유화학, 철강, 기계, 자동차 등의 업종에서 엔저 장기화시 가격경쟁에서 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28일(현지시간)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화에 대한 엔화 환율은 장중 125엔을 기록하며 2015년 이후 7년 만에 최고치(엔화가치 하락)를 기록했다. 앞서 이날 국내 외환시장에서 원·엔 재정환율은 3년 3개월만에 100엔당 1000원 밑으로 떨어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에도 불구하고 안전자산으로 통하는 엔화가 추락한 것은 미국, 일본 간 통화정책 차별화와 일본 정부의 추가 경기 부양책 실시 기대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현재 정권 교체 과도기에 벌어지고 있는 국내 신구 권력의 이례적 50조원의 추경편성 움직임은 급박하게 돌아가는 주요국 긴축 분위기와 달리 느긋한 분위기다. 여기에다 한국은행 총재에 내정된 이창용 후보자도 지난주 내정 일성으로 불확실성과 인플레이션, 경기리스크의 동시 확대를 경계하고 있다고 말한 것은 한은 본연의 통화정책보다는 현 시국에 대한 대응에 방점을 두는 것으로 해석돼 주요국의 인플레에 대한 급박한 대응과 비교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원일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이 후보자의 향후 통화정책은 폴리시 믹스 측면에서 새 정부의 성장에 대한 의지를 반영할 것으로 생각된다”며 “금리인상이 단행될 수는 있지만 선제적 대응을 했던 만큼 속도는 빠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