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교회 집사님으로부터 들은 얘기입니다. “다른 교회는 사순절을 특별하게 보내는데 우리 교회는 ‘사순절’이란 말조차 쓰지 않는다. 고난주간 전부터 예수님의 생애를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은데 아쉽다.” 사순절은 부활절 전까지 여섯 번의 주일을 제외한 40일 동안의 기간을 가리킵니다. 이분의 이야기를 듣고 해당 교회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합동(총회장 배광식 목사)에 입장을 알아봤습니다.
예장합동은 1999년 제84회 총회에서 사순절 금지를 결의했다고 합니다. 이 교단 신학부장인 박세형 서울평안교회 목사는 28일 “개신교는 절기와 성례를 앞세우며 형식에 얽매였던 로마가톨릭으로부터 단절하면서 출발했다”며 “성경에 근거한 성탄절이나 부활절은 기념할 수 있지만 가톨릭 교회력에 기반한 사순절을 지키는 것은 개혁주의 신앙에 위배된다”고 했습니다. 성경적 근거를 찾기 어려운 전통이라는 것입니다.
신학적으로 더 엄격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예장합동 산하 총신대 신대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는 문병호 교수는 “로마 가톨릭이 사순절을 연중 교회력에 따라 지키는 것은 그들의 의식주의와 자질주의의 유산으로서, 그 기간 동안 금식이나 순례나 묵언과 미사 등을 공로로 여기는 그릇된 신학에서 비롯됐다”고 했습니다. 문 교수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복음의 요체로서 연중 깊이 새겨야 하며, 주님이 구약의 언약과 절기와 제사를 다 이루셨으므로(요 19:30) 이제는 더이상 절기에 대한 형식적 준수는 헛된 것이라고 부연했습니다.
이 같은 입장은 예장합동뿐만 아니라 예장고신 예장합신 등도 비슷합니다. 그렇다면 사순절을 특별하게 보내는 예장통합이나 기독교대한감리회, 한국기독교장로회, 대한성공회 등의 교단이나 교회는 어떤 이유로 그렇게 하는 걸까요.
이들 교단은 기본적으로 가톨릭 교회력을 기독교 문화 전통으로 봅니다. 안덕원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예배학) 교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기준으로 만든 교회력은 소중한 그리스도교 유산”이라고 했습니다. 사순절을 선용하면 영적 질서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공로로 여길 게 아니라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을 묵상하는 영적 훈련 기간으로 삼자는 것이지요.
김동춘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원장은 “예장합동 교회가 미국 교회에서 유래한 추수감사절이나 우리 고유의 송구영신 예배는 드리면서 전 세계 교회가 지켜온 사순절을 지키지 않는 것은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고도 했습니다. 정성국 아신대(신약학) 교수도 “고난주간에서 부활절로 이어지는 사순절 40일은 주님의 삶을 묵상하고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최상의 시기”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진지하게 묵상하고 우리의 삶에서 그분의 뜻을 이뤄가는 기회로 삼는다면 사순절은 매년 매우 가치 있는 절기가 될 것입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