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하며 걷는 ‘꽃길’서 믿음의 선배를 만나다 [우성규 기자의 걷기 묵상]

서울 지하철 7호선 어린이대공원역 1번 출구에 전시되고 있는 유니세프의 대형 어린이 그림.






4월 걷기 묵상은 벚꽃과 함께한다. 시작은 서울 지하철 7호선 어린이대공원역 1번 출구다. 출구 표지판 옆으로 유엔아동기금(UNICEF)이 설치한 대형 그림이 걸려 있다. ‘신나게 더 신나게!’란 글귀 위에서 피부색이 다른 아이들이 녹색 자연을 배경으로 뛰놀고 있다. 신나게 더 신나게 봄을 맞아 새로 피어나는 꽃길을 걷기 시작한다.

어린이대공원에 만개한 벚꽃을 감상하며 시계 반대 방향으로 산책로를 걷는다. 구의문 쪽으로 넘어가는 언덕 위에서 남강 이승훈(1864~1930) 선생의 동상을 만난다. 청동빛 남강 선생은 서양 연미복 차림에 오른손을 들어 주먹을 불끈 쥐고 사람들을 맞이한다. 선생은 1907년 도산 안창호 선생과 만나 신민회를 세우고 평북 정주에 오산학교를 설립했으며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하나로 기독교인의 참여를 주도했다. 동아일보 사장으로 추대되는 등 언론인으로도 활동했다.

춘원 이광수는 1930년 남강 선생의 동상에 ‘쓰어 붙이는 말’을 새겼다. “기미년 삼십삼인의 하나로 옥에 들어간 것까지 옥에 가기가 세 번이요, 있기가 전후 아홉 해, 선생의 백발이 옥중에서 난 것이다. 예수교에 도타운 신앙을 가지어 오래 장로로 있었고 오늘은 가장 사랑하는 아들 재단법인 오산고등보통학교 이사장이다.” 춘원의 글판은 1934년 일제의 강제 철거로 훼손됐고 현재의 동상은 1974년 지금의 자리에 재건된 것이다.

남강의 동상 옆으로 얼룩말과 사슴이 뛰노는 동물원을 지나면 고당 조만식(1883~1950) 선생의 동상도 만난다. 둘 다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 시설이다. 고당 선생은 검은 두루마기에 오른손 손가락은 하늘을 가리키고 왼손엔 성경을 들고 있다. “독실한 신앙과 숭고한 인격, 투철한 의지와 실천궁행하는 자력갱생 정신,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비폭력 저항과 자유민주통일을 위한 투쟁은 살아있는 교훈이다.” 고당 선생은 물산장려운동에 힘썼고 조선일보 사장을 지냈으며 좌우합작의 신간회를 주도했고 해방 후 조선민주당까지 창당했다가 공산당에 의해 순교했다.

남강과 고당의 동상을 이 자리에 세운 주역은 한경직(1902~2000) 영락교회 목사다. 천정훈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한경직’을 보면, 한 목사는 생전 인터뷰에서 “한국 안에서 생각한다면 남강 선생과 고당 선생을 제가 참 존경한다”고 말한다. 오산학교 시절 남강 선생은 교실 제자들 앞에서 스스로 옷을 벗어 몸에 난 흉터를 보여주며 ‘왜놈들에게 맞아서 난 상처’라며 절치부심을 강조했다. 고당 선생은 수업이 끝나면 무명 두루마기에 갓을 쓴 채로 학생 100여명과 함께 호숫가를 구보하며 독립군 애국가를 불렀다고 한 목사는 기억했다. 찬송가 280장 ‘천부여 의지 없어서’의 곡조인 ‘올드 랭 사인’에 맞춰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가사의 옛날 애국가였다.

어린이대공원 후문으로 나와 언덕 위 구의야구공원을 거쳐 워커힐로를 통해 장로회신학대 북문에 이르기까지는 계속해서 꽃대궐이다. 한강을 굽어보며 벚꽃을 감상하는 워커힐 드림로드다. 장신대 안으로 들어와 언덕을 내려오면 한경직 기념예배당을 만난다. 거대한 원통형 건물 구조인데 지붕 바로 아래 벽의 가장 높은 부분에 빙 둘러서 주기도문이 새겨져 있다. 장신대 학생들이 새벽기도회를 포함해 매일 예배를 드리며 경건과 학문을 익히는 공간이다.

장신대는 최근 워커힐 드림로드를 즐겨 산책하던 한 독지가로부터 서울 강남구 선릉로의 4층짜리 건물 전체를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기부받았다. 이 독지가는 목회자를 길러내는 신학대가 든든해지면 세상이 그만큼 더 밝아지지 않겠냔 생각에 기부를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걸으며 묵상하고 또 기부하는 멋진 일이 더욱 확산하기를 기도한다.

글·사진=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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