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에 미망인이 됐다. 남매 가운데 둘째인 아들이 막 돌이었던 때다. 육군사관학교 생도 대표 출신이던 육군 대위 남편이 작전 도중 헬기 사고로 순직했다. 남편을 육군참모총장으로 만들고 자신은 현모양처를 꿈꾸었지만, 그날 이후 삶과 꿈이 바뀌었다. 딸과 아들에게 믿음을 전수하려 미망인의 길을 고수했다. 성경대로 자녀를 잘 키우고 싶어 신학을 공부하고 상담학을 전공해 사역자와 교수가 됐다. ‘사이좋은 부모생활’(아르카)을 저술한 황지영(64) 고신대 기독교상담대학원 겸임교수이자 나무아래상담코칭센터 대표의 이야기다.
지난 4일 성경 주석과 상담 서적으로 가득한 경기도 용인 나무아래상담코칭센터에서 황 교수를 만났다. 황 교수는 남편 사고 이후 국가유공자 미망인으로 울산의 한 기업에 취업했으나 5년 만에 민영화란 이름으로 퇴직을 권고받았다. 잠시 책 외판원 등으로 일하다 돈을 더 벌기보다는 신학 공부의 길을 택했다. 고려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상담학 강의 전담 교수를 역임하며 개혁주의 신앙을 공유하는 남아공 포쳅스트룸대학원대 교육심리상담 박사과정을 수학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은 여성 안수가 없는데 여성 사역자를 존중하던 분당샘물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했다. 2007년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 때 42일간 피랍자 가족들과 함께 말 그대로 함께 울면서 고통의 시간을 통과했다. 다수의 교회와 단체에서 500회 가정사역 세미나를 인도했고, 개인 및 부부 상담은 1500회 진행했다.
“남편을 보내고 홀로 키우는 아이들을 ‘세상의 일등’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자녀의 미래를 우상의 손에 맡기는 일임을 깨달았습니다. 학벌 우상, 성공 우상에 아이를 바치는 겁니다. 아이는 부모의 성적표가 아닙니다. 제 실수를 되돌려야 했고, 다른 부모들에게 이를 알리고 싶어 상담 전문가와 사역자가 되고자 했습니다.”
사이좋은 부모가 되는 건 자녀와 관계를 잘 맺었다는 뜻이다. 황 교수는 책에서 “관계의 기초이신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가 출발점”이라고 강조한다. 자녀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양육하기 위해선 부모가 먼저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고 전한다. 또 자신의 원래 가족과의 관계가 회복돼야 자녀 양육의 근간인 자존감이 만들어진다고 덧붙인다. 황 교수는 이 모두를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출발해 풀어놓는다. 자녀 양육 이론과 본인의 간증이 독특하게 결합한 책이다.
책엔 자녀와의 부적절한 의사소통 예시가 나온다. 부모가 “넌 공부나 해”라고 말하면, 부모는 ‘아이를 통제해 좋은 결과를 빨리 얻어야지’란 의도를 담고 있지만, 아이는 ‘너는 네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니, 부모 말만 들어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인다. 역시 부모가 “내가 해줄게”라고 반복하면, 부모는 ‘우리가 곁에 있음을 알려 주고 싶어’란 의도이지만, 아이는 ‘다 해줄 테니 걱정 마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로 접수한다. 이런 오해를 없애기 위해 존중과 공감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책 뒤편에 미국 사우스웨스턴침례신학교에서 박사과정 중인 아들 정재우 목사와 성서유니온 북서울지부 총무로 사역하는 사위 박동진 목사의 후기가 나온다. 아들 정 목사는 “어머니는 신명기 6장 4~9절의 자녀 양육 명령을 광야에서 받으셨고 가슴에 새긴 분”이라며 “자녀를 순간마다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란 진리를 담은 책”이라고 소개했다.
황 교수는 공군 조종사 남편의 사고로 스물여덟에 미망인이 된 제자가 고맙다고 했다. 제자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사고 트라우마와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을 신앙으로 돕기 위해 다시 대학에 들어가 공부하고 현재 대학원에서 상담학을 전공한다고 전했다. 절망에서 희망을 길어 올리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용인=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