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르는 목회자 부모 아래서 자녀(Pastor’s Kids·PK)들은 많은 관심과 부담,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부모가 목회자라는 이유로 말과 행동에 많은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2014년 기독교학문연구회가 발표한 ‘목회자 자녀 스트레스 개념연구’에 따르면 목회자 자녀가 꼽는 주요 스트레스로 ‘성도들에게 늘 행복하게 보여야 할 때’ ‘설교와 다른 아빠의 삶이 보일 때’ ‘교회 일을 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질 때’ ‘항상 착하게 행동해야 할 때’ 등이라고 응답했다.
목회자 부모님을 둔 연예인 PK들도 마찬가지다. 언론을 통해 공개된 이들의 고백은 눈물겹다.
목회자 아버지를 부끄럽게 여기는 PK가 있는가 하면 작은 교회 목회자이지만 정확한 신념을 갖고 사는 아버지를 마음 깊이 존경하는 이도 있다. PK로 성장한 스타들을 알아봤다.
싱어송라이터 핫펠트
걸그룹 원더걸스 출신 가수 핫펠트(박예은)는 최근 채널A ‘오은영의 금쪽상담소’에 출연해 “사기죄로 수감된 아버지를 과연 용서해야 할까요?”라며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는 “6살 때 목회자였던 아버지가 교회 집사님과 바람을 피워서 상대 남편이 칼을 들고 ‘죽이겠다’고 찾아왔다”며 “이후 아버지와 이혼한 어머니와 함께 살았고 오랫동안 아버지와 연락을 끊고 살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핫펠트의 아버지는 딸의 유명세를 이용해 교인들을 속여 200억원의 투자금을 가로챘다. 그뿐만 아니라 20대 여성 신도를 강제 추행한 혐의로도 피소됐다. 그는 교도소에 수감 중인 아버지에게 난생처음 편지를 받았는데 반성은커녕 “1억5000만원의 보석금을 해줄 수 있느냐”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친부 사건 이후 방황하며 1년여의 심리 상담 치료를 받아야 했다고 밝힌 핫펠트에게 오 박사는 “미운 마음을 충분히 느껴보고 생각해야 소화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당장 아버지를 용서하지 않아도 된다”고 조언했다.
방송인 김성주
방송인 김성주씨의 아버지는 고 김창경 목사다. 1969년 청원군 옥산면 덕촌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한 김 목사는 2013년 은퇴 전까지 충북 청주 동부교회에서 시무했다. 김성주는 “시골 교회에서 목회하는 아버지 밑에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성도가 아프다면 집에 찾아가고, 쌀이 떨어졌다고 하면 쌀을 구해다 줬는데 정작 우리 집에서 누가 아프다고 하면 아버지는 신경도 안 쓰셨다”며 “밖에서는 평판이 참 좋은 훌륭한 목회자였는데 우리 가족에게는 왜 그럴까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군대 훈련소에 입소하던 날, 무덤덤하게 있던 아버지를 뒤로하고 훈련소로 들어가는 버스를 탔는데 아버지가 내가 어떤 버스에 탔는지 놓쳤다”며 “그때 아버지가 허둥지둥하며 나를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는 눈빛을 처음 봤다. 아버지가 많이 약해 보이고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때 나를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됐다”고 고백했다. 2016년 파킨슨병으로 투병 끝에 소천한 김 목사는 생전 방송을 통해 아들에게 편지를 남겼다.
“이 아비를 너무 원망하진 말아다오. 옛날 사람이라 표현하는 방법도 모르고 서툴러 오해가 많았던 것 같다. 네가 너무나 귀하고 소중해서 그랬다는 것만 알아다오. 나를 이어 목회자가 되길 바랐지만, 지금은 네가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고 김창경 목사 편지 중)
가수 박정현
가수 박정현은 미국 LA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인 2세이다. 그는 어머니는 간호사, 아버지는 목사인 엄격한 집안에서 자랐다. 아버지 박원식 목사는 박정현의 친구들 사이에서 무서운 사람으로 알려졌다. 박정현은 “학교에서 남자친구들 전화가 오면 아버지가 바로 끊어버렸다. 아버지가 무서워서 따지지도 못했다”며 “쇼핑몰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구경하다가 다시 도서관으로 간 것이 인생의 가장 큰 일탈이었다”고 고백했다. 모범적인 학교생활로 초·중·고교 시절 전 과목 ‘올 A’를 받을 정도로 학업 성적도 좋았다. 그는 “목사님 딸은 공부 잘하는 줄 알고 다들 궁금해하기에 공부를 열심히 해야 했다”고 말했다.
박정현은 미국 하버드대학교를 목표했을 정도로 성적이 좋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목회가 힘들어지며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자 비교적 학비가 싼 UCLA대 연극영화과로 진로를 정했다. 자신의 뒤를 이어 신학대학교에 진학해 목회자가 되길 바랐던 박 목사는 반대했지만, 박정현은 “끈질긴 설득 끝에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낼 수 있었다”고 전했다.
1994년 제1회 미주복음방송 성가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으며 CCM 가수로 활동하던 그는 1998년 1집 앨범 ‘Piece’로 한국 가요계에 데뷔한 후 ‘대한민국 대표 디바’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배우 김대명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미생’ 등에서 개성 있는 연기로 사랑받는 배우 김대명의 아버지는 작은 교회 목사다. 청소년 시절 만화 대여점에서 만화책을 빌려 학교 가던 그의 모습을 본 친구들은 “야, 쟤네 아버지는 목사인데 쟤는 왜 그래?”라는 말이 귀에 들려왔다.
김대명은 “그 순간 ‘아버지께 도움은 안 돼도 나쁘게 성장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나는 아버지를 늘 존경한다. 물질적으로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늘 정확한 신념을 갖고 사시는 종교인이기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김대명이 연기를 하고 싶다고 고백했을 때 아버지는 크게 반대했다. 자신의 뒤를 이어 목회자가 되길 바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대명은 “제 나름의 전도 방법이 배우”라며 “좋은 배우가 된다면 나의 신념도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득했다. 김대명의 아버지도 tvN 드라마 ‘미생’ 출연 이후에는 기도와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가수 자이언티
‘음원 강자’로 불리는 가수 자이언티는 모태신앙으로 어릴 적 꿈이 목사였던 크리스천 래퍼다. 자이언티 예명은 예루살렘 성지의 언덕인 시온(Zion)과 십자가(T)를 의미한다. 그는 “교회 목사인 어머니께 어릴 적부터 글자를 성경책으로 배우다 보니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던 ‘시온’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고 고백했다. 학창 시절 그림에도 소질이 있었던 그는 화가나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은 넉넉하지 못했다. 자이언티는 중학생 때 교회 찬양대에 들어간 뒤 돈이 많이 드는 미술보다 음악에 더 관심을 갖게 됐다. 17살 때 처음으로 힙합을 좋아하게 돼 그때부터 랩 가사를 쓰기 시작했다. 2014년 발매된 ‘양화대교’는 택시 운전하는 아버지와 목회하는 어머니에 대한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노래다.
자이언티는 “가족에게 늘 빚진 마음이 있었는데 그걸 담아내고 싶었다”며 “당시 목회자였던 어머니가 많이 아프셔서 ‘아프지 말자’고 가사를 쓰게 됐다”고 말했다.
가수 이승윤·방송인 이승국
가수 이승윤과 방송인 이승국의 아버지는 ‘존경받는 목회자’ 1위로 꼽히는 이재철 목사다. 이 목사는 4명의 아들에게 다음과 같은 자녀 교육을 원칙으로 삼았다. 첫째 자립할 것, 둘째 모든 인간관계에서 예의를 지킬 것, 셋째 내가 거쳐 간 자리를 다른 사람이 치우지 않도록 정리 정돈을 잘할 것, 넷째 내가 무엇을 하든 누군가를 위한 봉사 혹은 섬김이어야 할 것.
이 목사는 PK들을 ‘목회자 자녀’라는 틀에 가둬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그는 “아이의 생김새가 다르듯, 재능이 다르다. 4명의 자녀가 실수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게 하기 위해 단 한 번도 ‘너 목사 아들이 왜 그래’라고 말한 적 없다”며 “오히려 목사 자녀이기 때문에 어떤 것에도 구속받지 말고 ‘나’답게 살라고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 가수 하하의 어머니는 김옥정 목사, 배우 성유리의 아버지는 장로회신학대학교 성종현 교수이다. 개그맨 정범균은 군 선교에 많은 관심을 갖고 젊은 장병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아버지 정병남 목사와 함께 군부대 위문공연을 다닌다. 개그우먼 김현숙은 어머니와 재혼한 새아버지가 목회자로 알려졌다. 김현숙은 “새아버지께는 내가 친딸도 아닌데 이혼이라는 힘든 상황 때 많이 도와주셔서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