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간증집이 아니고 신학 간증집이다.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익숙한 신앙 간증이 삶의 현장에서 다양한 체험을 녹인 것이라면, 신학 간증은 다수가 어렵게 느끼는 신학을 필두로 역사 철학 문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 대한 독서와 통섭의 결과로 나오는 것이다. ‘사이에서’(IVP)는 신학 간증이란 낯선 장르의 문호를 여는 책이다. 신학이 주는 기쁨과 위안, 생명력을 일반 성도와 좀 더 쉽게 나누기 위해 저술됐다.
‘사이에서’의 저자 송용원(52) 장로회신학대 조직신학 교수를 27일 서울 광진구 장신대 교정에서 만났다. 송 교수는 미국 예일대에서 미로슬라브 볼프 교수에게 삼위일체 신학을, 데이비드 켈시 교수에게 기독교 인간학을 배웠고, 영국 에든버러대에선 데이비드 퍼거슨과 수잔 무어 교수에게 장 칼뱅 신학, 개혁신학, 공적신학을 사사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시에 유학 기간 미국 보스턴과 뉴헤이븐 사이 왕복 400㎞를 주말마다 운전하며 이민목회를 맡은 개척 목회자이기도 했다. 송 교수는 “목회와 신학 사이에서 경계에 선 존재, 한계를 절감하는 존재였다”고 말했다. 그리고 바로 그 사이에서, 한계와 경계선 위에서 기쁨을 누리게 하시고 은혜를 체득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했다고 말한다.
“갈수록 인간을 둘러싼 경계선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문명과 기술의 발달은 인간 주위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거미줄을 짜고 경계를 나눕니다. 전쟁과 평화 사이에서, 남과 북 사이에서, 산업화와 민주화 사이에서, 진보와 보수, 양극화로 인한 빈과 부, 청년세대와 장년세대, 남성과 여성, 개발과 보존, 기억과 화해, 가해자와 피해자, 이주와 정착, 교회와 사회, 사랑과 증오 사이에서 인간은 끼인 존재입니다. 사이에서 부대끼며 철과 철 사이에서 날카롭게 벼려지는 존재입니다. 끝도 없이 밀려오는 사이의 물살을 가르며 당신의 갈 길을 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비아 메디아’(via media, 가운데 길)의 발자취(눅 4:29~30)를 멀리서나마 따르고 싶었습니다.”
책의 부제는 ‘경계의 기쁨, 한계의 은혜’이다. 책에선 빠졌지만 송 교수는 이를 한류의 정점, 영화 ‘미나리’와 소설 ‘파친코’를 통해 설명한다. 이주민이란 경계의 위치, 주류가 아닌 주변부에서 한계에 부닥친 삶을 통해 두 세계를 초월하는 가능성이 새롭게 창출된다는 것이다. 사이에서 성육신을 통해 두 세계를 초월하는 삶을 몸소 보인 그리스도를 기억하기에 경계가 기쁨이고 한계가 은혜로 다가오게 된다.
책은 2019년 장신대 사경회에서 신학생들에게 전한 말씀과 국민일보 바이블시론 칼럼 내용을 기초로 보충한 것이다. 송 교수는 달려드는 사자에 맞서 입을 찢은 구약 사사기의 삼손이 며칠 후 사자의 주검에서 벌떼와 꿀을 발견하는 이야기를 모티브로 ‘사자와 꿀 사이에서’를 말한다. 고통이 지나가면 즐거움이 뒤따른다는 인생의 진실, 시편 1편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노래, 야구 선수가 제아무리 훌륭해도 평균 타율 3할 즉, 일곱 번 삼진을 당해도 세 번 꿀을 만나면 행복하다는 인식으로 이어진다.
실제 저자의 신앙 체험도 담겨있다. 눈의 각막이 찢어지고 수술 후유증에 시달리던 고통 속에서 7년을 보내다 완치된 송 교수는 “바울에게선 육체의 가시를 평생 뽑아주지 않으시던 주님이 제 육체의 가시는 뽑아 주셨다”고 밝혔다. 장신대 신학대학원 입학 즈음 배형규 목사(2007년 아프가니스탄 순교)가 보여준 배려, 배 목사의 방식을 그대로 따르며 손이 곱은 거리의 작은 형제와 함께한 은혜 체험이 책 맨 뒤에 고백처럼 담겨있다. 착함과 약함과 주변성이 담긴 천국의 진주 문(계 21:21), 송 교수는 이를 한국교회가 잃어버린 기독교의 원형이라고 고백한다.
우성규 기자 서은정 인턴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