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 in 이건희 컬렉션] 100세 가까운 평생 동안 ‘꽃다발과 연인’ 그린 사랑꾼

지난해 K옥션 경매에서 42억원에 낙찰된 ‘생폴드방스의 정원’(1973). K옥션
 
마르크 샤갈은 꽃다발을 손에 쥔 연인들이 중력을 벗어나 붕 떠 있어 사랑스럽고도 환상적인 느낌을 주는 ‘꽃과 연인’ 연작을 20대 후반부터 죽기까지 평생 그렸다.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된 ‘붉은 꽃다발과 연인들’(1975)은 프랑스 남부 생폴드방스에 정착해 노년의 평화를 누리던 88세에 그린 것으로, 지중해를 연상시키는 파란색 배경에 연인이 유영하듯 숨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마르크 샤갈 (1887~1985)
 
고향인 벨라루스 비테프스크의 유대인 풍속을 그린 ‘지붕 위의 바이올리니스트’(1912). 위키피디아
 
첫 아내 벨라와 결혼하던 해에 그린 ‘생일’(1915). 위키피디아


지난해 5월 K옥션 경매에서 마르크 샤갈(1887~1985)의 ‘생폴드방스의 정원’(1973, 81×116㎝)이 42억원에 낙찰됐다. 한 달 전 ‘이건희 컬렉션’이 ‘세기의 기증’으로 대서특필된 후였다.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된 ‘붉은 꽃다발과 연인들’(1975, 92×73㎝)이 낙찰된 작품과 제작 장소가 같았고 시기도 비슷했다. 이건희 컬렉션의 가치를 막연히 천문학적인 조단위라고 추정했는데 K옥션 낙찰가격을 통해 실감하게 됐다.

두 작품의 배경이 된 곳은 프랑스 남부 생폴드방스다. 샤갈은 러시아제국의 유대인 소도시 비테프스크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벨라루스에 속한 곳이다. 하지만 화가로서 욕망, 유대인이라는 뿌리 때문에 100세 가까이 산 긴 생애 동안 고향을 떠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 남프랑스, 이스라엘 등 전 세계를 떠돌며 노마드적인 삶을 살았다. 그중 60대에 정착해 죽을 때까지 머문 프랑스 남부 니스 근처의 방스와 생폴드방스 두 곳에서 삶이 인생의 최대 황금기이자 노년의 평화를 누린 시기였다.

특히 79세였던 1966년에 옮겨온 생폴드방스는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마을이었다. 햇빛이 눈부시고 꽃이 만발해 누구든 절대 우울해질 수 없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된 ‘붉은 꽃다발과 연인들’은 샤갈이 88세에 그린 작품이다. 화면의 바탕을 이루는 밝은 파랑과 화병에 꽂힌 꽃줄기의 초록, 그리고 꽃의 빨강 등 색상만으로도 생의 환희와 백발 노화가의 행복감이 묻어난다. 이 작품을 제작하고 2년 후인 77년 샤갈은 프랑스정부가 주는 레종도뇌르 훈장을 받았고 루브르박물관에서 생존 작가 최초로 회고전을 가졌다.

가난한 유대인 가정의 9남매 장남으로 태어난 샤갈이 이런 위대한 화가가 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청어가게 점원으로 일하던 아버지는 샤갈이 화가가 되고 싶다며 학원비를 달라고 조르자 화가 나서 마당에 돈을 홱 던졌다. 19세의 샤갈은 그 돈을 갖고 사실주의의 대가인 예후다 펜이 운영하는 ‘펜 미술·디자인학교’에 입학했다. 처음부터 그에겐 사실주의 화풍이 맞지 않았다. 두 달 만에 미련 없이 그만두고 사진을 보정해주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어 그 돈으로 이듬해 러시아 최대 예술의 도시 샹트페테르부르크로 유학을 갔다. 운이 좋았던지 정치인 막심 비나베르와 인연을 맺었고 그의 도움으로 프랑스 파리로 갈 수 있었다.

파리에서 샤갈은 몽파르나스의 ‘라 뤼슈’(La Ruche·벌집)에서 지내며 작업했다. 예술가들이 벌집을 찾듯이 모여드는 매력적인 곳이라는 뜻으로 그렇게 불렸던 이곳은 전 세계에서 온 작가들이 교유했던 창작의 산실이었다. 이들에게는 ‘에콜 드 파리’(파리파)라는 별칭이 붙었다. 대부분은 박해를 피해 온 유대인 화가들이었다. 이탈리아의 모딜리아니, 리투아니아의 수틴, 네덜란드의 반 동겐 등이 이곳에서 활동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샤갈의 화풍은 이곳 몽파르나스 시절 탄생했다.

샤갈은 평생 3명의 여인을 만났다. 1914년 베를린에서 가진 최초의 개인전이 성공을 거두자 고향으로 달려갔는데, ‘여친’ 벨라와 결혼하기 위해서였다. 보석상을 하는 벨라의 부모는 거세게 반대했지만, 벨라는 샤갈을 택했다. 그리고 1944년 병으로 죽기까지 동고동락하며 20세가 낳은 위대한 화가의 정신적 안식처가 됐다.

샤갈의 작품세계는 환상적이다. 중력을 무시하듯 연인들이 공중에 둥둥 떠다닌다. 물구나무선 사람이 나오고, 바이올리니스트는 지붕에서 연주를 한다. 염소, 소, 닭 등 동물들이 사람 같은 순한 얼굴로 등장한다. 동화 같은 그의 그림은 초현실주의로 오해받곤 한다. 하지만 샤갈은 초현실주의는 물론 입체파 야수파 등 동시대의 어느 미술 사조에도 속하기를 거부한 아웃사이더였다. 그럼에도 1941년 미국으로 망명으로 갔을 때는 미술계의 명망가가 돼 있었다.

그만의 독창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초현실주의는 이성의 지배를 거부하며 무의식의 세계를 표현한다. 하지만 샤갈이 그린 것은 현실이다. 자신의 뿌리인 러시아 유대인의 민속과 성서에서 받은 영감을 환상적으로 그렸다. 실제의 추억을 환상의 형태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말이다. 이를테면 그의 작품세계에는 유대인의 하시디즘(18세기 이래 동유럽 국가에서 유행한 종교적 혁신운동) 문화가 깔려있다. 하시디즘 문화에선 죄인의 영혼은 죽은 뒤 말 못하는 동물의 몸속으로 들어간다는 믿음이 있다. 당나귀, 수탉, 염소 등의 동물이 사람과 매우 친근한 모습으로 그려진 데는 그런 배경이 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바이올린도 유대인의 색채가 강한 악기다. 구슬프고 강렬한 음색을 내며 휴대하기 간편해 바이올린 연주자는 러시아의 유대인 결혼식과 축제에 빠짐없이 등장한다.

평생의 주제인 ‘꽃과 연인’은 첫 아내 벨라와 결혼하던 해인 1915년 처음 등장한다. ‘생일’이라는 작품인데, 그림 속 연인은 무중력 상태로 붕 떠 있고 멋진 검은색 원피스 차림을 한 여자의 손에는 꽃다발이 있다. 남자는 고개를 획 뒤집어 그 여인에게 키스한다.

“나는 가난했고 내 주변에는 꽃이 없었다. 내게 처음으로 꽃을 준 이는 벨라였다. 내게 꽃은 그 행복한 빛남 속에서 삶을 의미한다. 우리는 꽃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꽃들은 비극의 순간을 잊게 하며 그 비극의 순간들을 깊이 성찰하게끔 한다.”(샤갈)

꽃을 든 연인은 이후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처음엔 연인보다 작게 표현된 꽃다발이 점점 커지며 나중에는 화면 전체를 채운다. 연인은 숨바꼭질하듯 어딘가에 숨어있다. 꽃병 왼쪽에 그림자처럼 보일 듯 말 듯 표현된 이건희 컬렉션의 샤갈 그림에서처럼 말이다.

샤갈에게 꽃이 뭔지를 알려준 벨라는 미국으로 망명하고 몇 년 뒤인 1944년 바이러스에 감염돼 세상을 떠났다. 충격과 실의에 빠진 아버지를 보다 못한 딸 이다가 나서서 스코틀랜드 출신 버지니아 헤거드를 소개해줬다. 둘은 연인 사이로 발전했고 아들도 태어났다. 하지만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은 채 문화적 차이로 헤어진다. 세 번째 여인으로 만나서 재혼한 이는 발렌티나 브로드스키다. 그녀와 말년의 남프랑스 시절을 함께했다. 그 시절 ‘꽃과 연인’ 연작에서 꽃은 점점 커지고 어둡고 신비롭던 색상은 점점 화사하고 경쾌해졌다.

샤갈의 그림에서 독특한 것은 색채다. 야수파의 선명한 색채를 가져와 사람과 동물을 표현했다.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게 된 배경도 색채의 해방을 강조하는 야수파에 기반한 것이다. 그 시절, 샤갈과 교유했던 피카소는 이렇게 말했다.

“(야수파인) 마티스가 죽고 나면 색채가 진정 무엇인지 이해하는 화가는 샤갈만 남게 될 거야. 난 그 수탉과 나귀와 날아다니는 바이올린 연주자 같은 민속 따위는 좋아하지 않지만, 그의 작품은 진짜 대단해. 결코 아무렇게나 그린 게 아니라고. 방스에서 그가 그린 작품은 르누아르 이래 샤갈만큼 빛을 잘 파악한 화가가 없었다는 확신이 들게 해줬어.”

이건희 컬렉션의 샤갈 그림은 피카소의 칭찬을 떠올리게 한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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